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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은 구실일 뿐 본문

시각적 기록/사진일기

선물은 구실일 뿐

Heigraphy 2020. 3. 26. 05:07

Stroopwafels & DUTCH tea

  네덜란드에서 한국에 온 지 어언 두 달째.. 아직도 선물이 남았다. 사람을 못 만나다 보니 선물을 가져와도 나눠줄 수가 없었고, 결국 스트룹 와플의 유통기한이 임박했다. 혼자 먹기에도 많이 남아서 결국 동네 친구를 호출했다.

  "내일 뭐해? 차랑 과자 먹지 않을래?"

  "좋지!"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녹여 먹는 스트룹와플

  가자마자 손을 씻고 차와 과자를 전달한다. 한 봉지는 같이 먹고 한 봉지는 혼자 또 먹으라며 와플 두 봉지를 건넨다. 이건 커피랑 먹어야 할 것 같다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내려다 준 친구. 그 위에 와플을 올린다. 스트룹와플을 나눠줄 때면 "이거 뜨거운 차나 커피 컵 위에 올려놓고 살짝 녹여서 먹는 거야!"라고 늘 설명하지만, 막상 스스로 이렇게 먹어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와플이 생각보다 두꺼운 것 같은데, 이거 잘 녹기는 할까? 나도 이렇게 먹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장담을 못하겠네.

 

  와플이 녹는 동안 짝꿍님에게 전화가 와서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받는다.

  "나 친구네 와서 스트룹와플 먹고 있어!"

  "좋겠다! 친구한테 안부 전해줘."

  아직 만나본 적 없는 내 친구 안부도 챙기는 너란 사람.

 

  전화를 끊고 나니 친구가 말하길 외국어를 쓸 때 내 목소리가 더 스윗해진다고 한다. 외국어라서가 아니라 대화 상대로 인한 차이가 아닐까 하는 나의 반문에, 그녀는 그럴 수도 있겠다며 빠른 수긍을 한다.

 

 

적당히 잘 녹았다

  적당히 따끈해지고 적당히 녹은 시럽 덕분에 와플이 무척 부드러워졌다. 접시에 옮겨 담고 조금씩 떼어서 먹어본다. 와플 한 입, 커피 한 모금. 그래 이 맛이지!

  와플과 함께 본격적으로 우리의 근황 토크를 시작한다. 그동안 소식이 별로 없다보니 아직 네덜란드에 있나 싶었는데, 한국에 온 지 벌써 두 달이나 됐다고 하니 친구가 깜짝 놀란다. 진작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차일피일 미뤘다고 변명을 해본다. 그래도 와플 유통기한 지나기 전에 왔으니 한 번만 봐주지 않을래?

  그녀는 그동안 집순이가 되었다고 한다. 고양이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고양이들이랑 이너피스 유지하며 잘 지내다가도, 일이 들어오면 가끔 일보다도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너피스 와르르였다가, 다시 고양이 보면서 평화를 되찾는, 그런 생활을 하며 지낸 모양이다. 그렇다. 그녀 집에는 고양이가 있다.

 

 

땡그란 눈이 귀여워

  처음에는 낯을 조금 가리더니, 이방인이 가만히 앉아있자 이내 옆으로 다가와서 다리를 한 번 슥 스치고 간다. '야옹-' 울면서 쓰다듬어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너무 과한 관심을 주면 돌아선다. 성격이 개와 고양이의 경계쯤에 있는 듯한 녀석. 너무 사랑스럽다.

  대낮인데도 집안이 약간은 어둡고 불빛이 은은하다 싶었는데, 고양이들의 동그란 눈동자가 귀여워서 일부러 집을 환하게 안 밝힌다고 한다. 고양이도 귀엽고, 분위기도 살고, 일석이조네.

 

 

바라만 봐도 재미있는 친구들

  소파를 덮은 천이 언제 이렇게 헤졌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 녀석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친구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두 마리는 형제인데 어찌나 우애가 좋은지, 한 녀석이 자리를 잡으면 다른 녀석이 바로 옆에 붙어서 똬리를 튼다. 우리가 얘기하는 동안 옆 소파 차지하고서 참 잘 잔다. 시끄러울 법도 한데 깨지도 않고 정말로 잘 잔다. 이렇게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으로 보낸다고 한다. 바라만 보는데도 시간이 참 잘 간다. 고양이를 보며 되찾는다는 그녀의 이너피스가 100% 이해된다.

 

 

2차는 더치티와 한국 과자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친구가 과자를 좀 더 내온다. 내가 참 좋아하는 꼬북칩과 처음 본 허니머스터드 맛의 수미칩. 더치티와 곁들여서 먹어본다. 포장지를 덮은 오렌지 색을 보며 친구가 궁금해하길래, 네덜란드 왕가의 이름이 오라녜(Oranje)라서 오렌지 색은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색이고, 차에서도 오렌지 향이 나는 거라며 아는 척을 해본다.

  유럽 얘기가 나오니, 올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려고 했던 친구는 계획이 물건너 갔다며 아쉬워한다. 미술을 전공한 친구라서 특히 이탈리아를 기행 할 날을 오래 기다렸는데 안타깝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올해 여행은 다 그른 것 같다며 같이 탄식을 한다. 하여튼 코로나가 여럿 계획 망친다. 제발 눈치 좀 챙겨 코로나야..

 

 

Pickwick 차를 마실 때는 티백 꼬리를 주목해주세요

  티백 꼬리에 달린 더치어를 읽을 수 있을 때면 기분이 좋다. 그곳에는 늘 간단하면서도 생각해볼 만한 질문 거리가 적혀있다. Pickwick 차의 매력 중 하나.

  - 어떤 꿈이 이미 이루어졌나요? (Welke droom is al uitgekomen?)

  - 당신의 가장 큰 소원은 무엇인가요? (Wat is jouw grootste wens?)

  친구의 티백에는 이루어진 꿈에 대해서, 나의 티백에는 가장 큰 소원에 대해서 묻고 있다. 이미 이루어진 것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 우리는 이전에 무엇을 이루었고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두 질문의 절묘한 발란스에 혼자 속으로 감탄한다.

 

  어느덧 가야할 시간이 가까워진다. 친구는 가기 전에 방명록을 적어달라고 한다. 요즘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가 많아서, 오는 친구들마다 방명록을 남기도록 한다고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심심할 때 읽어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남는 것도 있어서 좋다고. 무슨 말을 남겨야 하나 쭈뼛거리다가, '즐거웠다'는 마음을 이리저리 늘려서 의식의 흐름대로 몇 줄 적어본다. 정말로, 그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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