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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살아보기/네덜란드 일기

네덜란드 일기 :: 인사의 힘 (부제: 이웃으로서 인사하기)

by Heigraphy 2020.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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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로테르담 #TodayRotterdam

  내 평생을 거의 서울에서만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하는 일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지 않았나 싶다. 지나가는 사람이 뭐야, 이웃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사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인사는커녕 경계부터 하기 바빴다. 서울뿐 아니라 대도시에서의 삶이란 지역을 불문하고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 하나 신경 쓰고 살기도 바빠 죽겠고, 어차피 오늘이 지나가면 안 볼 사람 신경 쓸 겨를 같은 게 어디 있어.

   지금은 도시에 살지만 어렸을 땐 작은 마을에서 자란 지인은 이웃들과 인사하며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 습관이 지금도 이어져서 동네 안에서는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다 인사를 건넨다. 가끔 씹혀도(?)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처음엔 '그는 현지인이니 인사 나누기도 더 쉽겠지'라는 마음이었는데, 본인도 가끔 인사 안 받아줘서 머쓱해하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꼭 현지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의 캐릭터가 그런 거구나 싶다. 한편으로는 그 용기가 부러웠다. 나도 동네 사람들과 그렇게 인사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러면 이 '이방인'이라는 느낌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네덜란드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들 사회에 속하는 건 개인적으로 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1년 반+@를 살아봤고, 가까운 사람이 네덜란드 사람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내가 네덜란드 사회를 거의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들 공동체 어딘가에 제대로 속해본 적이 없다는게 아마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속해봤던 게 수년 전에 학교 5개월 다녔던 거? 그나마도 국제학생이 절반을 차지하던 과정에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작은 인사부터 시작한다면 이웃 공동체 안에 속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있지 않을까?

  얼마 전부터, 적어도 동네 안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의 눈을 피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상대방도 나를 쳐다보고 눈이 맞는다면 "Goedemiddag(Good afternoon)" 혹은 "Hi" 하고 가볍게 인사를 한다. 그렇게 벌써 두 명 정도와 인사를 했다(두 명도 감격스럽다). 누구 덕분이 아니라 스스로 직접 이웃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나도 용기를 냈다는 뿌듯함과, 이웃으로 인정받았다는 느낌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다른 인사는 아직 입에 안 붙어서 아주 간단한 인사만 하고 있지만,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자연스러워지리라 믿는다.

  네덜란드 한인 커뮤니티에서 얼마 전에 "지나가는데 '니하오'라는 인사를 받았어요. 이거 인종차별인가요?"라는 내용의 글을 봤다. 개인적으로는 악의가 있든 없든 만국 공용어인 영어나 자국어도 아니고, 백 번 양보해서 상대방의 출신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배려한 것도 아닌데,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에게 '관심'을 끌어보려 '아시안은 다 그렇겠지'라는 무지에서 굳이 중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건 인종차별 맞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이전까지 나에게 길에서 굳이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대부분 그런 사람들뿐이었다. 한 번은 슈퍼마켓에서 대뜸 누가 "How are you?"하고 묻길래, 순진하게도 "Good"하고 대답해주니까 그 뒤는 더 들을 생각도 없이 친구들끼리 낄낄거리면서 지나간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내 기분이 진짜로 어떤지' 같은 건 관심 없는 거다. 이런 경험이 몇 차례 있다보니 한동안 이 타지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에 위축된 적도 있었다(어쩌면 지금까지도).

  이 위축된 마음을 조금씩 펴지게 만드는 게 내게는 다름 아닌 이웃과의 인사인 것 같다. 정말 이웃으로서 호의를 가지고 인사를 나눈다면 "Hoi(Hi)", "Goedemorgen(Good morning)", "Goedemiddag(Good afternoon)", "Goedenavond(Good evening)" 정도의 인사가 적당하다. 앞으로도 이방인보다는 이웃으로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날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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