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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y Heigraphy
여기저기 살아보기/태국 일기

이사 완료

by Heigraphy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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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태국살이 1년, 혼자 집 얻어서 산 지는 약 10개월 만에 이사를 했다. 현재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무척 만족스럽다. 이전 집은 어땠는지 벌써 기억도 잘 안 날 만큼.

  첫 집을 보러 다닐 때는 무조건 일터에서 가까운 곳에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만 봤다. 주변 시세는 꽤 비쌌다. 그래서 마음에 쏙 든 곳이라기보다 적당히 괜찮은 곳에 그나마 괜찮은 가격에 입주했다. 실제로 10개월을 나름대로 잘 살았다.

  첫 집을 보러 다닐 때 꽤 여러 방을 봤는데 5층, 12층, 24층 등등 높이도 다양했다. 10층 이상의 방을 볼 때마다 느낀 건 뭔가 불안하다는 느낌이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줘야 할 안정감은 없고, 창밖을 내다보면 뭔가 아슬아슬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집은 수영장이 BTS 다니는 눈높이에 있는데 그게 또 유리로 세운 벽을 통해 다 보여서, 수영장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아찔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생각보다 고층 집은 안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지금 집은 무려 30층이 넘는 건물에 각종 공용시설도 대체로 높은 층에 위치한다. 수영장, 헬스장, 코워킹스페이스 등등. 일주일 동안 수영장과 코워킹스페이스를 이용해봤는데 그렇게 안정적일 수가 없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방콕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은 오히려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간 다른 집에서 느꼈던 불안감은, 층수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나 인테리어, 혹은 주변 환경의 문제였던 듯하다. 지금은 심지어 방에서도 발아래 BTS가 지나다니는 게 보이는데 불안하기는커녕 가끔씩 멍 때리고 일부러 쳐다본다.

  이전에 살던 집은 건물 전체가 고작 8층짜리인 곳에 내 방은 5층이었다. 옥상이 있어서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방에서 보는 뷰는 좀 아쉬워도 종종 옥상 올라가면 좀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약했다. 근데 계약서 다 쓰고 나니 일반인은 옥상에 못 올라간다는 거다. 관리자만 올라갈 수 있다고. 그때 약간의 배신감마저 들었다.

  이전 집주인은 좋은 사람이었다. 태국에서는 (특히 외국인에게) 보증금 관련해서 장난치거나 까다롭게 구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들었는데, 그 집주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는 동안 한두 번 정도밖에 못 보긴 했지만 볼 때마다 먹을 거나 선물도 사다주고, 이사하는 날까지도 큰 도움을 줬다. 내가 꽤 괜찮은 세입자였는지 마지막에 월세를 조금 조정해 줄 의향도 있다고 말하면서까지 나를 붙잡고 싶어 했지만, 그 집에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재미없는 집이었다. 매우. 이 집에 살면서 불편했던 점이나 자기가 알아두면 좋을 만한 게 있다면 말해달라고 했지만, 솔직하게 다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잘 지내다가 간다고 말할 수밖엔.

  작은 건물이라 세대 수가 적었다. 외국인인 내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모든 행동을 필요 이상으로 조심하게 된다. 공용공간은 1층에 로비 겸 코워킹스페이스 하나뿐이었는데, 늘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여자가 있었다. 열일하는 입주민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관리사무소 사람이거나, 적어도 관리사무소랑 친분이 엄청 두터운 사람이었다. 본인 할 일 하는 척하면서 지나다니는 사람을 하나하나 쳐다본다. 감시당하는 기분이라고 하면 오버한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시야에 우연히 들어온 사람만 보는 게 아니라 고개를 돌려가면서까지 필요 이상으로 쳐다봐서 매우 불편했다.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눈 앞에서 사람이 지나가도 신경도 안 쓰일 것 같은데. 나중에 그 자리가 비어 있어도 앉기도 애매하다. 곧 그녀가 나타나서 자기 자리를 주장할 것만 같거든. 지은 지 얼마 안 된 신축건물인데 벌써 하자가 많아서 공사를 많이 하고, 공사 예정일을 지킨 적이 없다. 하여튼 관리사무소가 일을 참 못한다고 많이 느꼈다. 창밖에 보이는 건물은 내가 지낸 동안 내내 공사를 했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었다. 덕분에 집에 있는 날이면 공사 소리에 하루도 조용하게 보낸 적이 없다. 가끔은 어디선가 담배냄새가 막 났다. 방에서든 발코니에서든 흡연은 금지되어 있는데 주변 집에서 몰래 피는 게 분명했다. 고약했다.

  이 외에도 아쉬운 점을 말해보라면 더 많은데, 하여튼 이런 미묘하고도 혼자만 예민해 보이는 얘기를 집주인한테 어떻게 다 하냔 말이야. 차라리 방에 뭔가 하자가 있어서 나간다고 말하는 게 더 쉬울 듯하다.

  몇 년을 살아도 외국인 등록증도 안 나와서, 어딜 가든 늘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단기 외국인 방문객 취급을 받는 나라에서, 보다 로컬 같은 곳에서 살면 로컬처럼 동화가 될 수 있겠거니 착각한 거 같다. 오히려 그 사이에서 더욱 눈에 띄는 이방인이 될 뿐인데. 갈수록 나는 공용공간 이용 시간이 줄어들었고, 방에 있을 때면 창문을 다 닫고 커텐을 치고 내 방 이외의 공간을 차단하며 살았다. 적은 세대수에 사람이 적어서 조용하다고 느낀 것은, 그 안에서 옅은 기침만 해도 매우 큰 소리로 느껴질 수 있는, 오히려 역설적인 것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군중 속에서 익명의 거주자 1 정도로 남는 곳을 가야지. 그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집주인이 월세 조정까지 제안하면서 재고를 권했을 때, 얼마까지 조정해 줄 수 있는지 묻지도 않고, 고맙지만 나는 더 큰 컴플렉스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그게 내 가장 근본적인 이사의 이유였다.

 

 

현재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

  예전에 시골집 살 때부터 느꼈지만 혼자 사는 집이 쓸데없이 넓으면 에너지 아깝고 청소하기만 힘들다. 원 베드룸에서 스튜디오로 이사 온 지금이 딱 좋다. 방콕 시내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배치된 커다란 책상에서 부디 남은 일 년 동안 번뜩이는 영감을 받고 열심히 작업하고 다양한 기록을 남길 수 있기를. 블로그도 보다 자주 찾아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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