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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진일기

이 시국에 베이징 서우두 공항 경유하여 귀국한 후기 (2)

by Heigraphy 2020.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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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네덜란드→베이징→인천 귀국 이야기: 

이 시국에 베이징 서우두 공항 경유해서 귀국한 후기 (1)



지금부터 쓸 2편은 귀국 후 이야기





#귀국 후

  이틀 정도가 지났는데 콧물이 조금 나면서 미열이 났다. 감기에 걸리면 보통 코감기+목감기+몸살감기가 쓰리콤보로 함께 와서 한 이틀 전기장판 속에서 앓다가 살아나는데, 이렇게 증상이 있는 듯 없는 듯 하는게 더 이상했고 미열이 있는 것도 찝찝했다. 그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출을 안 했는데, 하루는 꼭 나가야 할 일이 있어서 전날 질병관리본부센터에 전화를 했다. 베이징을 경유로 12시간 머물렀고, 호텔에만 있었고, 기침은 안 하는데 약간의 열감이 있다고 내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경유 전에 중동에 방문한 이력이 있는지 물어보길래 없다고 했더니, 우한 방문 이력 없고, 중동 방문 이력 없고, 기침이나 폐렴 증상도 아니어서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일반 병원을 가도 괜찮다는 답변을 주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확진자가 4명 정도 뿐이었고, 국내 2차, 3차 감염은 없었다)

  그 답변을 들어도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동네 병원을 갔다(애초에 감기 정도로 병원 잘 안 가는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좀 더 확실히 하고 싶었다). 병원 입구에서 "중국 방문 이력이 있으면 질본에 전화를 해봤어도 우리 병원에 바로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전화로 먼저 상담해달라"는 문구가 있길래 문앞에서 전화를 했다. 이미 질본에도 전화를 해봤고 지금 내 상황은 이렇다고 설명을 했더니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고 들어오라고 했다. 그런데 들어가서 접수를 하니 웬걸, 14일 이내 중국 방문자라고 이력이 뜬 모양이다. 진료는 가능한데 혹시 모르니 안에 대기하는 환자를 위해 들어오지 말고 나가서 기다려달라고 해서 밖에 서서 한 30분을 기다렸다.

  진료는 무사히 마쳤는데, 동네 병원.. 아니 그보다도 의원에 가까운 곳이다보니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 자세한 진료는 못했다. 집에 체온계가 없어서 열을 재지 못했었는데, 병원에서 재보니 약 37.2도로 미열이 맞았다. 내 증상에 맞는 약을 처방해주면서 이걸 먹고도 완화되는 것 같지 않으면 반드시 선별 진료소에 가라고 안내를 해주셨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갔더니 접수해주시는 분이 무심하게 보다가 또 중국 방문 이력을 보고 "약사님 이거 뭐예요?! 중국 다녀왔어요??!?!!!??"하면서 엄청 큰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근데 정작 본인이랑 약사는 마스크도 안 쓰고 있었음). 다른 손님들도 있었는데 본인이 오히려 혼비백산 만드심... 병원에서 조심조심 한 것까지는 백번이고 이해했는데, 약국의 반응은 좀 언짢았다. 사람을 다짜고짜 무슨 걸어다니는 바이러스 취급하는 것 같아서. 이때 차이니즈 포빅(Chinese phobic)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더라. 걱정이 되는 것은 이해하지만 조심하는 것과 차별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거니까. 과연 나는 은연 중에 그러진 않았는지 반성도 많이 했다.



#나를 비롯한 중국 방문한 친구들의 근황

  나는 주변에 중국에 방문한 친구도 있고, 중국인 유학생 친구들도 있어서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그들은 중국에 방문했을 때 베이징이나 칭다오 정도에만 머물렀고, 아무도 위험지역(우한 및 후베이성)이나 근처에 간 사람은 없지만 알아서 한국에 와서 스스로 조심하고 있다.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도 그들에게 지시한 적도 없지만 스스로 14일 자가 격리들을 하고 있다. 마트도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장도 온라인으로 본다고 한다. 한 친구는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긴 하지만 너무 답답해서 며칠에 한 번 정도는 밤 10-11시쯤 사람이 없는 시간에 나가서 산책을 한 바퀴 하고 온다고 했다. (근데 그 시간엔 본인도 무서워서 산책 길게 못하고 금방 들어온다는 말이 짠했고, 노력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음)

  나도 그 친구들과 자체 자가 격리 기간이 비슷해서 그 마음이 백번 이해되었다. 결론적으로 가벼운 코감기 증상과 미열은 진작에 나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출은 계속 안 했다. 100% 자의가 아닌, 자의 반 타의 반 외출 자제는 집순이도 지겹게 만든다. 내일(2/10)이 되면 딱 15일이 되는데, 기념으로 꼭 꼭 바깥 커피를 마시고 말테다.



#네덜란드에 있는게 나았을까?

  다만 문제는 자체 격리가 끝나도 사실 갈 데가 별로 없다는 거다. 카페 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실제로 한국에 돌아와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가장 기대한 건 수영을 다시 배우는 거였는데, 얼마 전에 수영장이 무기한 휴관을 해버렸다. 도서관도 휴관, 체육센터도 휴관, 행사도 많이 취소되고, 사람 많은 곳 자주 돌아다니는 것도 좀 그래서 친구들한테 만나자고 하기도 좀 그렇다. 연말연초를 네덜란드에서 보내서 나 아직 친구들이랑 송년회도 신년회도 아무것도 못했는데... 한국 와서 정말이지 이렇게 할 것도, 계획도 없이 심심하게 보내는 건 처음이다. (이럴 땐 도대체 뭘 하면 좋을지 아시는 분? 친구들은 영화랑 드라마 많이 본다는데 그것도 너무 지겹다...)

  차라리 네덜란드에 남았더라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을 해본다. 그럼 적어도 짝꿍님이랑 놀 수 있고, 외출은 자유롭게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요즘 네덜란드 한인 커뮤니티를 보면, 안타깝게도 그곳도 혐오와 차별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더라. 대상은 동아시아인 전체가 된다. (사실 시국이 이래서라기보다 혐오와 차별을 할 애들은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음. 걔네는 코로나 아니었어도 했을 것) 이런 분위기 속에 네덜란드에 있는게 진짜로 나았을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에 있으면 몸은 편했을지언정 마음은 불편했을 거고, 지금 한국에서는 몸은 좀 불편하지만 마음은 훨씬 편하다.


  사실 다 필요없고 우리 가족 건강한 건 확인했으니 빨리 수영이나 재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에 있는데도 수영을 못한다면 의미가 없ㅇ..ㅓ..

  과연 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으나, 약이 개발되고 확진자들도 빨리 나아서 모두가 불안에 떨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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