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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y Heigraphy
시각적 기록/사색하는 연습장

"평생 안 할 게 아니라면 지금 해"

by Heigraphy 2017.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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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안 할 게 아니라면 지금 해" 나의 좌우명이 된 그 말에 대해.

 

 

  네덜란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작년 상반기에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간 친구인데, 돌아간 지 1년이 조금 안 된 지금은 자신의 모국에서 무척 바쁘게 지내는 모양이다. 마지막 학기를 지내면서 인턴십을 하고 있으며, 여름 졸업을 앞두고 논문도 쓰고 있는데 특히 논문 쓰는게 여간 힘든 게 아니란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한국에 살 때 썼던 블로그 글들을 봤는데, "그 때가 너무 행복했고 모든 것이 좋았던 것이 기억나서, 지금은 힘들고 한국이 그리운 마음에 눈물 찔끔 났다" 뭐 이런 한탄을 해왔다. 덧붙여 논문을 패스할 수 있을 지 잘 모르겠는데 꼭 패스해서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뻔하게 '힘내'라는 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던 터라 출근길 내내 고민고민 끝에 장문의 답장을 보내줬다. 나도 너와 아주 같은 시기가 있었는데, 나는 이 말을 떠올리며 극복했노라고.

 

  나 또한 학부 시절에 6개월 간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하고 온 적이 있다. 사실 말이 공부지, 한국에서의 생활과 비교하면 성적에 대한 부담은 한껏 덜어놓은 채, 여행도 많이 다니고,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하루하루가 새로우면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분을 만끽하면서 살기에 바빴다. 그렇게 지난 2n년의 인생 중에서 가장 긴 6개월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오기 며칠 전부터, 돌아가면 이런 것들은 꼭 해야지 하며 다짐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국내로라도 여행을 다니는 것. 물론 학교를 다닐 거지만 4학년 1학기라 수업을 조금 덜 들을 거기도 했으니, 네덜란드에서 살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생활을 한국에서도 한 번 해보자며 엄청난 다짐을 했었더랬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 달에 한 번은 커녕, 그 학기를 통틀어 여행을 한 번도 못 갔던 걸로 기억한다. 일단 당장의 생활비도 없었기에 일을 해야했고, 한국에서의 학교생활은 '학점'이라는 직접적인 수치로 나타나기 때문에 공부 또한 소흘히 할 수 없는데, 대학생이라면 혹은 졸업생이라면 알지 않나, 보통 15-18학점 정도를 들으면 평소에도 과제가 얼마나 쏟아지는지. 그리고 그 과제 안에는 '논문'이 있었다.

  답답했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공부가 하기 싫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 매여있는 게 숨막혔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과제니 시험이니 논문이니 하는 것들에 시간을 더 써야하는 생활이 싫었다. 정말 모든 게 싫었다. 그 중 가장 나태해졌던 과제가 바로 '논문'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학기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상태라 다음 학기는 무조건 휴학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자면 굳이 지금 당장 논문을 패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문을 안 쓰고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않는다고 해서 뭔가 다른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다음날까지 논문 개요를 짜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특별한 일정이 있거나 바쁜 것도 아니면서 안 했다. 괜히 지난 날을 생각하며 현재와 비교되어 우울해지기나 하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아무 것도 안 할 생각으로 누워서 핸드폰만 만지고 있기도 했다. 끝까지 할 마음이 안 들면? 안 하고 fail 받지 뭐! 그런 대책 없는 똥배짱이었던 것 같다.

  "나 너무 하기 싫은데 그냥 포기할까봐ㅋㅋ" 장난 반 진심 반이 담긴 메시지를 친구에게 보냈는데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해라ㅋㅋ"라는 친구의 답장이 왔다. 평소 같으면 정말 식상하다고 혀를 찼을 말인데 그날따라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좋았던 지난 날을 추억한다는 핑계로 과거의 시간에 얽매여서 현실을 계속 외면하고 있었고, 누군가 이제 정신차리고 현실로 돌아오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언젠가는 졸업을 할 거고 그러려면 논문을 쓸 테고, 지금은 억지로나마 진척된 상황들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감이 있는 상태인데, 이걸 다시 전부 내려놓고 미루는게 과연 나한테 더 좋은 건가?'

 

  결론은 당연히 '아니다'였다. 내가 하겠다고 선택한 것을 포기하려면 둘 중 적어도 하나는 충족되어야 했다. 하나는 '이 일을 포기하는 대신 이것에 집중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서 내가 행복해질 만한 다른 무언가가 있느냐', 다른 하나는 '포기하면 지금뿐 아니라 그것을 평생 안 할 수 있느냐'였다. 둘 다 답은 '아니다'였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분야의 공부를 좋아한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들어온 학과이고 내가 좋아서 하던 공부였다. 다만 지금 이것이 손에 잡히지 않는 이유는, 지금 당장 과거의 추억에 빠져서 현재를 못 돌보기 때문일 뿐이다.

 

  '물론 지금은 조금 하기 싫다. 그러나 지금 안 한다고 평생 안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해버리면 평생 안 해도 된다. 그럼, 지금 하자.'

 

  이런 상황에서 처음 다짐하게 된 말이었다. 하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을 때.

  지금은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을 괜히 더 미루지 말고 결단력 있게 해내고자 할 때 사용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특히 해외)여행을 갈 때, "평생 안 갈 게 아니면 지금 가자"라고. 주변 사람들은 원래부터 '결단력'을 위해서만 쓰는 말인 줄 알지만, 아니다. 균형이 있는 문장이다.

 

  "평생 안 할 게 아니라면 지금 해"

 

  삶을 열심히도 살고 즐기면서도 사는데에 딱 적당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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