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돌아온 후 어쩌다 보니 거의 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모임의 성격도 가지각색이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회적인 사람이었는지 허허.
1.
오자마자 만난 하이킹 그룹 사람들. 작년에 다녀온 하이킹인데 몇 명은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하고 만난다. 홍콩 사는 분이 방콕으로 출장온 김에 오랜만에 재회했다. 이 멤버로 나중에 네팔 에베레스트 하이킹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년에 나의 행방이 결정만 된다면 꼭 같이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싶은데 말이야.
2.
무에타이를 드디어 등록했다. 체험 수업에 참여해 보고 마음에 들어서 여행에서 돌아온 후 등록 완. 저녁 수업에 참여했는데 그날따라 사람이 많았다. 외국인 아저씨도 한 명 눈에 띄었다. 나만 외국인은 아니구나.
대체로 태국인이라 영어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다행히 유창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코치님이 뭐 하라는지 이해를 못 하고 있을 때 차근차근 설명해 줘서 고마웠다. 한국에도 업무 차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언어뿐만 아니라 말도 잘 통하고, 배려를 많이 해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날 우리 수업이 끝나고 마지막 수업에 신청한 사람이 없어서 코치님들이 한가해졌는지... 갑자기 맥주랑 꼬치 몇 개를 사와서 체육관 바닥에 펼쳐놓고 먹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 체육관, 정기적으로 오는 사람이 많아서 다들 두루두루 알고 친한 편인 데다가 가끔 친목 활동 같은 것도 하는 모양이다. "할 일이 없어"라며 시작된 급작스러운 맥주판에 첫날부터 껴서 은근히 많이도 마셨다. 집에는 체육관에서 처음 만난 사람 오토바이 뒷자리 얻어타고 감ㅋㅋㅋㅋㅋ 인생은 참 알 수 없어서 재밌어.
3.
거의 두 달만에 나간 걷기 모임. 내 얼굴이 기억난다며 호스트가 환영해 줘서 고마웠다. 사람이 거의 스무 명 정도는 되었던 거 같은데, 최소 한 마디씩은 다 해본 모임은 처음이다. 이날은 서울에서 일하는데 방콕으로 여행 온 캐나다 사람이 있어서 참 신기했다. 언제부턴가 느끼는 건데 외국이라고 한국어로 함부로 말하고 다니면 안 된다. 알아듣는 사람이 꼭 한두 명은 있어. 꼭.
4.
좀 기억에 남는 대화는, 네덜란드 사람이랑 나눈 대화. 나름 공감대를 형성해 보려고 나 네덜란드에서 산 적 있다는 얘기를 꺼냈는데, 얼마나 살았는지, 뭐 했는지 등등 묻다가 네덜란드가 왜 좋았냐는 질문에 내가 대답을 못했다. 날씨가 좋냐? 아니 별로. 음식이 맛있냐? 외식 비싸서 맨날 집에서 한식 요리해 먹음. 물가가 싸냐? 식료품 빼곤 전혀. 밖에 나가 즐길 콘텐츠가 많냐? 이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때는 내가 지금 태국에 사는 것만큼 소셜 활동을 활발히 한 것도 아니라서 만나는 사람도 지극히 한정적이었음.
머릿속에서 빠르게 이런 내용들이 지나가면서 도무지 할 말이 없는 거다. 지금의 내 생각을 기준으로 살기 엄청 좋은 나라냐 하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어떻게든 재미있게 지낸 거지. 친구들이랑 놀고, 가까운 유럽 나라 여행 다니고, 영어만 써도 돼서 편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 첫 해외살이라서 무한한 자유와 여유를 느낀 게 좋았지 뭐. 근데 이런 건 네덜란드가 아니어도 되는 거잖아. 예를 들어 내가 벨기에에서 첫 해외살이를 했다면 나는 벨기에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보니 말문이 턱 막혔고, 침묵이 길어지니 질문했던 더치인이 "몰라? 기억 안 나?"라고 되묻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어... 사실 너무 오래 됐어. 근데 좋았던 건 확실해"하고 얼버무려 버렸다. 그렇게 흐지부지 대화 끝.
5.
가끔 미디어나 SNS에서 비춰지는 한국은 도대체 어떤 모습인 걸까 싶다. "드라마에서 봤는데, 틱톡에서 봤는데,..." 등등으로 시작하는 말들은 너무 진지하게 듣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으면 좋다. 한국에 대한 엄청난 환상도 곤란하지만, 밑도 끝도 없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곤란하다. 조금이라도 나가보면 알겠지만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다고. 불변의 진리, '사람 바이 사람' 모르냐고.
6.
가끔 (대체로 양인들이) 한국과 태국 중 어디가 더 낫냐는 질문을 한다. 그럼 나는 어디가 더 낫다기보다 그냥 다르다고 대답한다. 그럼 뭐가 다르냐고 다시 묻는다. 비슷하면서 다르다는 거냐며 한마디 덧붙인다. 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질문 한 번 되게 거슬리게 하네ㅋㅋㅋㅋㅋ 너들 눈에 아시아는 다 비슷해 보이는 모양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언어며 기후며 문화며 종교며 정치 체제며 비슷한 게 도대체 뭐가 있냐 이놈들아? 질문에 대한 솔직한 대답은, 나는 그저 늘 한국에 가고 싶다는 걸로 대체해 주마.
7.
두 번째 참여한 무에타이 수업에서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났다. 보자마자 "처음 오셨어요?"라고 물어서 너무 놀랐다. 드라마 같은 거 보고 한두 마디 정도 하는 사람은 종종 봤는데 그 정도 수준이 아닌 거 같아서 물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한국어를 전공했다고 한다. 귀엽고 활발한 친구라 초면에도 웃으면서 대화를 많이 했네. '같은 체육관을 다닌다=이웃 주민일 가능성이 높다'라서 좀 더 친해져서 동네친구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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