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첫 템플스테이 이후로 가끔 템플스테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가까운 절에 괜찮은 프로그램이 있나 찾아본다. 2022년이 되면서 새해맞이 특별 템플스테이를 진행 중이길래 신청하게 되었다. 작년에 썩 괜찮은 경험을 하고 왔으니, 2022년 첫 여행으로 템플스테이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이번엔 가까운 절을 다녀오고 싶었는데 서울에는 일정이 맞는 절이 없어서 고양시에 있는 절을 다녀오게 되었다. 절의 이름은 흥국사(興國寺). '자신에게 맞는 절'이 있다길래 지난번 봉선사와는 일부러 다른 조건의 절을 찾아봤고, 그런 점에서 일정뿐만 아니라 흥국사의 역사나 접근성, 규모 등 여러가지가 마음에 들어 결정했다.
내가 원한 곳은
- 대중교통으로 접근성이 좋을 것
- 규모가 작을 것 (내 성격상 크면 또 사진 찍는다고 돌아다니느라 못 쉼)
- 사람이 많이 찾지 않고 조용할 것
- 템플스테이 시설이 깔끔한 편일 것
정도이다. 어차피 휴식형을 신청할 것이니 템플스테이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난번 봉선사 갈 때 버스 배차간격이 어마무시해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으므로, 이번엔 무조건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을 다녀오고 싶었다. 흥국사는 도심에선 적당히 벗어나 있으면서도 지하철역에서 자주 오는 간선버스를 타고 갈 수 있어서 접근성이 괜찮은 절이었다. 버스는 5분 정도 기다리니 금방 왔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서 반겨주는 흥국사의 표지석. 화살표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다보면 흥국사에 도착할 수 있다.
구름도 별로 없고 먼지도 별로 없는 듯 매우 화창한 날씨였다. 걷는 것만으로도 참 기분 좋아지는 날씨.
흥국사 뒤편엔 노고산이 있고, 인근엔 북한산이 있어서 주변 경치가 좋은 편이다. 이파리 다 떨어진 겨울이 아니라 다른 계절에 왔으면 더 예뻤을 것 같기도 하고.
이날 밥을 한끼도 못 먹고 출발하기도 했고, 이른 저녁공양을 먹으면 늦은밤부터 새벽까지 얼마나 배가 고픈지 알기에 흥국사 아래에 있는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좀 사가려고 했는데, 믿었던 편의점이 문을 닫았다. 휴업인지 폐업인지, 템플스테이 끝나고 집에 갈 때도 여전히 닫혀있더라. 여기만 믿고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온 건데 망... 이번 템플스테이는 배고픔을 참는 수행이 될 것 같다.
'흥국사 둘레길'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안내가 잘 되어있네. 둘레길은 템플스테이 끝나고 걸어봐야지.
단청의 색감이 알록달록 화려하다. 거기에 금색으로 글자를 새긴 현판. 기둥을 한 줄로 세워 지어서 '일주문(一柱門)'이라고 부르고, 사찰의 첫 문인 만큼 속세와의 경계이면서 이 문을 지나면 '결국 만물은 하나'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부처님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지나가도 좋을 것 같다.
해탈문에 이르기까지 53개의 계단이 있다. 이는 선재동자가 큰스승들인 53선지식을 친견하여 깨달음을 얻고 해탈에 이른다는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비롯하여, 한 계단씩 오르며 그런 스승들을 만난다는 마음으로 진리의 세계에 오르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53계단을 오르고 나면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마침내 흥국사로 입장할 수 있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생긴 모든 번뇌와 해탈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불이문이라고 부른다고. (안쪽에서 보면 해탈문(解脫門)이라고 써있다) 계단과 문 하나도 그냥 만들어진 게 하나도 없구나.
흥국사는 무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약사여래 부처님을 만나 모시며, '상서로운 빛이 일어난 곳이라 앞으로 많은 성인들이 배출될 것이다'라며 절 이름을 흥성암(興聖庵)이라 하고 오늘날 흥국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 영조가 행차 중 비가 많이 내려 이곳에 하루 머물면서 왕실의 절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역사 속 인물들과 인연이 많은 매우 유서 깊은 절이었다.
작은 절이라 들어오자마자 경내가 한눈에 보인다. 그 중에서도 템플스테이 사무소를 먼저 찾았다. 나머지는 입소 후에 천천히 둘러보려고.
30분 정도 일찍 왔더니 아직 담당자가 안 계셔서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 앉아서 사무소를 두리번거리다보니 내 뒤를 이어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이 속속 도착한다. 절 자체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몇몇 보이는 분들이 다 템플스테이 참여자였나 보다.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이 머무는 방사는 최근에 새로 지어진 듯 매우 깨끗한 새건물이었다. 사실 방사가 새거라는 후기를 보고 이곳을 선택한 것도 있다. 템플스테이를 통해 불교 문화와 예절을 체험하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여자는 이곳에서 평생 수행할 사람이 아닌 손님으로 머물다 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시설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후 2시 30분이 되면 수련복을 받아서 배정된 방사로 들어간다. 방사 내부는 생각보다도 더 좋았다. 깔끔하고, 따뜻하고, 널찍하고, 창이 많아서 빛이 잘 들어오는데 유리와 창호지의 이중창이라 보온도 더 잘 되는 것 같고. 처음엔 이 방을 혼자 쓰는 줄 알고 내심 더 좋아했더랬지.
적당히 도톰하고 푹신하며 특히 잘 때 매우 따뜻해서 더울 지경이었던 침구. 베개에는 베갯잇을 직접 씌워서 사용하면 된다.
독서를 할 때든 타이핑을 할 때든 아주 유용한 간이 책상이 미리 구비되어 있다.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너무 잘 알아주신다는 느낌이 들었네. 거기에 불교 관련 서적들은 덤이다.
그 외에도 책상에 있는 소감문은 퇴소할 때 써서 종무소에 제출하면 되고, 비닐은 화장실 쓰레기통에 씌워서 사용하면 된다.
가장 놀랐던 건, 욕실에 무려 샤워부스가 있었다는 것. 아주 깨끗해서 더 좋아 보인다. 이거 뭐 거의 호캉스 뺨치는 시설인데요..? 세면도구는 비누와 치약이 전부이니 그 외 세면도구와 수건, 칫솔 등은 직접 가져와야 한다. 이건 어느 절에서나 같은 규칙.
문고리와 아래 잠금장치로 이중으로 문을 잠글 수 있다. 절에서 위험할 게 뭐가 있겠냐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게 또 사람 일이다보니. 사전에 준비가 된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주차장에서부터 해탈문까지 보이고, 중간에 컨테이너 하나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아주 멋진 뷰는 아니지만, 방사에 창이 있는 것 자체가 좋았기에 이 정도로도 만족스러웠다.
퇴소 전에 직접 이불을 널고 방사를 청소해야 하는 시스템. 시간표에는 휴식형 프로그램 중 가장 중요한 공양과 예불 시간이 적혀있다. 오른쪽의 프로그램 일정은 흥국사 템플스테이 신청하면서 홈페이지에서 직접 캡쳐한 이미지이다. 일정표에 나오진 않았는데 저녁 예불 후 7시부터는 스님과의 차담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물론 참여하고 싶은 사람만 참여하면 된다.
겨울 수련복은 처음 입어본다. 봉선사 템플스테이 때도 느꼈지만 세상에서 제일 편한 옷... 심지어 겨울용이라 방한도 잘 되고 좋다. 되게 도톰해서 바람 들어올 틈은 없는데 그렇다고 옷이 무겁진 않고 참 신기한 옷. 아주 말끔해서 새거 같은 느낌도 든다. 여러모로 손님맞이를 정말 잘 해주는 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방에 매트리스를 일찌감치 깔고 세팅을 하려는데 누가 문을 두드린다. 다른 참여자 두 분이 이 방에 배정되었다고 하여 합숙을 하게 되었다. 이건 예상을 못해서 살짝 당황했다. 일행 외 다른 사람과 합숙할 수도 있으니 양해를 부탁한다는 사전 안내문자를 받긴 했는데, 진짜 합숙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 다행히 친절한 분들이기도 했고 서로 일일 룸메이트로서 매너를 잘 지키려고 해서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이번 템플스테이는 저번 템플스테이와 정말 많은 것이 다르구나.
오후 3시가 되면 해탈문 옆 벤치에 모여서 스님의 안내를 따라 사찰과 사찰 기본 예절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진다. 모인 인원을 보니 얼추 열댓명은 돼 보인다. 생각보다 많은 참여자에 2차 당황. 절 방문객보다 템플스테이 참여자가 더 많아 보인다. 알고보니 모두 새해맞이 특별 템프스테이를 신청한 분들이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이 절을 찾은 거구나.
사람이 모이고 시간이 되면 밖에서 간단한 소개만 하고 대방(미타전)으로 이동해서 설명을 이어간다. 원래는 직접 절을 걸어다니며 소개를 해주시는데, 요즘은 너무 추워서 실내에서 소개를 해주신다고.
본격적인 흥국사 탐방과 더불어,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배운 불교 문화와 예절 이야기는 다음 게시물에 자세히 적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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