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것과 생각대로 되고 있는 것

 

  매년 어김없이 돌아오는 생일. 하지만 나는 생일에 특별히 티를 내지 않는다. 그 흔한 카톡 알림 설정도 안 해놔서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곤 내가 직접 말해주거나, 이전에 얘기한 걸 상대방이 기억해주는 것뿐이다. 기억해주면 정말로 고맙고 아니어도 괜찮다.

  근데 올해는 (생각지도 못한) 축하를 참 많이 받았다. 생일이라고 어김없이 미역국 끓여주신 엄마, 당일에는 다들 바빠도 주말에 같이 맛있는 것 먹자고 시간 내어준 가족들, 12시 땡 하고 축하해준 내사람들, 벌써 수 년째 기억해주고 축하해준 오랜 친구들, 생각지도 못한 선물까지 보내줘서 감동이었던 친구들, 사랑하고 보고 싶은 우리 DJDC, 언제부턴가 매년 잊지도 않고 영상이든 음성 메시지든 보내주며 축하해주는 친구, 아들 여자친구 생일도 축하해주시고 아직 네덜란드어가 서툰 나에게 잘한다며 아낌없는 칭찬 해주시고 응원해주신 그의 가족들. 이렇게 며칠씩이나 생일 기분 내면서 행복해진 것도 오랜만이었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생일 며칠 전부터 신경 써주고, 한국 시간에 맞춰 축하해주고, 네덜란드 시간으로도 축하해주며 노래 불러준, 고맙고 사랑하는 나의 짝꿍님. 지금은 아쉽게도 멀리서 축하하지만 나중에 만나는 날 레스토랑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선물도 주고받고 quality time을 보내며 우리끼리 축하를 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날이 벌써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올해 생일의 유일한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솔직히 나는 올해 5월에는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네..? 나뿐만 아니라 그의 생일도 있는 달이기에. 내년 5월에는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로!

 

 

 

 

  그럼 생일 당일에는 무엇을 했나? 나를 대접한다는 느낌으로 카페에 가서 혼자 맛있는 거 먹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황금연휴에 걸친 날이다 보니 마음부터 참 여유로웠다. 원래는 볕 좋은 공원 같은 곳에 가서 책이나 읽다 오고 싶었는데, 공원 대신 볕 좋은 카페를 발견해서 냉큼 들어가 앉았다. 기대한 대로 볕이 좋았고, 그래서 분위기도 좋았으며, 생크림단팥빵이 너무나 맛있었던 곳.

 

 

 

 

  올해 생일이 아주 만족스러웠던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아주 재미있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YES24 북클럽에서 감상 가능). 읽자마자 빠져들어 앉은자리에서 후다닥 끝까지 읽은 책은 정말이지 오랜만이다. 어떻게 이런 상상력으로 이런 표현을 했을까? 정말 좋은 작품은 나를 감상에 젖게 하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든다.

  그동안 책 중에서도 소설책을 참 안 읽었다는 사실을 반성하며, 문학동네의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도 구매했다. 크레마의 상태가 이상하여 구매 목록 동기화가 안 되는 관계로 아직 다운을 못 받고 있다만... 한 5-6년 전부터 연례행사처럼 사모으고 있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인데, 그러고 보니 매년 이맘때쯤 나와서 나도 매년 이맘때 셀프 선물하듯 샀던 것 같다. 올해는 또 어떤 작가들의 어떤 작품들이 실려있을지 굉장히 기대된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요즘 일회용 빨대 안 쓰기도 잘 실천하고 있어서 또 기분이 좋다. 다이소에서 1,000원 주고 산 스테인리스 빨대를 들고 다니면서 요긴하게 쓰고 있다. 참 작은 실천이지만, 음료 다 먹고 티슈로 빨대 슥슥 닦고 챙길 때 '오늘도 지구를 지켰다+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생각에 가장 기분 좋다. 사람이 두세 달만 멈춰도 지구가 숨을 쉬는데, 이렇게 작은 실천도 하나 둘 모여 꾸준히 이어간다면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고맙고 감동적이고 뿌듯하고 즐겁고 행복한 생일을 보냈다고. 생각지도 못하게 기쁨을 주는 사람(&것)들과 생각한 대로 되고 있는 것들 덕분에 올해도 잔잔하면서 꽉 차게 보낸 나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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