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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짧여행, 출사

여름, 아빠랑 천축사 템플스테이 01

by Heigraphy 202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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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빠는 절에 다니시진 않지만 불교의 철학에 꽤나 공감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불교를 '믿는다'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상당히 관심이 많으시고 한편으로는 불교에서 말하는 바대로 사시는 분 같기도 하다. 내가 불교를 종교가 아니라 철학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빠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작년부터 종종 다니던 템플스테이, 계절별로 한번씩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템플스테이 홈페이지에서 '라떼 템플스테이'라는 걸 봤다. 2-30대 자녀와 5-60대 부모님이 함께 템플스테이를 오면 가격을 할인해준다는 거였다. 평소에 가족들이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아 아쉽기도 했고, 안 그래도 템플스테이 다니며 아빠 생각을 종종 했던 터라 이참에 슬쩍 여쭤봤다. 다행히 아빠도 흔쾌히 좋다고 하신다.

  아빠와 나의 휴무일을 맞춰서 가장 빠른 날을 잡았다. 아빠의 체력 등등을 생각하여 멀리 가긴 그래서 가까운 곳 중에 골랐다. 그게 한창 더운 7월에 산을 올라야 하는 일정이 된다는 것은 이미 모든 것을 예약한 후에야 깨달았다.

 

 

등산 필수품

  마침내 템플스테이 날이 밝아 아빠와 함께 출발했다. 도봉산 입구에 내려서 본격적으로 산행에 들어가기 전에 얼음물부터 샀다. 차로 들어올 수 있는 최대한까지 들어와서부터 40분을 더 산을 올라야 천축사를 갈 수 있다고 해서 말이지..

 

 

슬슬 산행 시작

  템플스테이 후기 중에 아마 유일하게 절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이 꽤나 길어질 것 같은 이 후기. 그나저나 이 안내석은 볼 때마다 헷갈린다. 도봉산인데 북한산이고 그런 건가?

 

 

생각보다 사람이 꽤 있다

  이날 아마 최고기온이 한 33도쯤 되고, 전날 비도 오는 바람에 엄청 습해서 등산하기 좋은 날씨는 전혀 아니었는데, 산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꽤 많았다. 우리는 가야만 해서 가긴 가는데... 다들 왜.. 굳이 이 날씨에...?

 

 

친절한 등산로

  가는 길에는 표지판 안내가 잘 되어있다. 도봉산 안에서도 길이 여기저기 나있지만 헷갈리거나 잘못 갈 염려는 거의 없다. 걷기 시작했을 때 봤던 표지판이 천축사까지 2km가 남았다고 했는데, 이거 평지에서 아빠랑 내 걸음이면 20분 컷 할 수도 있는 거리인데. 아빠는 나보다도 더 걷기 내공이 쌓이신 분이다.

 

 

계단 시작

  초반 6~7분 정도는 길이 잘 닦여있고 평평해서 산길이 아니라 산책로라고 생각될 만큼 걷기 참 수월했는데, 역시 쉬운 길은 잠시, 금세 본격적인 산길이 나온다. 아빠가 평소에도 많이 걸어다니시긴 하지만 평지 걷는 거랑은 또 다를 텐데 이 정도 등산도 괜찮으시려나 살짝 걱정했는데, 오히려 나보다도 가볍게 휙휙 올라가셨다. 다행인데 스스로 반성도 되고...ㅎㅎ

 

 

살려줘...

  1km도 안 남았는데 막막해지긴 처음이다. 다리가 힘든 건 둘째 치고, 일단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게 감당이 안 된다. 평소엔 그저 상투적인 표현인데 그게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겠더라고... 땀이 너무 흘러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지경에, 앞머리도 이미 싹 젖었고, 백팩을 메고 가느라 더더욱 상의도 다 젖었다. 한 500m 가다가 쉬고, 500m 가다가 쉬고 하면서 오름... 아빠도 평지 걷는 것과 등산은 많이 다르다고 하신다.

 

 

도봉산 천축사

  일주문이 이렇게 반갑기는 처음이다. 다 왔구나 싶어 조금 더 힘을 내어 올라가본다. 근데.. 여기서부터도 한 5분 정도는 더 올라가야 된다. 이렇게 낚시하기 있기 없기?

 

 

불상들이 반겨주는 천축사

  아니 일주문까지 지나왔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더 가야되냐며 불평이 터져 나올 즈음 진짜(?) 천축사가 나왔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길이 이미 수행길인 것 같아요... 오르는 동안에도 쉬지 말고 심신을 단련하라는 부처님의 큰 뜻인 건가요...?

 

 

내려다 본 도봉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무성한 풀숲에 잘 보이진 않지만, 아무튼 저런 길을 다 지나서 마침내 도착했다는 사실에 감격... 아빠의 연세를 생각하여 일부러 가까운 곳 온 건데, 뜻밖의 산행에 오히려 다른 절 갈 때보다 에너지를 곱절로 쓴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나보다도 더 평온한 상태로 잘 걸어주셔서 감사했다..😂 건강하신 아버지 감사해...

  사실 엄마한테도 같이 가시겠냐고 여쭤봤다가 엄마가 안 간다고 하셔서 아빠랑 둘이서 온 건데, 엄마도 오셨으면 아마 못 오거나 시간이 훨씬 더 걸리지 않았었을까 싶다.

 

 

천축사

  산 중턱에 위치한 천축사. 덕분에 바로 뒤에는 도봉산 봉우리도 보이고, 주변 경관 하나는 끝내준다. 이게 진짜 속세랑 멀리 떨어진 절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종무소

  종무소에 들어가니 오느라 수고하셨다며 친절히 맞아주신다. 땀에 아주 쩔어버린 채로 몰골이 워낙 말이 아니었는지 웰컴 얼음(?)을 주셔서 얼음찜질을 했다. 이후 명단을 확인하신 후 방을 안내해주신다.

 

 

휴식형 일정표

  템플스테이는 휴식형만 다니는 나. 천축사의 휴식형 일정표도 나쁘지 않다. 2시에 도착하여 사실상 4시까지 휴식시간.

 

 

오래된 나무

  방으로 가는 길에 소개해주신 나무. 이 나무 이름이 뭐랬더라, 편백나무? 5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거의 보호수로 여겨지는 나무인 듯하다. 조금 아래쪽에 역사가 비슷한 다른 나무도 있었는데, 그 나무는 몇 년 전에 벼락을 맞아서 부러졌다고 한다. 이런 산중에도 벼락이 친다는 게, 자연은 참 신비하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

  날은 더웠지만 하늘은 맑아서 탁 트인 풍경을 볼 때면 참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었다. 산을 꽤 많이 오르긴 했는지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 풍경을 보려고 여기까지 올라왔나 보다.

 

 

롯데타워!

  강북도 아니고 서울이 내려다보인다고 쓴 이유는, 천축사에선 날씨 좋은 날 롯데타워까지 아주 훤히 보이기 때문이지. 롯데타워 뒤쪽으로 펼쳐져있을 강남까지 고려하면 새삼 서울이 얼마나 큰 도시인지가 느껴진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도 새삼스러우면서 좋다. 역시 난 내 도시가 좋아. 이런 도시 또 없지.

 

 

비석
고무신

  천축사에서는 수련복뿐만 아니라 고무신도 나눠준다. 한켠에 이렇게 쪼르르 배치되어 있어서 자기 발 사이즈에 맞는 것을 찾아가면 된다. 모아놓고 보니 알록달록해 보이는 게 예쁘네. 내 사이즈인 230은 찾는 사람에 비해 수량이 많지 않은지, 잠시 뒤에 다시 나와보니 금방 동나고 없어서 창고에서 새로 꺼내야 했다. 😂 아빠는 255 선택. 아빠 발 사이즈도 이번에 처음 안 것 같아...

 

 

무문관(숙소)

  1박 2일 동안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의 휴식처가 되어줄 곳. 스님들 말씀에 따르면 천축사에서 대웅전 다음으로 터가 좋은 곳이라고 한다. 방 하나에 최대 3인까지 사용을 하는 듯했고, 남/녀는 층이 아예 나뉘어 있다. 가족이라도 남/녀는 방을 구분하여 배정해주신다.

 

 

무문관 내부

  벌써 세 번째 템플스테이인데,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절의 숙소보다도 무문관이 가장 새거 같은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엄청 깔끔하고, 방도 넓고, 테이블 같이 참여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도 잘 준비되어 있고, 첫인상부터 무척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템플스테이라는 게 일종의 수행을 위해서 내가 선택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참여자들은 절의 손님이기도 하기 때문에 쉬는 공간이 잘 갖추어져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주방..?

  방에 냉장고랑 차랑 간식까지 딱 구비된 곳은 정말 처음 본다. 무려 냉동 기능도 있어서 물 얼려두고 나중에 퇴소할 때 얼음물 잘 챙겨갔다.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은 산수를 끌어다 오는 거라서 그냥 마셔도 된다고 한다. 스님께서는 그래도 가급적 끓여 먹기를 권장하시긴 했다. '순수현미'는 절에서 준비한 과자다워서 재미있었다.

  꽤 자주 느끼지만 비슷한 가격에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숙소도 주고, 기분전환도 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가 호캉스보다도 훨씬 좋은 것 같다니까?

 

 

드라이기와 화장실

  화장실도 엄청 깔끔하고 널찍하고, 드라이기도 있으니 세면도구와 수건 정도만 챙겨오면 정말 편하게 지내다 갈 수 있다. 그나저나 도착과 동시에 땀에 쩐 모습이라 바로 샤워부터 했다. 입소하자마자 샤워부터 한 템플스테이는 처음이야.

 

 

빨래

  숙소 앞에 빨래줄이 있었는데, 한 명이 빨래를 널기 시작하니 다른 사람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 널기 시작했다. 방에 소심하게 널어놨던 옷을 가져와서 나도 슬쩍 널어본다. 역시 사람 더운 거 똑같고 마음도 다 비슷한가 봐. 다 같이 빨래 널어놓은 게 정겹고 웃기다ㅋㅋㅋ 왠지 이번 템플스테이도 재미있을 것 같단 말이야. 아빠와 나의 1박 2일을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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