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태국인으로부터 이런 발화 실수를 들었다.
"안 알아요."
'모르다'라는 단어가 있는 한국어로는 매우 어색한 표현. 태국어로는 '모르다'를 รู้("루", 알다)라는 단어에 부정표현 ไม่- ("마이", 아니다)가 붙어서 ไม่รู้("마이루", 모르다), 즉 '알지 못하다'와 같이 표현하기 때문에 생긴 오류이려나.
그러고보니 영어로도 '모르다'를 표현할 때는 'don't know', 'no idea'와 같이 '아니다(not, no)'라는 부정어를 써서 표현한다. 완벽히 아는 건 아니지만, 네덜란드어도 'niet kennen'과 같이 '알다(kennen)'라는 단어에 부정어(niet)를 사용한다. 이쯤되니 문득 '알지 못하다'가 아니라 '모르다'라는 단어가 따로 있는 언어는 없는지 궁금해졌다.
아는 외국어가 많이 없어서 네이버 사전의 힘을 좀 빌려보니, 중국어는 '不知道'와 같이 표현한다. 딱 봐도 부정어(不)가 있다. 일본어는 전혀 문외한인데, 'しらない [知らない]'라고 쓰고, ‘知る(알다)’의 부정형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나름 듀오링고로 수년 째 플레이 중인 프랑스어는, 내 얕은 지식으로 떠오르는 표현은 'ne pas connaître'로 역시나 부정어(ne pas)가 있는데, 사전에는 'ignorer'라는 단어가 또 나온다. 어떤 맥락에서 'ne pas connaître'를 쓰는지, 또 'ignorer'를 쓰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르다'를 부정어를 쓰지 않고 표현하긴 하네? 스페인어도 찾아보니 'desconocer'라는 단어가 나온다. 스페인어도 아예 문외한이라 잘은 모르지만 'des-'가 부정어인 거 같기도 하다.
베트남어는 'không biết'과 같이 쓰는데 'không'이 부정어인 듯하다. 러시아어는 'не знать'와 같이 쓰고 'не'가 부정어인 듯하다.
지구상에 훨씬 더 많은 언어가 있겠지만 일단 대표적인 언어로 이 정도만 조사했다. 참고로 모든 단어는 사전에서 '모르다'를 검색했을 때 첫 번째로 나오는 단어를 그대로 가져왔고, 이 중 내가 아는 언어는 한자 조금과 프랑스어 조금밖에 없다. 그래서 '모르다'라는 단어가 부정어 없이 온전한 단어로 어떻게든 쓰이는데도 내가 모르는 경우도 물론 있을 수 있다.
로마자를 쓰는 유럽 언어들끼리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른 유럽어에서는 찾기 힘든데 프랑스어만 'ignorer'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좀 신기하다. 그리고 '모르다'라는 단어를 부정어를 쓰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물론 제일 신기하다. 왜지? 다른 언어에는 '모르다'가 왜 거의 없지? 반대로 한국어에는 '모르다'가 왜 따로 있지? 의문에 대한 답은 없고 머릿속에서 의문이 사라지기 전에 일단 들고와 본 화두. 제대로 된 답 찾으려면.. 대학원 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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