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특정 음악은 나를 특정 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예를 들면 크러쉬의 'In the Air'는 암스테르담 본델파크에서 둠칫둠칫 내적 춤을 추던 그때로, 팔로오빠의 'Joy'는 로테르담 집에서 혼자 끙끙 앓고 서러울 때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조금 기분이 나아지던 그때로, 또 [YEAREND: 송구영신] 앨범의 '2018'을 들으며 팔로오빠랑 함께 2018년을 잘 마무리 짓는 기분이 들었던 것만 같던 연말 그때로 데려다 놓는다.
2.
2025년은 내게 무슨 음악으로 기억될까. 아마 GD, 제니, 로제? 아, 여기에 슈퍼볼 때문에 켄드릭 라마도 추가.
3.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옥상 헬스장에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싸이클을 탈 때 유튜브를 보기보다 노래를 들으면서 타면 나도 모르게 RPM이 올라간다. 요즘은 새로 업데이트 한 노래가 없어서 약 20여 년 동안 다운받아 모은 3천여 곡을 랜덤으로 플레이해서 듣는다. 근데 하필 내 취향이었던 노래들은 가사를 곱씹으며 들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운동하면서 오히려 잡념이 많아지는 사람이 나다.
4.
운동 중에 나온 노래는 더 콰이엇(The Quiett)의 '뛰어가'. 무려 18년 전에 나온 노래다.
"산다는 게 결코 쉽지않아도 끝까지 품은 용기는 잃지마. 아무리 세상이 항상 이런식이라도 반드시 진실한 사람은 이긴다. 내 전부를 걸어도 모자란 삶이니까 에너지는 아껴도 노력은 아끼지 마. 이대로 살다 가는건 쪽 팔리니까 내일 죽어도 오늘은 끝임없이 달리리라"
뭐 이런 가사다. 중학생 때 처음 듣고 한 20대 초반까지도 벅찬 마음으로 들었던 노래인데, 왜 그때랑 지금이랑 내 처지는 크게 변한 게 없는 거 같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뛰었으면 지금은 숨 좀 고를 때도 되지 않았나? 왜 아직도 나는 뛰어야만 하는 거 같지?
5.
이어진 노래는 슈프림팀의 '부적응 (3MC Part 4)', 2009년 노래. 이 노래는 특정 가사를 적을 필요 없이 도시에서의 치열하고도 외로운 삶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다 울림이 있을 만한 노래일 거다. 지금은 서울은 아니지만 잠들지 않는 방콕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서울에서의 치열함이 문득 다시 떠올랐네. 그래도 나는 방콕보다는 서울이 좋고 서울에 가고 싶다는 게 참 아이러니이다.
요즘 드는 생각인데 나는 의외로 그 치열함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한없이 외로워질 거라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그 치열함 속에서 전보다는 지금이, 어제보다는 오늘이 나아진다는 것이 좋다. 그러다 지치면 또 어딘가로 훌쩍 떠날지는 모르겠지만.
6.
코드쿤스트×타블로×Joey Bada$$ 조합의 'Hood'도 말하고 싶다. 이 노래는 10년 전, 2015년에 나왔다. 고향, 삶의 터전, 그곳을 대표하는 한(恨). 그 고통과 투쟁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삶, 강인함. 그런 것을 노래하는 곡.
이 노래 처음 들었을 때 거의 울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그때 나는 겨우 20대 초반이었다. 그 나이에 도대체 무슨 고통과 투쟁을 그렇게 겪고 있었을까. 10년 후에야 다시 들으면서 10년 전의 내가 안쓰러워졌달까.
이제 타지에서 한국이 그리워질 때면 나는 꼭 'Hood'를 듣는다. 이것만큼 내 나라를, 내 나라에서 산다는 것을 잘 표현하는 곡이 또 없는 것 같아서.
7.
결국 인생이고 삶에 대한 생각들. 문득, '언제 "안정감"이라는 걸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바다 건너까지 가져온 'Love, Money & Dreams' 플래카드를 쳐다보는 게 좀 민망하다. 이전까지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문구였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여전히 셋 다 없다는 생각에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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