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by Heigraphy
시각적 기록/사색하는 연습장

각자도생(各自圖生)

by Heigraphy 2020. 12. 4.
반응형


0. 각자도생(各自圖生): 제각기 살아 나갈 방도를 꾀함

1. 2020년에 가장 많이 내뱉었던 말. 가끔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사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사람들이 몰랐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 간의 사랑과 신뢰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살만하다는 것을, 수년 전 집도 없이 카우치서핑을 전전할 때의 경험을 통해 깊이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대하는 나의 기본적인 자세는 '피해 주지 않고 기대하지 않기'이다. 아니, 관계에 있어 나의 자세는 더 나아가 아주 방어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했다.

2. 아파도 아파할 시간 없고, 슬퍼도 슬퍼할 시간 없던 11월이 지났다. 인생사 원래 존버의 연속임을 오래 전부터 깨달았지만,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은 또 처음이었다. 우울할 땐 한껏 우울해하다가 바닥을 찍고 올라와야 하는데, 현실에 치여서 그 심연에 닿기는커녕 내가 지금 우울한 건 맞는지 헷갈리는 시간을 보냈다. 감정을 미뤄둔다는 건 그 순간엔 잊은 것 같아도 결국엔 더 큰 괴로움으로 찾아온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슬프거나 감동적인 영화만 찾아본다. 해소 못한 감정들을 이렇게라도 흘려보내려고, 울려고 찾아본다.

3. 예전에 한창 인스타그램 만화를 열심히 볼 때, 정신과 치료를 받는 내용의 만화를 봤다. 작가님의 자전적인 이야기였는데, 그때 작가님이 정신과를 처음 찾은 계기는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데 자신이 탈 버스가 그냥 지나가자 갑자기 주저앉아 엉엉 운" 일이었다고 한다. 올 한 해 나한테도 그런 순간이 참 많았는데. 지금은, 그때 길거리에서 왜 혼자 주저앉아 울었더라, 이유도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있었다. 나는 가끔 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4. 다시, 각자도생(各自圖生). 무엇을 그렇게까지 혼자 애썼고, 애쓰려고 했나. 사람들에게 지쳤다는 이유로 오히려 내가 나를 궁지로 몰아 넣은 것은 아닐까. 올 한 해 나도 모르게 가장 많이 되뇌인 이 말이 나를 더 슬프게 한다. 그런 나는 사실 누구보다 사랑을 원하고 필요로 해.


Copyright ⓒ 2020 Heigraphy All Rights Reserved.

반응형

'시각적 기록 > 사색하는 연습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물 속  (0) 2021.02.10
버킷리스트 ver. 2020 돌아보기  (5) 2020.12.09
금요일 같은 목요일  (8) 2020.05.21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6) 2020.05.11
누워서 쓰는 글  (4) 2020.04.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