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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살아보기/네덜란드 이모저모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적어보는) 네덜란드와 한국의 노동 환경

by Heigraphy 2019.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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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환학생으로 네덜란드를 갔을 때는 '막연히' 네덜란드의 노동 환경이 한국의 노동 환경보다 좋구나 싶었다. 일단 가게들이 6시면 문을 닫고, 마트도 9-10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엔 문을 열지 않는 마트도 있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참 좋았다. 한국처럼 밤 12시에 나가서 원하는 것을 살 수는 없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겐 좋겠다 싶었다. 즉 소비자로서는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노동자로서 생각해보면 괜찮은 노동 환경이었다. 20살 이후로 돈을 버는 일을 쉬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노동자에 좀 더 이입하게 됐다.

  그 때는 현지에서 일을 하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아는 네덜란드의 노동 환경도 딱 그 정도였다. 아, 그게 약 5년 전이니까 임금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는 것 정도까지? (5년 전 한국의 최저시급은 5,210원이었다. 주40시간 근무 기준 월급 1,088,890원. 네덜란드는 2014년 1월 책정 기준 1485,60유로. 당시 환율은 좀 더 높았지만 뭉뚱그려 1유로=1,300원이라고 계산해봐도 약 1,931,280원으로 한국보다 훨씬 많았다. 근데 쓰다보니, 현재 한국의 최저임금이 5년 전 네덜란드의 최저임금보다 낮네......)

 

  작년부터 지금까지는 네덜란드에서 일을 하는 짝꿍님을 지켜보며, 단순히 근무 시간이나 급여 외에도 노동 환경에 있어 차이가 정말 많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일을 하다가 병이 났을 때.

  한국에서 출퇴근직을 할 때, 한동안 치과에 다녀야 할 일이 생겼다. 치과는 6시면 문을 닫거나, 이후 시간에 야간진료로 전환되어 진료비를 더 받았다. 근데 내가 일하는 시간도 9시부터 6시니까 매주 치과 진료 시간을 맞추기가 정말 힘들었다. 결국 토요일에 가거나, 반차를 쓰거나, 아니면 근무 특성 덕분에 한 시간 정도 빨리 끝나는 날이 있으면 겨우 예약을 잡아서 진료를 받곤 했다. 한 번 병원에 딱 다녀오는 것도 힘든데, 이렇게 꾸준히 병원에 가야할 일이 있다면 정말 힘들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는 일을 하다가 아프면 일을 포기하거나 내 건강을 포기해야만 할 것 같은 노동 환경임을 솔직히 부정하지 못하겠다.

  네덜란드의 경우, 병이 나서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한다면? 의사 처방만 있으면 그냥 가면 된다. 반차, 월차 등등 필요없다. 보스에게 "내가 이런 병이 있어서, 당분간 병원에 가도 될까요?" 같은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다. 무슨 병인지 밝힐 필요 없고(무슨 병인지 묻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그냥 '이 환자는 당분간 치료가 필요하다'라는 의사의 처방 및 소견서만 있으면, 보스는 무조건 직원이 치료받는 것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물론 지병뿐만 아니라 3-6개월에 한 번씩 치과 가서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해도, 받으면 된다. 가끔 짝꿍님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 내일 치과 들렀다가 출근해"라고 말하는 것에, 아직도 나는 적응이 잘 안 된다.

 

  한국에 돌아온 뒤,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시작하면서 많이 들었던 질문은, "주말 없어도 괜찮아요?", "시간 외 근무도 괜찮아요?"였다. 그 말이 나는 좀 충격적이었다. 산업 종사자(기업인의 입장)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운영하는 고용센터 같은 곳 사람도 희망급여 다음 물어보는 질문이 저런 거다. 전 일터가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복지가 대단한 것도 아니었지만, 출퇴근 시간 확실하고 워라밸은 유지할 수 있었던 만큼 나는 오히려 이런 것을 잘 못 견디겠다. 근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적어도 지금은/초년에는' 그렇게 버텨야 한단다. 못 버티면 열정 없는 사람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좋아하면서도 이걸 정말 해야하나, 나는 그렇게 열정이 없는 사람인가 고민이 많다.

  네덜란드에서도 물론 주말근무, 시간 외 근무가 생기는 일이 있다. 근데 그리 일상적이지 않다. 짝꿍이 일하는 걸 1년 가까이 지켜보면서 주말근무/시간 외 근무 하는 거 한 3-4번 정도 봤나? (물론 불가피하게 근무하게 되면 수당도 다 나온다)

  물론 짝꿍이 네덜란드에서 일하는 직종과, 내가 한국에서 일하고자 하는 직종은 분야가 다르다. 그래서 뭐 산업 특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찍으며 표준근로계약을 준수했고, JYP 엔터테인먼트는 주말에 일을 하면 주중에 대신 쉴 수 있게 하는 등, 주52시간 근무 시간을 지키고 있다. 즉, 이 산업도 워라밸을 지킨다는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것. 할 수 있는데 아직 그렇지 않은 회사가 훨씬 많다는 것. (물론 좋은 쪽으로 계속 변할 것이라 믿고, 그러길 바란다.)

 

  이렇게 보면 한국이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일단 한국에서 길을 찾아보려 한다. 왜냐하면, 한국이 좋다. 이 사회가 내게 완벽하거나 이상적인 사회는 아닐지라도, 내가 사는 곳이고 내사람들이 사는 곳이기에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거라는 믿음과 기대와 바람이 있다. 그리고 아무리 외국 어디가 좋다를 외쳐도,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사는게 가장 쉽다. 농담 아니고 진짜로 가장 쉽다. 수십 년 이상 한국에 살면서 자연스럽게든, 노력해서든 쌓인 것들이 있다. 하다못해 한국어라도 할 줄 안다. '여행'이 아니라 '사는 것'은 정말 다르고,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몸소 체험해봤기에 말할 수 있다.

 

  제목에 적었듯이 이건 아주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일 뿐이다. '한국 구려 외국 짱' 이런게 아니라는 거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나와 다른 환경에 살고 있고, 매일같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나의 환경은 어떠했고 어떠한가 돌아보게 됐고, 이런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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