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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다책

[책 리뷰] 마션(The Martian), 앤디 위어(Andy Weir)

by Heigraphy 2021.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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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달 책 리뷰는 YES24북클럽 도서가 아닌 일반 도서, 《마션》이다. 예전에 북클럽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읽으려고 찾아보니 없길래 오랜만에 도서관 가서 종이책을 빌렸다. 물론 북클럽에만 없을 뿐 ebook은 있다. 애초에 이 책은 미국에서 킨들(kindle)용 도서로 처음 발간된 거라 시작이 전자책이다.

  한국에선 2015년에 번역되고 같은 해에 영화로도 개봉된 작품. 당시에 꽤 화제가 되었던 것도 같은데 영화도 보지 않아서 소설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가 지인의 추천을 받아 읽게 되었다. SF소설 중에서도 허무맹랑한 소설은 딱히 취향이 아닌데 공학도가 인정한 소설이라 믿고 보기 시작했다.

 

 

《마션》, 앤디 위어, 박아람 역, 알에이치코리아, 2015.

  《마션》의 소제목은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화성에서 홀로 살아남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크 와트니는 나사에서 파견된 화성 탐사대원으로 동료 대원들과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러나 6화성일째 예기치 못한 모래 폭풍이 그들을 덮치며 임무를 포기한 채 긴박하게 지구로 복귀해야 했고, 그 상황에 와트니는 폭풍과 함께 날아온 안테나에 찔려 상처 입고 저만치 날아가며 동료 대원들의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모두가 위험한 상황에 결국 동료들은 와트니를 찾지 못한 채 출발했고, 모두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와트니는 극적으로 살아남아 아무도 없는 화성에서 혼자 삶을 이어간다.

  생존일을 늘리기 위해 그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 감자를 키우는데 성공하는가 하면, 한정된 자원 안에서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물을 만들고, 때론 시설물을 분리하고 재조합하여 새로운 환경과 도구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로버를 타고 몇 날 며칠을 운전만 하는 운전수가 되기도 했다가, 화성의 위성을 보고 길을 찾는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그의 크고 작은 시도가 성공할 때마다 함께 희열을 느끼다 보면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어느새 훌쩍 넘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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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서 David Bowie의 노래 Space Oddity가 생각났다. 이전까지 내가 생각하던 '우주 속 고립된 인간'의 이미지는 딱 보위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광활한 시공을 떠돌며 무한한 외로움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때론 그 안에서의 내가 아주 작은 점 같아 사색에 잠기는 그런 것. 그래서 사실 소설을 읽기 전엔 우주의 작은 점에 불과한 인간의 인간적 사색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마션》은 오히려 내 머릿속 고착화된 이미지를 유쾌한 방법으로 파괴한다. 와트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화성에서의 삶을 개척해나간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나간다. 한정된 자원과 한정된 식량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 연민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좆됐다"라고 하면서도 다음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유머도 잃지 않는다. 나사의 위성사진에 "쪼오아!"(*'좋아!' 아님)라는 말을 남기는가 하면, 심각한 교신에 시답잖은 농담을 덧붙이고, '화성에서 최초로 ~해본 사람'이라는 것에 때론 자부심을 느끼고 '최초'의 행동들에 타이틀을 붙인다. 그렇게 우주에 홀로 고립되어 생존하는 게 반대로 새로운 도전이자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짐작건대, 일부 박테리아의 주위에 얼음주머니가 형성되면서 그 안에 생존을 가능케 할 만큼 압력이 들어찼을 것이고 기온도 죽을 만큼 낮지 않았을 것이다. 수십만 마리의 박테리아들 가운데 한 마리만 살아남아도 멸종을 면할 수 있다.
  생(生)은 놀랍도록 끈질기다. 그들도 나만큼이나 죽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p.397)

  주인공이 은연 중에 비친, 삶에 대한 갈망이 돋보이던 부분. 아니, 사실 그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소설을 계속 이끌어오지만, 소설 내내 와트니가 너무 유쾌하고 마치 흥미로운 실험을 하는 것만 같아 그가 얼마나 절박한 심정인지를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고 해야 하나. 비슷한 맥락으로 소설 속에서 와트니 스스로가 자신의 건강 상태 같은 것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기 때문에, 나사에서 짐작하는 모습을 통해 그가 힘들겠구나 문득 깨닫게 될 뿐이다.

  화성에서의 생존은 그야말로 어나더레벨이다. 먹고 배변하고 숨 쉬는 것 하나도 정확한 계산과 실험이 없이는 섣불리 실행하기 힘들다. 덕분에 물리학, 생물학, 화학, 기계공학 등등 온갖 과학적 지식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과적 상상력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비전공자로서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읽는데 무리는 없었다.

  책을 읽으며 보위의 노래를 너무 들었더니 이젠 보위의 노래를 들어도 사무치는 외로움과 무력감이 조금은 덜하다. 그만큼 '고립된 우주인' 혹은 '우주'에 그 자체에 대한 나의 관념을 조금 바꿔준 책. 새로운 분야의 상상력이 +1 증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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