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예약해두었던 저스트녹(Justnok) 야간 자전거투어 시간이 다가왔다. 6시부터 투어가 시작인지라 5시 30분까지 저스트녹으로 가있어야 했는데, 숙소에서 저스트녹까지 "툭툭카를 불러서 가"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이때까지만 해도 쫄보라 택시도 못 잡는 바람에 약 10분 정도 지각했다.
땀 뻘뻘 흘리며 걸어가다가 녹(Nok)에게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고, 내가 도착한 후 녹은 위 사진처럼 커피와 물을 내준 후 내게 답장을 보냈다. 바로 옆에 있는데 문자가 오는 상황이 웃겨서 "녹, 지금 나한테 문자 보냈어요" 했더니, 이 번호가 나인 줄 몰랐다며 녹도 허허 웃어버렸다.
녹이 내준 커피와 물을 마시며 이날 투어를 함께 할 멤버들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나를 포함하여 6명의 사람들이 함께하게 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전부 한국인이었다. 언제나처럼 여행 중에 한국인을(그것도 이렇게 단체로) 만나면 편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든다.
투어 시작 전 30분이나 일찍 온 것은 사실 자기 키에 맞는 자전거를 고르고, 헬멧 등의 장비를 미리 준비하기 위함이다. 튼튼해보이는 레저용 자전거인 것 같아 또 안심이다. 헬멧은 직접 착용해보고 고를 수 있고, 자전거를 고르면 핸들쪽에 명찰을 달아주며, 투어 시작 전에 스포츠 물병에 물을 가득 담아 한 사람당 하나씩 제공한다. 작은 소지품(크로스백)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 얇은 천 백팩도 제공한다. 이렇게 모든 인원의 준비가 끝나고 약속했던 시간이 되면 투어 시작!
가끔은 대로로, 가끔은 아주 좁은 골목길로 달리며 자전거투어를 진행했다. 가이드+투어리스트 총 7명의 사람들이 한 줄로 서로의 뒤를 쫓아 달려 처음 도착한 목적지는 바로 짜오프라야강변(Chao Phraya River). 이곳에서 가이드(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분께서 우리에게 자유롭게 둘러보도록 시간을 주셨다.
넘실대는 강물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얼마나 좋던지. 거기다 해가 슬슬 질 시간이라 하늘과 물의 색깔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짜오프라야 강변에서 버스킹(Busking)을 하시던 아저씨. 실력을 뽐내기 위함도, 이걸로 돈을 벌기 위함도 아닌 것 같다. 아- 이렇게 평화로운 광경이 또 있을까?
잔디밭에 앉아 평일 저녁의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 저 뒤에 보이는 흰색 성 같은 것은 요새인데, 나중에 가이드로부터 그것의 역사적 의의를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공원의 다른 한켠에서는 리더의 동작과 구호를 따라 열심히 체조를 하던 주민들도 볼 수 있었다. 구호가 어찌나 파이팅이 넘치시고, 다들 동작이 파워풀하신지 지나가던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편으로는, 적어도 여기는 관광객보다는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우리가 지금까지 보면서 지나온 공원 이름은 '싼띠차이 프라깐 공원(Santichaiprakarn Park)'이다.
요새는 공원 바로 뒤쪽에 있으며, 이름은 '프라쑤멘(파쑤멘) 요새(Phra Sumen Fort)'이다. 약 230년 전 라마 1세가 방콕을 수도로 삼으며 만든 14개의 요새 중 하나. 현재는 14개 중 2개만 남아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프라쑤멘 요새이다. 이 요새는 옛날 방콕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것으로 초기의 방콕이 얼마나 작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투어 예약을 하러 갔을 때 녹(Nok)이 짧게나마 말해주었던 방콕의 역사가 문득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몇 개의 거대한 운하를 포함한 지역 전체를 '방콕'이라고 일컫지만, 사실은 아주 작은 지역에서부터 시작되었던 '방콕'. 마치 우리나라의 서울이 사대문 안에서 시작되어 마침내는 지금과 같은 크기로 뻗어나간 것과 비슷한 느낌인 걸?
이렇게 끊어진 성벽도 무슨 의미가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해주어서 감탄하고 사진까지 남겨두었는데, 정작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나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아마 이 성벽을 경계로 수도(방콕)와 수도 외 지역을 나누었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한 가지 확실한 건 단면에 보이는 붉은 벽돌이 바로 흰색으로 덮이기 전, 옛 성벽의 모습이라는 거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다시 떠날 채비를 하는 중. 이렇게 보니 무슨 드림팀 같다.
다시 짜오프라야 강변을 따라 달리는데, 어느새 해가 훌쩍 져서 이렇게나 어두워졌다. 햇빛이 비쳐 파랬던 강물에는 이제 주황색 도시의 빛이 비쳐 마치 물감 대신 빛으로 수채화를 그린 듯 빛났다.
날이 어두워지니 다리 위 노란 불꽃 모양의 불도 눈에 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달리며 배려해준 가이드 덕분에, 가는데 급급하기보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달릴 수 있어 좋았다. (사실 나는 자전거를 꽤 잘 타는 편이기도 하다.) 약 4시간 가량 계속되는 라이딩이라 힘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스트녹의 가이드는 누군가를 쉽게 낙오시키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여정은 투어의 초반일 뿐이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방콕 구시가지의 사원 등을 보러 짜오프라야 강을 건너갈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여행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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