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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색하는 연습장

꼰대 혹은 장인

by Heigraphy 2023.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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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회사에서 실제로 ChatGPT를 업무에 활용한다는 친구를 만났다. 업무 감각을 유지하고 싶어서 최신 트렌드를 기민하게 팔로우업하는 또 다른 친구는 ChatGPT 스터디 단톡방에 참여하고 있었다. 워낙 뜨거운 이슈라 나 또한 그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주변에서 실제로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ChatGPT는 아직 불완전하다. 오류도 많고 한국어 서비스는 더더욱 부족하다. 다만 AI의 수준이 어느새 이만큼이나 훌쩍 높아졌고, 앞으로의 발전 속도는 인간의 학습 속도보다 훨씬 빠를 것이니 점점 더 빠르게 구색을 갖춰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ChatGPT의 결과보다 과정이 유의미하다. 이게 내가 ChatGPT를 대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과정이 유의미하다'는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걸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이미 매우 많다. 자료 조사, 보고서 작성은 물론이거니와 그 집약체라고 볼 수 있는 출판까지 그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게 지난 주말 동안 내가 가장 놀랐던 점. 인간이 기획한 것을 ChatGPT에 제시하면 초안을 작성해 주고, 그걸 다시 인간이 첨삭하거나 변형하여 출간하는 방식. 수개월이 걸릴 책 집필이 단 며칠로 줄거나 극단적으로는 단 몇 시간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ChatGPT를 활용한 집필이 극한의 효율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전체 인류에게 얼마나 유의미한 활동일지 잘 모르겠다. 그 책에서 얼마나 깊이 있는 통찰을 나눌 수 있을까. 과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본'을 갖춘 채 ChatGPT를 사용하게 될까. 개인적으로 5자리만 넘어가도 암산이 귀찮아져서 계산기를 이용하고, 그러다 보니 암산 능력이 더 떨어지고, 다시 계산기를 찾기를 반복하게 되는데, 앞으로 사람들의 ChatGPT 의존도는 과연 얼마나 올라갈 것이냐 하는 거다. 어휘력, 문해력에 이어 논리력, 사고력 논란이 발생하진 않을까.

 

  또, 온라인상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제시한 ChatGPT 답안을 활용한 글의 저작권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지금까지 쓴 글, 지금 쓰는 글도 어디선가 수집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미치면 두통이 밀려온다.

 

  ChatGPT가 새로운 기술이라 흥미로운 것과는 별개로, 일상생활 속에 제대로 스며든다고 생각하면, 보다시피 썩 반갑지는 않다. 늘 인식이나 제도보다는 기술의 상용화가 앞서갔기 때문에 그 간극에서 생기는 부작용이 미리 걱정된다. 신기술과 함께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게 될지. 물론 언제나 그렇듯 인류는 답을 찾을 수도 있고, 그러길 바라지만.

 

  이런 식으론 나는 아무래도 한 10년 뒤에 꼰대 혹은 장인이 되어있을 것 같다. 최신 디지털 기술에 적응 못한 주제에 개인 역량이 뛰어나지도 않은 도태된 꼰대이거나, 혹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아도 어떤 경지에 올라 감히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길을 판 장인이거나. 어느 쪽이든 기술을 100% 활용하고 있지는 못할 것 같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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