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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살아보기/네덜란드 일기

네덜란드 워홀 :: 처음 경험해본 카우치서핑의 세계

by Heigraphy 2018.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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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서 돌아온 후의 이야기들, 네덜란드(NL) 워홀일기 시즌2 시작합니다.

 

 

#1 폴란드에서 돌아왔다

 

 

  길고도 짧은 2주가 지나고 폴란드를 떠나게 되었다. 오전에 은진언니네 사무실 가서 마지막으로 인사 한 번 더 하고 쇼팽공항으로 이동해서 비행기에 올랐다. 날이 유난히 맑고 하늘이 예쁜 날이었다.

 

 

 

  폴란드에서 떠나올 때 언니네 사무실에서 여러가지 한국 과자들을 챙겨주셨다. 덕분에 공중에서 맛본 고구마깡. 이날도 폴란드로 날아오던 날처럼 출발 전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돌아갈 생각을 하니 입맛이 없어지는 건 왜인지..... 폴란드에서 지내던 나날 동안에는 네덜란드로 빨리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나였는데 말이다.

 

 

 

  은진언니가 이해를 하기 어려워했을 정도로 이 나라에 참 돌아오고 싶었는데, 정작 돌아오고 나니 아예 한국에 가고 싶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냐면 이제 나는 이 나라에서 다시 집도 절도 없이 시작하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지. 폴란드로 떠나면서 알크마르에서의 방을 완전히 뺐기 때문에 당장 갈 곳도, 잘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에어비앤비랑 호스텔을 보자니 다 비싼 방밖에 안남아서 선뜻 결제버튼에 손이 안 가고... 그냥 정말 무모함 무대책의 끝이었음ㅋㅋㅋㅋㅋㅋ

 

 

#2 로테르담으로 와서 구한 첫 카우치서핑

 

 

  일단 무작정 로테르담으로 왔다. 와서 마르크트할(Markthal) 가서 밥이 될 만한 것부터 먹었다. 베트남 음식점에서 팔았던 5유로짜리 반미 샌드위치.

 

  사실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가 나 또 집 구할 때까지 자기네 집에 와서 지내려면 지내도 된다고 엄청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또 신세를 지기 미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번만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로테르담에 남아서 꼭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맙지만 괜찮다고 거절했다.

  왜 로테르담을 고집하게 되었나. 일단 로테르담에는 친구들이 있다. 마음 편하게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있고, 만나기만 하면 내가 에너지와 영감을 받아와서 너무 좋아하는 친구도 있고. 나는 주변에 항상 사람을 둬야한다거나 아주 외향적인 타입은 아니지만, 타지에서의 생활은 조금 다르다. 주변에 사람이 있지만 내가 안 만나는 것과,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못 만나는 것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알크마르를 떠난 이유는 시골의 적막함도 문제였지만, 그곳에서 느끼는 무료함, 외로움 등등이 참 컸다. 그래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또, 알크마르에서 함께 지냈던 하우스메이트 언니와 다음 정착지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언니가 늘 나에겐 로테르담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정작 본인은 로테르담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좀 더 젊은 내가 자리잡기엔 좋은 도시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심 내가 많이 따랐던 언니였기에, 그곳에 포커스를 맞춰 집을 구하라고 한 언니의 조언을 마음에 계속 담아두고 있었다.

  정작 이곳이 꽤나 큰 도시에, 그만큼 기회도 많고, 특유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고, 젊은 분위기에, 서울처럼 밤에도 활기차다는 것 등, 로테르담이라는 도시가 나랑 얼마나 잘 맞고 매력적인지 보이기 시작한 건 그 이후의 일이었다.

 

  아무튼, 고집을 부려 무작정 오긴 왔다만 밥먹고나니 할 것도, 갈 곳도 없다. 사실 이곳까지 오면서 에어비앤비에 급하게 숙박 문의를 넣어보기도 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았고, 카우치서핑 어플에 여행자로 등록을 해놔서 내심 호스트의 연락을 기다렸는데 자기랑 한 달 동안 보트를 타러 가자느니 이상한 연락밖에 오지 않아서 또 무용지물이었다. 여태 카우치서핑 어플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기도 하지만, 내가 호스트에게 먼저 연락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눈에 띄는(프로필 등을 봤을 때 어느 정도 신뢰가 가는) 호스트들에게 급하게 "당일에" 요청을 보냈다. (원래는 이러면 안 돼요.......)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거의 망연자실해서 기분은 이미 내핵까지 뚫고 내려갔고, 이러다 진짜 길에서 자겠구나, 뮌헨 이후로 유럽에서 새로운 노숙의 역사를 쓰겠구나 싶었는데, 마침 울리는 알림소리! "너 아직도 오늘밤 잘 곳 구하니?"

 

 

 

  그렇게 나는 어느 예술가의 집 작업실 같은 곳에 매트리스를 깔고 잘 수 있게 되었다. 낯선 사람의 집에서 하루 신세 좀 지겠다며 발을 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기분이 참 묘했다. 직접 만나서 인사를 하는 그 순간까지도 사실 긴장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발을 들이고 말을 나눈 지 5분만에 마음이 부쩍 편해진 것 안 비밀.

  사실 이 집주인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내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일이 있다. 만난 지 10분도 안 됐는데 나에게 편하게 지내라며 이 집의 여분 열쇠를 나눠준 것. 어쩌면 완전한 타인이자 이방인한테 이렇게 쉽게 집열쇠를 줘도 되는 건가? 이게 바로 카우치서핑의 세계인가보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알크마르의 집주인은 내 친구가 일주일 머물다 갔다고 집열쇠 복사해갔냐며 밑도끝도 없는 의심을 했었는데...... 세상도 나도 부디 전자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올해 2월, 한국에서 자매들과 새해 다짐 및 목표 3가지를 와인 코르크에 적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카우치서핑하기'였다. 그걸 이런 식으로 이루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또 하나 해냈다(?)

 

 

 

#3 덕분에 맘편히 로테르담을 거닐었지

 

 

  다음날 참 속도 편하게 로테르담 시내를 거닐었다. 근처에 누구나 들어가서 책을 읽고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길래 방문해봤다. 이런 공간에 들어오면 솔직히 네덜란드어로 된 책을 내가 읽을 건 아니라서, 책상을 먼저 보게 된다. 과연 여기 앉아서 작업을 한다고 할 때 괜찮은 공간인가?가 나의 관심사다. 콘센트도 있고, 책상도 넓고, 채광도 좋은게 내 기준 작업 공간으로 합격이었다.

 

 

 

  네덜란드 식당에서 이렇게 태극기 걸어놓은 거 본 거 처음인 것 같아.

 

 

 

  집구하기 전까지 모든게 불안정하기 때문에 식사는 당분간 저예산으로 해결해야겠단 생각에 트립어드바이저를 찾고 찾아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아시안 식당에 들어갔다. 의식주는 정말로 중요하고 그 중에서도 '주'는 진짜진짜 중요합니다.... 이게 나머지를 좌지우지 할 만큼.

 

 

 

  전에 친구와 좋은 시간을 보내서 좋은 기억이 있는 블락(Blaak)을 찾아갔는데 마침 장이 서는 날이었다.

 

 

 

  메론 3덩이에 무려 1유로! 1유로!!!! 1300원!!!!!!!! 네덜란드가 원래 식료품 자체가 저렴하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시장 물가는 정말 미쳤다ㅠㅠ 남의 집이라 이틀밖에 못 있는데 메론을 3개나 사기는 너무 많은거 아닌가 싶어서 좀 고민했는데 아예 당분간 주식으로 먹을 생각으로(...) 그냥 사버렸다. 내가 네덜란드에서 이러고 사는 줄 알면 아마 우리 엄마아빠 기절하실 듯 하하하.

 

 

 

  그리곤 할 게 없어서 그냥 잔디밭에 누웠다. 날씨가 좋아 다행이었다.

 

 

 

  새 날아가는 것도 구경하고. 부디 내 위에서 새똥만 안 쌌으면... (암스테르담에서 당한 전적 있음)

 

 

 

  잔디밭에 혼자 누워서 할 건 역시 책읽기. 크레마 만세.

 

 

 

  다시 호스트네 집으로 돌아가는데 갈색 무리의 오리들을 두고 흰색 오리 혼자 덩그러니 동떨어진게, 왠지 이 나라에 완전하게 속하지 못하고 정착하지 못하고 자리잡지 못한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짠했음.............

 

 

 

  호스트네 돌아와서는 바로 메론을 슥슥 깎아서 먹었다. 엄청 달고 맛있어서 기분이 살짝 좋아짐.

 

 

#4 호스트와 맥도날드. "길에서 지낸다고?"

 

 

  그 다음날에는 방을 보러 다녀왔다. 로테르담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후로 페이스북을 통해 미친듯이 방 뷰잉 스케줄을 잡은 덕분에 몇몇 스케줄이 좀 생겼었다. 근데 이날 보고 온 방은 좀 뭐랄까..... 이 나라(에서 지내는) 애들이 어떤 룸메와 함께 살게 되는가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알지만, 마치 면접이라도 보는 것처럼 사람을 앉혀놓고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뭘 막 받아적길래 좀 긴장됐다. 나랑 베트남에서 온 여자애 둘이서 동시에 방을 보러 가서 그 면접 같은 상황도 같이 겪었는데, 마치 옆에 있는 애보다 내가 너네랑 너네 집에 더 잘 어울릴 걸?! 막 이런 걸 어필해야 될 거 같아서 진짜 부담 오백개였다. 무슨 방 하나 보는 것도 이렇게 경쟁하듯이 붙여놓냐고.......

  돌아오는 길에는 맥도날드에 들러서 간단한 버거 하나를 먹었는데, 이 맥도날드가 24/7 운영을 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다. 사실 호스트한테 내가 카우치서핑을 요청한 날은 이틀밤이라 오늘 그곳을 떠나야 하는데, 만약 다음 잘 곳을 못 구하면 진심으로 이 맥도날드라도 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뭐 한국에서도 하루쯤은 홍대에서 밤새다가 첫차 타고 들어가고 그러잖아...... 내 생각도 정 다음 행선지를 못구하면 하루쯤 맥도날드에서 시간 때우고 그 다음날에는 다른 호스트를 구하거나 아니면 호스텔이나 비앤비라도 들어가야지 하는 거였다. 맥도날드에서 백날천날 있을 생각은 당연히 아니었음ㅋㅋㅋㅋㅋㅋ 그냥 정말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거지.

 

 

  이날은 짐 뺄 것도 염두에 두고 일찌감치 호스트네 돌아오니 호스트도 마침 집에 있어서 같이 마실거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초코우유를 먹고싶다는 나의 말에 호스트가 손수 우유랑 코코아가루랑 설탕 꺼내서 우유 중탕하고 만들어준 초코우유. 원래는 보통 게스트가 호스트한테 집을 제공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요리를 해주거나 한다는데 나는 이 때 참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호스트를 많이 신경쓰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미안할 따름. 내가 로테르담에 정착하고나면 그때 다시 돌아와서 한국음식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나저나, 오늘 여기를 떠나면 어디를 갈 거냐고, 다음 호스트는 구했냐는 호스트의 물음에 "아직 다음 호스트는 못 구했고 근처에 24/7 맥도날드가 있더라고" 하고 말했더니, "맥도날드 간다고? 거기서 지낸다고?"하며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뭔가 영어로 구구절절 "오늘 늦게라도 호스트를 구하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면 오늘만 임시로 맥도날드에 가있고, 내일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정 아니면 내일은 호스텔이나 비앤비 갈거야"라는 말을 영어로 막 다 하기 피곤하기도 하고 해서 그냥 끄덕끄덕 했더니 갑자기 엄청 걱정어린 눈길을 보내면서 그건 아닌것 같단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앞으로 내내 맥도날드에서 밤을 지새고 길에서 산다는 걸로 이해한 모양....... 아니 하루 정도는 몰라도 인생을 통째로 무대책 무모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를 조금 생각하더니 자기가 세입자를 구하는 사람을 한 명 안다며 괜찮다면 내일 오전에 같이 거기 방을 보러 가겠냐고 물어보는 호스트. 나야 땡큐지,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슬쩍 그럼 나 내일 오전에 너랑 다시 움직여야 되니까 오늘 하루만 더 여기서 자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뜻 다음 호스트 못 구하면 그냥 여기서 계속 지내고, 열쇠까지 가져가란다. 내가 맥도날드 얘기 했을 때 진짜 Heartbroke였다며... 그 얘기를 듣는데 갑자기 내가 너무 못난 사람 같아서 좀 미안하고 속상했다. 안 지 이제 이틀 된 사람일 뿐인데도 나를 이렇게까지 신경쓰고 걱정해주는데 여기다 대고 내가 얼마나 섭섭한 소리를 한 건가.. 진심으로 너무 섭섭하고 서운하고 맘이 쓰이는게 느껴져서 참 미안해졌다. 내가 얼마나 경솔한 소리를 한 건가. 진짜 못났다 못났어.

  여러분, 카우치서핑의 세계는 이런 거예요... 물론 좋은 호스트를 만난다는 전제 하에.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 그리고 사랑이 삶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하고 강력한 건지 다시금 느꼈던 카우치서핑의 세계.

 

  결국 나는 이후로도 한 번의 카우치서핑을 더 한 뒤로 지금은 다행히 오래 지낼 곳을 구해서 잘 지내고 있다. 이 방구하는 여정도 참 쉽지 않았던데다가 사람 울적하게 만들었는데... 한창 힘들 시기에 친구랑 폭풍같이 주고받은 카톡이 있길래 읽어보다가 또 울컥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었구나ㅠㅠ 절대 못 잊겠고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오갈 곳 없는 자의 설움에 대해서는 아마 다음 포스팅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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