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예불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약사전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참여자들도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스님이 오시기까지 짧은 기다림의 시간 동안 연등 아래서 모두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둘둘 짝지어 온 사람들은 서로를 찍어주기 바쁘다. 역시 흥국사의 최고 볼거리 같다.
스님이 오셔서 약사전 문을 여시기 직전에 연등에 불이 들어왔다. 들어가야 하는데 사진도 찍고 싶고 해서 결국 다른 참여자들 다 들어가고 마지막에야 약사전에 입장했다.
오리엔테이션 때 약속했던 십여 명이 정말 다 온 듯했다. 그리 넓은 공간이 아니었는데, 스님 두 분과 보살님 한 분, 그리고 템플스테이 참여자 십여 명이 모이니 꽉 찼던 약사전.
사람마다 예불문을 나눠주시고, 스님은 타종하러 가셔야 한다며 템플스테이 참여자 중 예불 경험자에게 설명을 맡기고 나가신다. 봉선사에서는 스님들이 많으셔서 역할분담(?)이 확실한 느낌이었는데, 여기서는 템플스테이 담당 스님 혼자 안내하랴, 범종 울리랴, 예불 외랴, 꽤나 바빠 보이신다. 예불드리는 스님도 총 두 분 밖에 안 계시고. 나중에 차담 시간에 여쭤보니 그래도 스님이 한 열 분 정도는 있다고 하시는데 다른 스님들은 왜 안 보이시는 걸까?
예불 경험자(?)가 본인도 잘 모른다며 설명을 안 해주셔서 또 눈치코치로 따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렇게 예불문을 주시니 마음이 왠지 더 편하다. 반야심경까지 왼 후엔 법요집을 나눠주셔서 예불문을 함께 읽길 권장하시고 마저 이어가신다. 30분 가까이 예불문을 읽는 건 생각보다 목이 아픈 일이었다. 그리고 그게 끝날 때까지 절을 하는 건 더 힘든 일이었다... 108배까지는 아니지만 그 절반인 54배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리는 조금 후들거렸지만 이참에 제대로 배워갑니다. 불교문화와 예절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다면 오기 좋은 절.
차담하러 간 곳에서 메주 냄새 같은 게 난다 했는데, 바로 앞에서 스님께서 정말 메주를 쑤고 계셨다. 뭔가 토속적이고 정겨운 풍경이다.
예불을 마치고 약사전 앞에서 다 같이 만나 차담 장소로 이동했다. 꽤 아담한 공간이었고, 열댓 명이 다 앉기에는 약간 협소하기도 했다. 낮에 미리 신청자를 받으시더니 스님께서 미리 상과 찻잔을 다 세팅해두셔서 우리는 앉기만 하면 됐다.
열댓 명에 가까운 인원이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건 진작에 포기했고, 개인적으로 반은 차 맛이나 보려고 참여한 차담이었다. 뽕잎차는 처음 마셔보는데 맛이 괜찮다. 강정도 절에서 직접 만드신 거라고 했는데, 너무 딱딱하지 않아서 맛있었다. 버터와플은 무려 스님께서 개인적으로 준비해주신 거라고 한다.
스님이 차담에 왜 왔냐고 물으시길래, 차를 맛보고 싶어서 왔다는 아주 가벼운 대답을 했다. 반은 진심이었다. 나머지 반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질문이 무엇인지(이곳까지 무엇을 찾으러 온 건지) 궁금해서였지만, 시작한 지 5분 만에 15명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며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다들 자기 얘기는 안 하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스님이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노력을 참 많이 하셨다.
차담 시간은 조금은 예상한 대로 그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아니었다. 인원이 너무 많고 연령대가 너무 다양해서 그랬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보다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고, 속세에 유혹을 느낀 적은 없는지 같은 세속적인 궁금증만이 부유했던 시간이었다.
누군가 스님께 언제 출가하셨는지 물어본다. 아주 어릴 때 친척 어른을 따라 스님이 되었다는 스님. 결국 출가한 이유가 타의 때문인 게 큰데, 살면서 후회하거나 원망하신 적은 없는지 감히 궁금해지더라. 실례가 될까 봐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나저나 봉선사에서는 출가하신 지 얼마나 됐는지 물어보는 것만도 실례가 되는 질문이라고 하셨었는데. 이곳 스님은 그런 말씀도 없이, 그저 자주 묻는 질문이라며 스님이 되신 계기부터 상세하게 말씀해주신다. 이런 것도 절마다 다른 건가?
불교에 귀의한다면 왜 할까. 누군가는 "깨달음을 얻어서"라고 대답했지만, 반대로 "깨달음을 얻고 싶어서"는 아닐까. 나라면 그런 마음일 것 같아서.
뭔가 겉도는 얘기만 실컷 한 것 같은데 벌써 차담 시간을 마무리 할 때라고 한다. 이후로는 정말 자유시간! 역시 많은 사람들이 불 켜진 연등을 보러 다시 약사전 앞으로 모인다.
이날은 내게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 바로 이 연등이었나보다. 사진을 다 찍은 후에도 대방 마루에 걸터앉아 한참을 바라봤다. 또 혼자 보기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사진 찍어서 괜히 친구에게도 한 장 보내고. 이것도 참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보고 싶은 풍경이네.
연등이랑 같이 사진 찍고 싶어서 왼쪽처럼 나오는 듯 마는 듯하는 사진을 두어 장 찍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혼자 있는 나를 보곤 다가오셔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신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수련복 입고 약사전 앞에서 연등이 나오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흥국사를 대표하는 모든 것들과 템플스테이 상징이 다 들어있는 사진. 감사합니다.
요즘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취미가 있는 나로서는 반가웠던 별 많은 밤하늘. 서울 우리 동네에서 본 하늘에 비하면 분명 별이 많았지만, 사실 시골집에서 쏟아질 듯한 별을 한 번 본 뒤로 웬만한 밤하늘에는 큰 감흥이 안 생기는 게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다. '음, 많이 떠있구나', 정도의 느낌. 배가 너무 불러버렸다.
별자리는 뭐가 있나 살펴보려다가 흥국사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이 완벽한 북극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긴 했다. 앱이 제대로 보여주는 게 맞다면, 여기서 별 궤적 사진 찍으면 궤적이 동그랗게 나와서 진짜 예쁘겠다. 삼각대가 있었으면 조금 찍어봤을지도...
늦게까지 밖을 소란스럽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9시 전에 방으로 돌아왔다. 일일 룸메이트들은 이미 잘 준비를 마쳐서, 나까지 준비를 마친 후 금방 불을 껐다. 사실 가져온 책이 있었는데 룸메이트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핸드폰으로 이북 읽어도 되니까. 그렇게 누워있다가 9시 반쯤 일찍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얕은 잠에 들었다가 깼다. 한 3-4시쯤은 되었을까 싶었는데 겨우 12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분명 꽤 피곤한 기분으로 잠들었는데, 오늘도 습관이 참 무섭네. 평소에 생활습관을 잘 들이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싶다.
다시 자려고 시도도 했다가, 안 되겠어서 핸드폰도 봤다가, 누워서 멍도 때렸다가, 배고픈데 저녁 공양 때 남겨온 바나나나 먹을까 생각도 하다가, 지금 먹는 건 민폐인 것 같아서 또 말았다가 하여튼 별의별 생각과 행동을 하며 체감상 억겁 같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 템플스테이 때는 이러다가 혼자 생각의 늪에 빠져서 참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낯선 이일지라도 옆에 누가 있어서인지 그렇게 깊은 생각으로까지는 빠지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혼자 놔뒀으면 또 아마 감당 못 할 생각들이 휘몰아쳤겠지.
이 새벽 시간에 답도 없는 생각의 심연으로 가라앉지 않은 건 다행인데, 다르게 말하면 템플스테이 하는 동안 사색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볼 수 있기도 하다. 얕은 생각과 겉도는 대화. 하루 정도 생각 없이 쉬어가고 싶을 때 뭐 이런 것도 나쁘진 않네. 이제 겨우 질문을 질문하는 것에서 빠져나온 나로서는 더더욱.
결국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데, 4시쯤 아침 예불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들린다. 안 자고 있었어도 아침 예불은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잠을 청했다. 지난번 템플스테이 때에 비하면 이번에는 정말 여유가 있었네.
4시에 잠들어놓고 6시 공양은 또 먹으러 나온다. 새벽 내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었기에 눈뜨자마자 먹는 첫 식사에도 먹을 것들을 양껏 담아온다. 비몽사몽 해서 젓가락은 짝짝이로 들고 와 놓고 이 많은 음식을 한 톨도 안 남기고 싹싹 긁어 다 먹는다.
이후엔 방으로 돌아가서 대충 양치만 하고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간다. 밤에 못 잔 잠을 지금 보충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과 함께. 10시즈음 눈을 뜬 후엔 안내된 대로 수련복을 내놓고, 이불을 널고, 방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린 후, 소감문을 써서 종무소로 향한다.
종무소 직원분께서 선물이라며 뭔가를 나눠주신다. 절에서 직접 만든 소금이라며, 양치할 때 사용하면 좋을 거라고 하신다. 선물까지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감사합니다.
지나가는 스님께 합장하여 인사하니 의례적으로 인사만 받아주시는 게 아니라 다들 말도 한두마디 걸어주셔서 뭔가 마음이 따스해진다. 한 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조금 기억에 남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시더니 "사람들에게 밥을 많이 사라"는 말씀을 해주신다. 그게 나중에 다 나에게 복으로 돌아올 거라며. 베풀고 살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꼭 그렇게 할게요, 스님.
1박2일의 일정을 뒤로하고 이제 흥국사를 떠날 때. 마지막 한 장을 찍는다면 역시 연등 사진이지. 해가 반만 들어서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긴 했지만 말이야. 잘 쉬다 갑니다.
전날 미뤄뒀던 둘레길을 걸으러 가본다. 짐을 종무소에 맡겨두고 다녀올까 했지만 민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전부 다 이고 지고 가본다. 어려운 코스도 아니라고 하니 뭐.
흥국사 둘레길 2코스는 3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코스로, 등산이라기엔 민망한 수준의 가벼운 산책길이었다. 절 이름을 따서 만든 둘레길인 만큼 길마다의 이름이 '비움의 길'처럼 불교와 관련된 듯한 것이 조금은 인상적이었다. 흥국사 둘레길 후기는 따로 올렸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원래는 둘레길 코스가 일주문을 벗어나 주차장에서 끝나게 되어있다. 그러나 흥국사에 들어갈 땐 일주문을 통해 들어가고 나올 땐 일주문을 안 통하면, 뭔가 부처님의 세계를 벗어나 속세로 돌아오는 느낌이 안 드는 것 같아 굳이 돌아가서 일주문을 통과해본다. 내게 속세로 돌아온다는 건 다시 일상을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거든. 비록 사색의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 2022년을 맞이하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잡고자 이곳을 찾은 것이기도 했기에.
흥국사를 완전히 벗어나서 집에 가는데 북한산이 한눈에 보여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주변 경치가 정말 아름다운 곳이구나. 작은 사찰이었지만 눈이 즐거웠던 곳.
휴식형으로 와서도 불교 예절을 제대로 배우고 체험할 수 있어 배움과 휴식의 균형이 있었던 점이 좋았고, 스스럼없이 말 걸어주신 스님들에게도 감사했던 절. 목적한 바대로 이번만큼은 잘 쉬었다 가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미처 못 걸어본 둘레길 1코스를 걸어보거나, 그와 이어진 노고산 등산, 그리고 북극성을 중심으로 별 궤적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에 다음에 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음엔 봄이나 가을쯤 다시 와볼게요-
고양시 흥국사 잘 쉬다 갑니다!
- 에필로그 -
사실 템플스테이 오기 전부터 근처 맛집부터 알아봐 뒀다가 퇴소 후 점심 먹으러 달려갔는데, 어쩜 이렇게 가는 곳마다 휴무인지... 심지어 둘 다 원래 예정에도 없던 휴무일이었다. 임시휴무도 슬픈데 정기휴무일이 아예 바뀐 건 정말 놀랍네.. 저도 메밀 좋아하는데 잔치집에 껴줘요...ㅠ
결국 조금은 아쉬운 대로 라멘을 먹었다. 꽤 맛있어서 나름대로 해피엔딩. 템플스테이 후기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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