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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다책

[북클럽 책 리뷰] 역사의 쓸모, 최태성

by Heigraphy 2021.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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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북클럽 도서 《역사의 쓸모》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를 보고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을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안 읽어볼 수 없을 거다. 아니, 꼭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가 아니더라도 그냥 한국사 시험을 진심을 다해 본 사람이라면 여운을 가지고 읽어보면 정말 좋은 책이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인생의 롤모델을 찾을 수도 있다. 나는 운 좋게도 몇 명 찾은 것 같다.

  이 책은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크게 4장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챕터에서 역사 속 인물들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고 그 결과로 어떤 세상이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이를 현대에 적용하여 개인의 삶은 물론 시대적 고민이나 위기를 어떻게 넘기면 좋을지 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이 책은 한 인물의 업적이 아닌 그들의 삶 그 자체를 마주하려 하는 의미 깊은 시도가 담겨있지 않나 싶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만난 인생의 롤모델을 몇 명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역사가 무엇인지 알고 끊임없이 기록했던 인물, 정약용

  정약용은 18년간 귀양살이를 했고,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18년을 보낸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때로는 비참하고 암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폐족이 되었음을 한탄하거나 힘든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읽고 쓰는 일을 꾸준히 해나갔습니다. 그의 여생은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나 어쩌면 삶의 마지막 투쟁이었을 겁니다. 역사를 알았기에 고난을 버티며 투쟁해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61/230)

 

위기를 기회로 삼아 비전을 제시한 인물, 선덕여왕

  저는 신라의 삼국통일, 그 발칙한 상상이 황룡사 9층 목탑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선덕여왕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가슴에 품고,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었어요. 그렇게 꿈을 향해 한 발 내디딘 것이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분명한 비전이 있었기에 혁신도 가능했습니다. 그저 지금 당장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급급했더라면, 또는 강국이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면 혁신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69/230)

 

'최초'나 '최고'보다는 '영향력'에 방점을 찍고 바라보기, 세종대왕과 구텐베르크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후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양의 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누구나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사고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철학, 의학,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뒤처져 있던 유럽이 수많은 학자를 배출해내며 앞서 나갈 수 있게 된 것 또한 인쇄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7/230)

  한글이 없었다면 일반 백성끼리는 편지 한 장 주고받을 수 없었겠구나. …… 최초의 기술이나 최고의 기술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향력입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아이폰, 한글의 공통점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대중의 욕구를 발견해 충족시켰다는 것입니다. (90/230)

 

선택의 기로에서 협상의 정수를 보여줬던 인물, 서희

  거란의 패를 읽은 서희는 탐색전을 끝내고 먼저 제안합니다. … 이 회담으로 고려는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를 얻게 됩니다. 거란에 땅을 줘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거란한테서 땅을 받아 온 거예요. (95-96/230)

 

'삶을 던진다는 것'의 의미를 일생으로 보여준 인물, 김육

  호서대동법이 시행되고 김육이 어떤 말을 했는지가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 "나는 학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저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줄어서 너무 기분이 좋다." 백성이 배고픈데 무슨 학문이 필요하냐는 거예요. 성리학이며 양명학이 무슨 소용인가, 백성이 잘살면 최고지. 이것이 바로 그의 사상이었습니다. (148/230)

  인생은 단 한 번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해답에 목말라 있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위해 책을 읽고 조언을 듣고 때로는 직접 부딪쳐가면서 답을 구합니다. 저는 김육이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 건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일생으로 답했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던진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는 분이죠. (149/230)

 

동사의 꿈을 꾸었기에 일제강점기 판사에서 독립운동가가 된 인물, 박상진

  박상진의 꿈은 판사가 아니었어요. 그의 꿈은 명사가 아니었습니다. 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늘 당하고만 사는 평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려고 판사가 된 것입니다. 이게 그의 꿈이었어요.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판사라는 직업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진짜 꿈이었으니까요. 그 꿈을 향해 나아간 것뿐입니다. (162/230)

 

 

《역사의 쓸모》, 최태성, 다산초당, 2019.

  역사에 만약(if)은 없다지만 우리는 종종 생각하곤 한다. 예를 들면,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같은 것들. 심지어 나는 강의를 볼 때조차도 조선이 아닌 고려가 왕조를 이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곤 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리고 책을 읽어볼수록 역사가 이렇게 흐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 이유는 역사 속 인물들의 무수한 선택과 삶의 서사를 통해 납득이 된다. 그들의 삶이 현재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배울 점은 배우고 실수는 경계하면 된다.

  책을 통해 수많은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을 롤모델로 삼으면서, 지난 한 달간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내 인생의 큰 그림, 비전은 무엇인가'가 되었다. 아직도 찾는 중이지만, 부디 정약용처럼 끊임없이 읽고 쓰며, 선덕여왕처럼 보다 큰 비전을 세우고, 박상진처럼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꾸고, 그 꿈을 김육처럼 온 삶을 던져 이루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 과정에서 장보고처럼 한계를 깨고, 서희 같은 통찰력을 가지고, 세종대왕처럼 선한 영향력까지 행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역사는 나 자신을 공부하고 나아가 타인을 공부하고, 그보다 더 나아가 세상을 공부하는 일이죠. 이 책에서 계속 얘기하는 것들도 결국은 모두 여기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219-220/230)

 

  역사를 안다는 것은 나, 너, 우리를 이해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이제 저자가 말하는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된다. 역사를 이렇게 인물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미시적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덕분에 역사를 공부했던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다. 이 여정을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잘 이끌어준 저자에게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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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밖의 여담)

  사실 저자는 '역사의 쓸모'와 같은 제목을 붙이기가 매우 조심스러웠는데, 이는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이라고 한다. 본 제목이 조심스러웠던 이유는, 역사를 '쓸모'와 같은 실용주의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조심스럽기 때문이라고. 또, 5,000년 역사를 되돌아보면 시대의 대학자들은 책 제목을 지을 때 자신을 굉장히 낮추곤 했는데 본인은 굉장히 당당한(?) 이름으로 짓는 것이 좀 부끄러웠다고 한다. (예를 들면 고려시대 학자 이제현은 《역옹패설》이라는 책을 지었는데, 이는 대략 '늙은이의 보잘 것 없는 소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책 제목을 굳이 짓자면 '역사의 쓸모'가 아니라 '(다른 많은 중요한 것들이 있지만) 역사 쓸모가 있다' 정도로 짓고 싶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ㅋㅋㅋㅋ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강의를 보면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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