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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색하는 연습장

『비노동사회를 사는 청년, 니트』-"니트는 주체가 아니라 상태이다"

by Heigraphy 2019.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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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한, 『비노동사회를 사는 청년, 니트』, 서울연구원, 2018.

(이 게시물의 모든 인용은 위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지금 나의 상태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책. 살다보면 나도 나를 잘 모를 때가 생기기 마련인데, 요즈음의 내가 딱 그랬다. '일'을 하면서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뭔지, '일'을 하고 싶지만 하고 싶지 않기도 한 이 기분은 뭔지. '교육, 고용, 훈련 상태가 아니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니트'라고 한다는데, 내가 그런 건가? 그런 생각이 자꾸 뻗어나가다가 '나 이대로 괜찮은 건지' 싶은 걱정까지 들었다. '괜찮다'라는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정말 이 기분과 상태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는지 조금은 객관적으로 알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려운 부분을 꽤 시원하게 긁어주는 책을 만났다.

 

 

 

  "실업자, 경력 단절 여성, 취업 준비생이라는 단어처럼 니트라는 용어 자체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주체'가 아니라 일시적인 '상태'를 지칭한다. 다시 말해 니트는 더 이상 사람이나 집단이 아닌, 상태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니트 상태의 개인'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때문이다." (200쪽)

 

 

  "누구나 쉽게 니트가 될 수 있는 사회에서, 0퍼센트 니트인 사람은 없다. 거꾸로 100퍼센트 니트인 사람도 없다. 앞서 말했듯 이처럼 니트성이라는 것은 어떤 인성이라기보다, 경험의 결과로서 현재 누적된 콜레스테롤 수치 같은 것이다." // "한 사람의 능력이나 성격이나 지향보다는 그동안 얼마나 이 사회에 의해 마모되고 분쇄되어 왔는지가 니트성의 함량을 결정한다는 것을, 청년 당사자나 현장 지원자들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200쪽)

 

 

  "주지하다시피 이 시대의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자랑한다. 하지만 일터에서는 그 스펙과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 스펙 쌓기의 궁극적 목표가 준비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닌 '선발되기 위해서'만 노력하도록 시스템이 짜여 있으니 선발 후에 일을 못한다 해도 당연하지 않은가. 억울한 것은, 교육과 사회화 과정을 경쟁과 선발 위주로 세팅한 것은 청년이 아닌데 일못을 이유로 조리 돌림 당하는 건 언제나 청년이라는 점이다." (209쪽)

 

 

  "청년들에겐 '데뷔' 자체가 인생의 숙원 사업이 되어 버렸다. 기업, 공공 기관, 비영리 기관 등의 사정에 따라 반년에서 1년 미만으로 잘게 끊어지는 청년들의 경력은 서류상으로도 인식상으로도 반올림은커녕 그냥 '버림'을 당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알바생으로, 비정규직으로 남은 채 언제 제대로 일을 할 것인지 추궁당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니트 상태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219쪽)

 

 

  "연구를 하면서 여러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최근에는 20~30대 중반 여성들의 일 경험에 대한 것들을 보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들이 무능하다고 얘기할 거고, 그중 일부에 대해서는 니트라고 얘기할 것이다. 제대로 된 직업을 얻거나 유지하지 못 하는(can't)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일을 안 하나? 못하나(poorly)? 아니다. 정말 일을 많이 하는 데도 정규직, 임시직, 계약직, 학생 등 정말 다양한 고용 방식으로 그들의 이력이 점철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고용 방식의 구분이 이제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나 할까." (254쪽)

 

 

 

  이 책을 읽다가 공감과 깨달음의 탄식을 뱉은 구절이 정말 많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무엇보다도 "니트는 주체가 아니라 상태"라는 것이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렇게 될 수 있는 상태. 그렇게 이해를 한다면, 나는 나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니트 상태의 개인들을 봤다. 몇 년의 경력이 있든, 아직 경력이 없든, 일을 하고 있든, 하고 있지 않든, 단언컨대 내 주변의 모든 청년들에게서 나는 '니트 상태'를 봤다. 이 책에서 '니트'는 단순히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상태)을 가리키지 않는다.

  '무조건 사회탓'이라는, 답은 정해져 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읽은 책이 아니다. 또, 그런 내용으로 쓰인 책도 아니다. 사회를 설명하고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을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청년이든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아르바이트 노동자든, 프리랜서든, 구직 중이든, 안식년을 가지든, 그 누구든 직업상태를 막론하고 말이다. 누구나 이 책 속의 한 구절 정도에는 공감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니트 상태'를 인생에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을 읽은 후에는 '한국사회' 속에 있는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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