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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일지 231119 본문

사색하는 연습장

수영일지 231119

Heigraphy 2019. 11. 26. 15:50

1. 수영을 왜 배우기 시작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가끔은 그게 이유까지 물을 만한 건가 싶다. 헬스한다고 하면 보통 헬스를 왜 하냐고는 안 묻고, 그냥 운동 좀 하려고 하는 거겠거니 하니까. 수영이 그렇게 특별한 운동이던가?

  아무튼, 물을 싫어하던 내가 남들보다 약 20년이나 늦게 수영을 배우게 된 데는 이유가 있긴 하다. 짝꿍님이 수영을 좋아해서 몇 번 따라가다보니 관심이 생긴 것도 있고, 무엇보다 수영 그 자체도 좋지만 수영을 할 줄 알면 할 수 있는 액티비티의 범위가 확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서핑이나 다이빙, 하다못해 계곡에서 레프팅을 하는 것도 수영 가능자만 받는 곳들이 많다. 즉, 수영을 할 줄 알면 좀 더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2. 적당한 오지랖은 감사하다. 강사님에게서 배울 수 없는 디테일을 수강생들의 오지랖으로 배울 때가 있다. 주로 토요일 자유 수영 때 많이 벌어지는 모습이다. 그렇게 나는 배영을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3. "젊은 사람이라 금방 배우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동네의 작은 체육센터에서 평일 오전에 하는 수영이라 수강생의 연령대가 높긴 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수영장에 나오는 모든 분들이 다 젊어 보인다. "체력이 딸려서, 힘이 딸려서 나는 그렇게 빨리 못배워"라고 하지만 정신연령은 나보다 훨씬 젊고 건강해 보인달까. 나는 아이 엄마가 되어서도, 백발이 서린 나이가 되어서도 그분들처럼 나 스스로를 위해 도전하고, 꾸준히 연습하고, 매일매일 작은 성취감을 누리며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4. 매일매일 작은 성취감은 확실히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 수영을 하면서 신체적으로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컸는데, 이렇게나 마음도 단단해질 줄은 몰랐다. 수영을 가는 날이면 전날 밤부터 설레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힘들 때도 있지만 그 반복되는 작은 도전과 작은 성취를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겠다.


5. 새벽 수영을 한 번 실패한 뒤로 물은 쳐다도 보기 싫었던 내가, 지금은 킥판도 놓고 자유형과 배영을 할 수 있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특히 수영에 관해서는 나조차도 의심이 많고 나를 믿지 않았는데, 다시 나를 믿을 수 있게 된 계기는 별 게 없다.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는 것. 나 스스로도 그것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도 말해주는 것. 발차기에서 음파 발차기, 자유형 팔돌리기, 킥판 놓고 자유형 팔돌리기, 배영 발차기, 배영 팔돌리기, 킥판 놓고 배영 팔돌리기. 여기까지 오기까지 매일매일 작은 기쁨을 만끽했다.


6. 나는 짝꿍님에게 "내년에는 바다에서 튜브 없이 같이 놀 수 있을 거야!"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 스스로 확신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한 달 반째 킥판을 잡고 꽤 자주 물을 먹어가며 수영을 하는 신세였으니까. 너무 늦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달하고도 20일째쯤 성인 풀에서 킥판 없이 쉬지 않고 완주를 해냈다. 그 때의 기분은 아주 짜릿했다.


7. 수영장 탈의실에서는 (어쩌면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도 벽시계를 보거나 손목시계를 보지, 절대 핸드폰을 꺼내들지 않는다. 핸드폰을 확인하고 싶으면 무조건 탈의실을 다 빠져나간 후 본다(탈의실 안에서부터 봐야 할 급한 메시지도 어차피 없다). 나라도 누군가 탈의실에서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히 불안할 것 같아서 열심히 지키고 있는 룰.


8. 벌써 자유형, 배영 끝물에 이제 곧 평영을 배운다. 이거 배우면 입영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사실 평영보다도 입영이 더 기대된다. 나는 바다에서 동동 떠나디면서 놀고 싶거든.


9. 이번 11월 한 달은 나 무려 지중해에서 수영해봤다는 자부심에 쩔어버린 채로 수영 강습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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