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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y Heigraphy
이 문화를 사랑한 방식

음악듣기, 피드백, 감상

by Heigraphy 2016.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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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듣기

  음악을 듣는 행위는 생각보다 부지런해야 가능하다. 음악에 대한 애정과 애정하는 음악을 찾아 듣는 행위에 대한 열정도 있어야 하고. 그렇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매장에서 혹은 개인이더라도 습관적으로 음원사이트 차트 1위부터 100위까지를 무작위로 플레이 해서 듣는 음악이 아닌, '찾아 듣는' 음악에 대한 얘기다. 이를테면 내 경우에는 힙합이나 R&B 음악이 예가 되겠지. 그 중에서도 한국힙합이 가장 우선이고.

  요즘 20대에게 가장 인기있는 음악 장르가 아무리 힙합이라고 하고, 음원사이트 차트의 대부분을 점령하는 음악 역시 힙합음악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차트에는 오르지 못한 보물같은 곡들이 아주 많다. 방송에 나오지 않은 뮤지션들의 음악이 특히 더 그렇겠지. 음원차트라는 것도 결국 대중의 인지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인데, 아무래도 미디어를 타지 않으면 '뮤지션의 존재' 자체가 알려질 기회가 매우 적고, 그것이 인기 혹은 인지도로 이어지는데도 영향력이 엄청나니까. 하지만 힙합음악은 대중성에 크게 구애받는 음악은 아니라, "누가 안나왔고, 차트 몇위를 못했고"가 별로 신경 쓰이진 않는다. 다만 이런 장르 팬들은 결국 누군가의 신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대부분 그때그때 '신곡' 메뉴에서, 혹은 제목/아티스트를 직접 검색해서 '찾아 듣는' 수밖에 없다. 이게 뭐가 어려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

  한국힙합만 하더라도 뮤지션이 한 두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음원/앨범이 달에 하나만 발표되는 것도 아니고, 100명이 돌아가며 하루에 한 곡씩만 발표한다고 해도 하루도 빠짐 없이 3개월을 넘게 쫓아가야 겨우 모든 신곡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부지런하면 100일 동안 매일 한 곡씩 총 100곡을 듣는 거고, 게으르면 100일 후에 몰아서 100곡을 듣는 거다(이것도 물론 그만큼의 시간투자를 할 만큼의 애정과 열정이 있어야 하는 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여담이지만 내 음악 듣는 스타일은 한 20일에 한 번씩 몰아서 20곡 듣는 것쯤 되려나. 솔직히 말하면 000000시에 새 곡이 뜬다고 해서 시간 맞춰 바로 찾아 듣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아무리 애정하는 장르라 하더라도, 듣는 나도 사람인지라 항상 빠릿빠릿 할 수는 없다.

 

2. 피드백

  나는 한 번도 내 스스로를 '리스너'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듣고, 향유하는 것뿐인데 그런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 무슨 음악을 듣는 데도 사명감을 가져야 될 것 같거든. 근데 언제부턴가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녹음물을 '피드백' 해달라는 요청을 해온다. 처음 몇 번은 거절도 했다. 나는 그런 거 자신 없다고. 아마추어 플레이어끼리 서로의 음악을 피드백 해주는 것을 봤는데 어느 부분 박자가 어떻고, 음이 어떻고 이런 얘기를 나누던데, 나는 내가 랩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거 잘 모른다고. 그랬더니 음악을 냈을 때 플레이어들만 듣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나 같은 일반인들이 들을 건데, 음악을 듣고 할 말이 없는 건 말이 안된다더라. 하다 못해 '좋다', '별로다' 정도라도.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 그래서 굳이 얘기를 한다면 '느낌' 정도는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어떻게 느낌 가는 대로 '좋다', '별로다'만 얘기할 수 있겠나. 아주 솔직히 말하면 아마추어 랩퍼들의 작업물이 내 맘에 한 번에 쏙 든 적은 거의 없다(애초에 '아마추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듣고 보면 '왜 아마추어인지'가 보일 때가 오히려 아주 많다). 그렇게 치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늘 "별로다" 밖에 없다. 굉장히 성의 없는 한마디지. 반대로 "좋다"고 말해준다고 해도 좋은 피드백은 아니다. 실제로 '아마추어 치고는 박자감각이 괜찮네(가사의 메시지는 썩 그렇진 않았다)'라는 생각에 "좋다"고 했다가 무슨 페북 좋아요 누르냐면서 욕먹은 적도 있다. 그리고 그 "좋다"의 의미가 결국 돌아 돌아 "박자감각만큼은 적당히 무난하다"라는 의미였다는 것을 플레이어가 알았을 때, 그건 그거 나름대로 상처를 받더라.

  좋으면 어디가 왜, 별로면 어디가 왜 그런지 말해줄 필요가 분명히 있다. 그래야 피드백을 받는 사람도 납득이 가고. 그런데, 이렇게 개인적인 느낌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려면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적어도 나로서는). 피드백을 요청받은 곡들은 각잡고 앉아서 기본 30번 정도씩은 플레이 했던 것 같다(많이 들은 건 50번 정도까지도 플레이 해봤다. 참고로 최근에 산 메모리칩에 넣은 음악들 중,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인 Hotline Bling의 플레이 횟수가 89번이다). 내가 해주는 얘기들이 일단 설득력이 없으면 안 되고, 기왕 하는 거 랩퍼에게도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주고 싶으니까. 그러다보니 한 번 듣고 느낌은 와도, '객관적'으로 말해줄 수 있을 때까지 듣는 거다. 그래서 피드백을 할 때마다 늘 약간의 부담감도 가진다.

  결국 피드백을 하는 데 필요한 건 정성이다. 그리고 음악을 들어보겠다는 의지이고. 대부분 나는 가만히 있으면 피드백을 부탁하는 입장에서 먼저 음악을 보내오는 형태로 부탁이 이루어지지만, 음악 찾을 수고를 안한다고 해서 썩 편한 작업은 아니다. 이게 입증된 음악도 아니고, 내가 좋아할거라는 보장은 더더욱 없는 음악인데 꽤 상당한 '시간투자'를 요하기 때문이다. 이 피드백 요청을 한창 많이 받았을 때 든 생각은 '내가 내 음악(신보소식이 들리는 음악)도 못듣는데 여기에 이만큼이나 시간투자를 해야하나?'였다. 실제로 나는 아직도 넉살의 <작은 것들의 신>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아는 동생이 부탁한 노래는 벌써 3차례나 걸쳐 피드백을 해줬으니까.

 

3. 감상

  1월 중순쯤 음반 6장 정도를 한꺼번에 지른 적이 있다. 2월이 다 가기 전에 6장 중 3장의 감상평 같은 것을 남기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감상평을 올리긴 커녕 6장 중 4장은 뜯고, 2장은 아직 뜯지도 못했다. 뜯은 음반도 아직 리핑은 못했다. 그래서 밖에 있는 동안엔 듣지도 못한다. 그런데 어느덧 2월 중순이다.

  나는 음악평론가가 아니지만, 그와는 별개로 성의 없는 감상은 올리고 싶지 않다. 딱히 음악평론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니까 성의 없게 대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래서 사실 음악을 듣고 감상을 적는 것이 물론 굉장히 설레고 즐거운 일이면서도, 주변 플레이어의 음악을 피드백 해주는 것 훨씬 이상으로 부담감이 든다. 그냥 음악 한 곡이 아니라, 개별 곡은 물론 전체가 유기적인 짜임새가 있는 '음반'을 듣고 감상을 남긴다는 것은 더더욱. 사실 작년 통틀어 가장 인상깊게 들은 음반인 에넥도트 감상을 꼭 남겨야지 했는데 위와 같은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해가 바뀌고도 두 달이나 지났다. 마치 잘해내고 싶은데 잘해내야겠다는 부담감 때문에 학교 과제를 미루고 미루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이 과제는 누가 마감일을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평가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잘 쓰고싶은 욕심 때문에 부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요즘은 이 현상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오롯이 음악만 듣고, 글만 쓸 수 있는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거기에 사진 작업이나 영상 작업까지 같이 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그러니까 결론은, 좀 더 부지런히 음악 듣고, 꾸준히 글 쓰고, 나름대로 이 문화를 사랑하고 향유하는 방식들을 이어가야지. 요즘 가장 생각이 많으면서도 고민인 음악듣기-피드백-감상이 전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서 세 가지를 묶어 모처럼 이 게시판을 두드린다.

 

 

2016.02.17. 덧붙임

  음악시장이 '앨범' 보다는 '음원' 위주로 돌아가면서 뮤지션이 음악을 발매하는 간격도, 감상자가 음악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도 굉장히 짧아졌다. 왜 나는 100일 동안 100가지 곡을 부지런히 따라가지 못하고, 20일 정도쯤마다 한 번씩 몰아서 듣는지를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새로운 곡을 접하기 이전에 먼저 접한 곡들을 즐기고 감상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싶어서인 것 같다. 다만 단순한 향유자가 아니라 이 분야(특히 A&R)를 '업(業)'으로 생각한다면 한 곡에 꽂혀 며칠 동안 그 곡만 주구장창 플레이 하는 것은 좋은 '업무습관'은 아니다. 마치 매일 아침 신문을 읽듯이 매일 새로운 음악들을 접하고, 문화적 자본을 쌓고, 그 중에서 원석 같은 음악과 아티스트를 누구보다 먼저 발굴해 내는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이겠지. 머리로는 이해하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하루 이틀 성행했다가 다시 순식간에 잊혀지는 건 마음이 아플 뿐더러, 그렇게 음악을 두어 번 듣고 마는 건 반쪽짜리 감상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감상'이 아니라 그저 음악을 '소비'하는 것 같아 썩 유쾌하지도 않고. 정말 음악은 듣고 듣고 또 들어도 늘 모자라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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