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살아보기/태국 일기

문학도는 낭만이 있다

Heigraphy 2024. 10. 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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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중순 어느날

 

  오랫동안 못 본 친구가 방콕에 왔다. 언제부턴가 나의 사람 만나는 텀이 거의 4-5년은 기본이 되었는데, 이 친구도 그 중 하나다. 한 4-5년 전에도 사람 만나는 텀이 4-5년은 되는 거 같다고 했는데, 다시 4-5년이 지난 후에도 그렇게 말하는 거 보면 가끔씩 오래 보는 인연이 그만큼 많다는 뜻인 거 같기도 하고. 자랑은 아니지만 평소에 연락을 먼저 하고 사는 편도 아닌데, 가끔씩 이렇게 먼저 안부를 물어와주는 친구들에겐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 친구들은 몇 년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한 것도 신기하다.

 

우기의 방콕

  요즘 태국은 우기다. 쨍쨍한 거 같다가도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비가 온다. 낮에는 각자의 일정을 보내다가 이른 저녁 때쯤 만나기로 해서 오후에 길을 나섰는데 하늘에 벌써 먹구름이 가득하다. 지하철 타러 가는 길에 이미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진다.

 

  원래 야시장에 가기로 했는데 날씨 때문에 애매하기도 하고, 친구의 숙소에서 너무 멀 것 같아서 목적지를 바꿨다. 야오와랏(차이나타운)에 가본 적이 있냐고, 거기는 저녁에 가면 태국어/중국어 간판에 불 들어온 게 이국적이어서 꽤 볼 만하다고 했더니, 예전에 가본 적이 있긴 한데 제대로 못 봐서 또 가도 좋다길래 야오와랏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차이나타운, 야오와랏

  도착하니 금방 해가 졌다. 추석, 중국식 이름으로는 중추절이 가까울 때여서 그런지 노란색의 현수막이 많이 달렸다. 개인적으로 현수막 안 달렸을 때가 더 예쁜데 뭔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아쉽다고 했더니, 친구는 이것도 차이나타운 다워서 좋다고 한다.

 

 

야오와랏 야경

  사람도 많고 현란한 간판도 많은 거리. 끝에서 끝까지 거리가 엄청 긴 편은 아니라서 한 번 가볍게 슥 돌아볼 수 있다. 확실히 같은 태국임에도 야오와랏은 특유의 중국스러운 분위기가 있다. 방콕 내 다른 지역은 이렇게 간판이 현란한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색깔도 빨간색, 금색(노란색) 위주인 것도 인상적이다.

 

 

어느 식당의 조명

  저녁 시간대에 만나서 일단 식사를 하러 가기로 한다. 보통 태국에 여행을 오면 태국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데, 차이나타운이라는 특성을 고려하여 친구는 중국 음식도 괜찮다고 한다. 그래서 즉석에서 구글맵 보고 평이 괜찮은 식당에 들어왔다.

 

  식당의 정체는: 중식 맛집 퍼 쌈파오 야오와랏(ภ สำเภา เยาวราช/Por Sam Pao Yaowarat)

 

[태국 방콕] 중식 맛집 퍼 쌈파오 야오와랏(ภ สำเภา เยาวราช/Por Sam Pao Yaowarat)

오랜만에 다녀온 야오와랏(เยาวราช/Yaowarat, 방콕의 차이나타운). 태국에서도 워낙 이색적인 곳이라 이색적이고 맛있는 음식 먹고 싶을 때 찾아간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다녀온 곳은 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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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한 상

  중국 음식이라고 해도 한국에서는 또 먹어보기 힘든 메뉴들로 선택. 다 나름 특색있고 맛있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의 음식도 있었고. 바트가 많이 남았다며 친구가 흔쾌히 저녁을 사줘서 더 고맙고 맛있게 먹었다.

 

  이날은 친구의 태국 여행 거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이 바다 건너까지 와서 낮에는 일을 했다고 한다. 분명히 휴가 쓰고 왔는데 거의 온전한 9 to 6를 했다는 친구... 조금 각오는 했다는데 진짜 풀로 근무를 해버리니 좀 진이 빠진 모양이다. 얼떨결에 그냥 휴가가 아니라 워케이션(workation)을 경험해봤다며,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사람을 4-5년만에 만나면 어색하진 않은지, 무슨 말을 하는지 싶지만, 오히려 그만큼 업데이트할 것들이 쌓여 있어서 할말이 참 많았다. 그동안 둘 다 나이를 먹다보니 겪어온 것들도 어렸을 때보단 다양하고, 세상 바라보는 시야나 시각도 넓어지고 달라져서 더 많은 주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대학생일 땐 전공, 진로, 거기에 가끔 철없음 한스푼 더한 얘기가 주를 이뤘다면 사회인이 되어서는 회사, 인생(?)에다가 진지함도 한스푼 더한 얘기가 주를 이루는 거지 뭐. 대화가 좀 더 농익는다고 표현하면 맞으려나.

 

 

야오와랏의 어느 골목길

  야오와랏에는 식당이 즐비한 대로도 있지만, 조금만 구석으로 들어가보면 길거리음식이 쭉 깔려있는 골목도 있다. 음식부터 과일 및 음료까지, 이곳은 또 중국보다는 태국의 바이브에 가까운 곳. 골목이 길지는 않아서 여기도 빠르게 둘러볼 수 있다.

 

 

밀크티 타임

  식사도 했으니 밀크티나 한 잔 마시러 카페를 찾아 또 다른 골목으로 들어간다. 역시 간판 보는 재미가 있는 길이었다.

 

  푸딩 전문점에서 찾은 태국 밀크티. 구조가 독특한 곳이었는데, 주변에 카페는 몇 있어도 밀크티집은 흔하지 않고, 저녁시간이 되니 그마저도 문 연 곳이 많이 없어서 은근히 어렵게 찾아간 집이었다.

 

  밀크티 마신 곳은 여기: 밀크티 맛집, 바 하오 티얀 미 야오와랏(ปา เฮ่า เถียน มี่/Ba Hao Tian Mi Yaowarat)

 

[태국 방콕] 밀크티 맛집, 바 하오 티얀 미 야오와랏(ปา เฮ่า เถียน มี่/Ba Hao Tian M

야오와랏 맛집 후기에 이른 디저트집 후기. 원래는 푸딩으로 유명한 집인 듯한데, 우리는 밀크티 마시러 갔다. 이름은 '바 하오 티얀 미(ปา เฮ่า เถียน มี่/Ba Hao Tian Mi). '티얀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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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처럼 이렇게 공개된 곳에 정작 자세한 이야기는 못 쓰지만, 오랜 친구랑 오랜만에 만나서 살아온 얘기, 앞으로 살아갈 얘기 같은 것을 나누니 감회가 좀 새로워서 남겨본다. 음.. 뭐랄까, 방콕에 여행 와서 만난 친구들 중에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왠지 근본적인 고민을 나눈 친구는 없었던 것 같아서. 나도 혼자 여행가면 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이 친구도 그렇구나.

 

  지금의 우리가 어렸을 때 생각했던 그런 어른의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다음에도 4-5년만에 만날런지, 혹은 그보다는 더 빠를런지, 그리고 그때 우리의 모습은 또 어떨지, 많은 게 궁금하고 기대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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