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를 처음부터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를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한 이유 중 8할은 빈지노(Beenzino)의 'We are going to'라는 노래가 차지했었기에, 노래에 나온 가사들을 다 해보고 싶었다. "아침식사는 열대과일로, 점심에는 풋마사지(foot massage). Time to go to 카오산로드, 우린 툭툭카를 불러서 가!" 이런 것들. 그 중에 이번 여행기에 해당하는 구절은 "점심에는 풋마사지(foot massage)"이다.
사실 노래 때문만은 아니고, 점심에 밖을 돌아다닐 만한 날씨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타이밍쯤 실내에서 마사지를 받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트립어드바이저를 통해 카오산로드 근처에 있는 마사지 가게를 찾았는데, 지도에서 알려준 곳과는 다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막다른 골목을 만나고 말았다. 그런데 그 골목 끝에도 마사지 가게가 자리잡고 있는게 아닌가? 태국에서는 무엇을 해도 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계획에 없던 것을 했다가 생각한 것보다 실망스러운 결과를 맞는다 하더라도 도전한 것에 대해서 리스크가 크지 않았기에, 예상치 못하게 만난 마사지샵에도 대범하게 들어갔다. 실패해도 약 8,000원 정도 지불한 것뿐인데 뭐, 하는 마음으로. 이름은 'Lin Massage House'
입구에는 각종 마사지 점들과 방법 등이 붙어있었다. 전신을 마사지 해주는 타이 마사지(Thai Massage)를 비롯한 다양한 마사지들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나는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간단히 발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250바트(약 8,300원)이었고, 타이 마사지도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들어가면 일단 발을 씻겨준다. 마사지를 받으려면 일단 청결해야 하니까 당연한 건데 누가 내 발을 씻겨준 적은 처음이라 참 기분이 묘했음(...) 발을 씻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다.
이곳이 마사지실. 사실 내가 갔을 때는 손님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어서 방에서 혼자 마사지를 받았고, 보다시피 그리 쾌적하거나 세련된 공간은 아니다. 그렇다고 마사지 자체나 서비스가 부실한 편이냐? 절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분위기를 크게 신경쓰는 편이 아니라 환경에 더 개의치 않기도 했다.
내 마사지를 담당해주신 분은 몸도 마르시고 여리여리해보이는 분이었는데, 겉보기와는 다르게 악력이나 팔힘 등이 상당히 세서 뚝 뚝 우두둑 소리가 나는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감히 마사지사의 힘을 걱정한 내가 잘못...
마사지 받는 동안에는 어디서 왔는지, 방콕엔 여행을 하러 온 건지 등등을 물어보시길래 나도 대답하고 서로 서툰 언어로 짤막하게나마 대화를 나눴다. 친근하게 대해주신 덕분에 더 편안하게 마사지를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마사지 받는 동안 심심해서 괜히 여기저기 둘러봄. 방에 걸려 있던 물고기 그림 세 점.
거의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마사지가 끝이 났다. 발마사지라고 해서 정말 발만 마사지 해주시는 게 아니라, 다리 전체를 마사지 해주셨다(그래서 마사지를 받기 전에 여기서 빌려주시는 통이 크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또한 누워서 마사지를 받다가 마지막에 잠시 일어나 앉아보라고 하더니 온몸에서 뚜두둑 소리가 나게 막간 전신 마사지(?) 기술을 보여주셨다. 발마사지 받으러 왔다가 이게 웬 호사람..! 발(다리) 마사지만 해도 굉장히 시원했는데, 마침내 온 몸이 다 시원해질 줄이야. (모든 마사지샵에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줄 알았는데, 치앙마이에서 간 마사지샵은 약 50바트 정도 더 저렴했던 대신 정말 오로지 딱 발만 마사지 해주시더라. 발목 위까지는 잘 올라오지 않음.)
마사지가 끝난 후에는 따뜻한 차도 한 잔 제공해주셨다. 결명자차 같은 맛이 났었던 것 같다.
차를 마시며, 옆에 거울이 있길래 괜히 투어리스트 모드 발동하여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내 담당 마사지사 분이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같이 찍자며 옆에 앉으셨다. 마지막까지 참 훈훈했던 모습. 하지만 찍는 것과 인터넷에 올리는 건 다르니까 마사지사 분의 사진은 이곳에 올리지 않겠음.
확실히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발과 몸이 훨씬 더 가벼워진 게 느껴졌다. 여행하다가 지치면, 혹은 방콕 한낮의 더위를 견디기 힘들면 가벼운 마음으로 마사지 받으러 들어가는 걸 추천한다. 이래봬도 나는 상당히 알뜰한 여행자인데, 태국에서만큼은 마사지에 돈을 쓰는 게 절대 사치스러운 지출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Lin Massage House'가 만족스러웠던 것도 있고.
이렇게 예정에 없던 곳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재미가 있어서 태국 여행이 더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보았던 또 다른 민주혁명의 흔적. 벽화에 쓰인 1992년 5월 17일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에 대해 시민들의 투쟁이 있었던 날이고, 동시에 군사정권의 무차별적인 진압과 발포로 인해 많은 민주화 투사들이 희생당한 날이라고 한다. 이 날로 태국에서는 입헌민주정 수립 이후 계속되었던 군의 내정간섭 고리를 끊고,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이 숭고하면서도 아픈 역사, 우리와 어딘가 많이 닮았는데? 그래서 왠지 더 속이 쓰리다.
여정을 마치고 해가 질 때까지 숙소(DDM 하우스)에서 잠시 쉬어야겠다 하고 돌아왔는데, 요 녀석도 더웠는지 내 방 앞에서 세상 편안한 자세로 잠을 자고 있더라. 3층까지는 또 어떻게 올라왔나 몰라? 이 녀석(들) 덕분에 숙소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흥겨워지곤 했다. 하루 일정 다 마치고 밤에 숙소 들어갔을 때 타닥타닥 발소리 내면서 맞이해주던 이 녀석(들) 또 보고싶네 벌써!
다음 여행기는 저스트녹 자전거 투어로 돌아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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