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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살아보기/네덜란드 일기

알크마르에서의 마지막 일주일, 그리고 '내사람'

by Heigraphy 2018.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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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나라에 수 년 간 쌓아온 그리움과 애정을 한 번에 다 날려버릴 뻔했다. 한국으로 돌아갈까를 매일밤 진지하게 고민했다. 처음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시작된 집주인과의 미묘한 갈등은, 다 나 때문이고 내가 잘못한 것 같았다. 내가 떠나면 나도 그녀도 편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솔직히 사무치게 외로웠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단순히 집주인과의 갈등 때문만이 아니라, 이 문제를 가지고 내가 어딘가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 더 컸다. 이곳의 나의 친구들은 너무도 바빴고, 멀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내 마음이 너무 약해져서, 다들 나를 너무 외롭게 만든다고 누구의 탓으로 돌려버리고 싶었다. 한국에 가면 내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그런 마음으로 한국에 가서 내사람들을 만나는 꿈을 정말 이틀에 한 번씩 꿨다.

  한창 집과 관련된 문제와 더불어 혼자 마음속의 골이 깊어질 때쯤 희선언니가 나를 보러 왔다. 짧게 머물다 가는 사람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어서 처음에는 나름대로 티를 많이 안 내려고 노력했는데, 오랜만에 누군가와 속깊은 대화를 나누다보니 현재 나의 감정상태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주인에 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의 이 외로움을 이야기하며 "내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싶어요"라고 했더니, 언니는 "'내사람'의 실체는 있어?" 하고 되물어왔다. 거기에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네. 어쩌면 사실 그 어디에도 '내사람'이라는 건 없는 것 같기도 해.

  시간이 지날수록 집주인과의 갈등은 더 깊어져만 갔고, 새로운 문제가 계속 생겼으며(집주인이 굳이 일으켰으며), 그러다보니 가시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달라진게 있다면, 처음엔 다 나만 잘 하면 되는 것 같았던 일들이 이젠 더이상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느꼈다는 거다. 집주인의 요구는 사실 거의 횡포에 가까웠고, 불합리했다. 나는 그걸 언니가 온 후에야 깨달았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바로 옆에 한 명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전에 없던 힘과 용기가 났다. 그와 동시에 도대체 이 집주인은 나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면 이런 소리를 하는지 화가 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사람'인 언니까지. 도대체 나를,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집주인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도 웬만하면 가만히 들어주던 내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럴 때 옆에 있어준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희선언니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희선언니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면 이상하리만치 힘이 났다. 우리 엄마가 돈이 많거나 힘이 있기 때문인게 아니다. 오롯이 혼자라고 생각하던 와중에 절대적인 내편 한 명이 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을 뿐이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 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해주는 사람. '어쩌면 나에게 '내사람'은 우리 엄마인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사랑을 생각하면 나는 내 스스로가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내가 대단히 잘난 것 같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 시야에 갇혀서 사는 시골마을의 집주인 따위가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확신할 수 있다. 감히 우리 엄마가 소중히 생각하는 나를 네가 막 대해? 나 우리 엄마 딸이야!

  결론적으로, 고맙게도 이곳 친구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아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현재 나는 폴란드에 와있다. 방을 빼는 마지막 순간까지 집주인은 보증금과 오버페이된 렌트를 계속 운운하면서 정말 더럽게 굴었지만, 더이상 혼자 속으로 끙끙 앓지 않는다. 내 잘못도 아닌 것에 IDGAF이다. 520유로가지고 갑질 오질라게 하는데, 계약서대로 이행 안 하면 신고당하는 건 너일 줄 알아라. 난 이제 무서울게 없다. 처음부터 내가 무서워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제외한 '내사람의 실체'는 여전히 명확히 짚을 수 없지만 그들은 나의 용기이고 힘이다. 아니, 설사 엄마 하나뿐이라도 어때. 이미 그녀는 충분히 나의 용기이고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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