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우기 시작 (2024.05.20 - 2024.10월 중순)
"Rainy season has officially started" (Bangkok Post)
태국 기상청이 5월 20일 자로 여름이 끝나고 우기가 시작되었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 우기는 10월 중순까지 이어질 것이며, 북동부 지역의 경우 내년 1월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올해 우기는 예년보다 좀 더 빨리 시작된 느낌이다.
실제로 요즘 방콕에는 매일같이 비가 내린다. 비 내리는 모양새를 보면 우리가 흔히 알던 '스콜' 같지도 않다. 비가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천둥번개를 동반하여 2-3시간은 세찬 비가 지속되고, 잠깐 그쳤나 싶다가도 여전히 보슬비 같은 게 내린다.
비가 와서 내가 불편한 점은 1) 수영을 마음대로 못 하고, 2) 신발이 젖는 게 싫고, 3) 창문을 닫아야 하고(평소에 에어컨보단 창문 열고 선풍기 틀고 삶), 4) 빨래 널어놓고 계속 신경 써야 한다는 것 정도이다. 사실 요 며칠은 특히 저녁에 매일 같이 비가 와서 퇴근 후 수영을 못 해서 많이 아쉬웠다.
우기 직전까진 여름이었다(태국은 더운 나라지만 그 안에서도 더 더운 시기가 있다). 방콕의 경우 기온이 37-38도, 체감온도는 43-45도를 육박했던 걸로 기억한다. 한 순간에 여름에서 우기가 된 건데, 개인적으로 나는 우기보단 여름이 낫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더위를 좀 덜 타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여름은 조금 덥고 뜨겁지만 행동에 제약이 생기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높은 확률로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리면 일단 밖에 돌아다니기 어렵고 수영도 못하고 행동에 제약이 생기니까.
근데, 내가 고작 이런 이유로 감히 "비가 와서 불편하고, 우기보단 여름이 낫다"고 말해도 되나 싶다.
매일 같이 비가 내리는 요즘, 집 앞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시는 많은 분들은 빗속에서 장사를 어떻게 하시나 싶은 생각이 든다. 딱 한 번 보슬비가 내릴 때 천막 같은 걸 치는 모습을 보긴 했는데, 그 이후 강풍을 동반한 비로 바뀌었을 때는 어떻게 하셨을지, 장사를 이어가는 건 고사하고 정리는 무사히 하셨는지 걱정이다.
또, 올해 우기 마지막 두 달은 평소보다 강수량이 10-15% 정도 많을 것으로 예상하며, 홍수 위험도 예고되었다. 마지막 두 달까지 갈 필요 없이 지금 당장 어딘가에선 침수를 걱정하거나 이미 일어난 집이 있을 텐데. 비는 누군가에게 이렇게나 위협적이고, 생계를 걱정하게 만든다.
한편, 태국은 원래 더운 나라인데 한국처럼 매년 더운 정도마저 갱신되어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한 나라이다. 더워도 너무 더워서 어느 농가는 닭이 알을 낳지 않아 계란 생산량도 줄었다고 한다. 더위로 돌아가신 분들이 있고, 생계를 위협받는 분들이 있는데, 내가 감히 '더위가 낫다'고 말해도 되나?
현재 지내는 곳이 고층은 아니지만, 적어도 침수 위험은 적고, '방콕'이라는 지역 특성상 비가 와서 전기가 나간다든지 하는 인프라 문제도 별로 없다. 즉 비가 오면 나는 조금 불편할지언정, 주거나 생계나 생명엔 큰 지장이 없다. (평소 선풍기로 잘 살긴 하지만) 더우면 에어컨 틀면 되고, 택시 타면 되고, 실내 들어가면 되니까 더위도 큰 문제는 아니다.
이런 내가 '비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게 굉장히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보단 더위가 낫다"는 말도 누군가에게 매우 잔인한 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석하게도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 변화 위기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고통을 더 받고 덜 받는, 먼저 받고 나중에 받는 그룹이 분명히 있다. 굳이 따지자면 원인 제공의 비율은 그 반대가 아닐까 싶다.
나는 70억 조별과제는 어쩌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고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보이는 직접적인 피해까지 무시하지는 못하겠다. 기후 위기가 지구가 살기 위한 자정작용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마저도 불공평하게 이루어지는 세상의 이치가 매우 씁쓸하고 안타깝다. 나 또한 선두에서 아주 살짝 뒤로 밀려난 그룹에 있을 뿐일 텐데. 내 차례도 금방 올 텐데.
세상에 해를 덜 끼치며 사는 방법을 매 순간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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