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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y Heigraphy
시각적 기록/사색하는 연습장

새해 첫날에 쓰는 글

by Heigraphy 202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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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새해 첫날에 쓰기 시작하여, 언제 마무리가 될지, 블로그에 올라가게 되긴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글이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올라간다 해도 글을 쓰는 1월 1일에 딱 올라가지는 않을 거라는 것. 왜냐하면 겉으로는 꽤 평온한 듯하면서도, 사실 깊이 생각하기엔 피곤해서 굳이 수면 위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무언가 들로 인해 머릿속이 꽤 복잡한 것 같기 때문이다. '-것 같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감정을 쓰는 건데도 이렇게 두루뭉술한 표현이란.

 

  2022년에는 인스타그램을 다시 조금씩 시작했다. 여전히 업데이트는 별로 안 하지만 남들 사는 소식을 조금 더 보게 된 것 같다. 2023년이 가까워지면서 다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보냈나 돌아보는 게시물, 혹은 한 해 동안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게시물, 다가오는 새해는 어떻게 지내겠다는 다짐 어린 게시물을 올리더라. 누군가는 뿌듯해했고, 누군가는 아쉬워했고, 누군가는 희망찼다.

  나도 지난 한 해 동안 분명 느낀 것이 있고 그로 인해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지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한 것이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고 싶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굳이 공개적으로 뭔가를 올려서 매듭을 짓고 싶지 않았다. 해가 바뀌는 것을 마무리와 시작으로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연속된 날들 중 하루, 어느 때보다도 그렇게 느꼈고, 그렇게 느끼고 싶은 것 같다. 진심으로 고마운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인 메시지를 보내 인사를 했다.

 

  매년 한 해를 돌아보면 참 길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올해는 좀 쏜살같았다는 느낌이 든다. 여느 때랑 비슷하게 열심히 재미있는 거 찾아다니고 기록하면서 살았던 거 같은데, 내면적으로 아주 기억에 남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말하면 적당히 잔잔하게 살아서 위로도 아래로도 큰 충격이 없었다는 뜻인 것 같기도 하다. 행복했던 적이 몇 번 있고, 속상했던 적이 몇 번 있었을 뿐. 그것이 내 인생이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거 다 그렇듯 비슷한 정도의 사건들을 겪었을 텐데, 느끼는 감정의 폭이, 생각의 범위가 이렇게나 줄어들 수가 있나. 혹은 빠르게 다 잊은 건가. 좋게 말하면 더 의연해졌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둔감해진 건 아닌가 싶다. 때로는 위아래로 골이 너무 깊어 힘들어져도 그냥 온전히 혹은 그 이상을 느끼고 남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조금은 위험한 생각을 해본다. 이러다가도, 근 몇 년 간 가장 소소한 나날을 보낸(냈다고 느낀) 축에 속하는 2022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때도 오겠지?

 

 

 

  케케묵은 냄새가 나서 낯설었던 물건들은 어느새 내 삶에 다시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쓰면서도 뭔가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때가 되면 당연히 사용하는 것들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물건의 출처가 생각나면 다시 깜짝 놀란다. 참 속도 좋지.

 

  외국에 다녀온 이후부터 늘 방에 물건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해왔다. 뭔가를 사기 전엔 먼저 뭔가를 버렸고, 그것의 공간이 확보된 후에야 비로소 채웠다. 비우는 게 귀찮아서 채우기를 미룬 적도 많고, 비우기만 하고 채우지 않은 적도 많다.

  어느 날은 문득 방 안을 보다가, 물건이 너무 많다는 생각보다 공간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이 정도를 많다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물욕이 꽤나 없는 사람인데도 방에 물건이 너무 많아서 답답하다고 느낄 지경이면, 그건 공간이 문제인 거 같다고. 나로서는 너무나 흔치 않게 환경에 대한 아쉬움이 생겨버렸다.

 

  2023년 플래너를 아직 안 사서, 2022년 플래너를 다시 들춰봤는데 1월의 계획(다짐)이 이렇다.

  "몸과 마음과 물건은 많이 비우고 표현과 문장은 채우기."

  이 물건은 많은 것도 아닌데 공간이 좁은 거라고 바로 위에 써놓고, 올 초의 계획을 다시 보니 웃기다. 12개월 만에 생각이 이렇게 바뀐 거면, 생각보다 거의 비우지 못하고 제대로 채우지 못한 2022년이 아니었나.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아쉬운 해인가. 비울 것을 다 비우지 못하고 채워야 할 것을 미처 채우지 못해서 정리가 안 된 탓에 글도 이렇게 의식의 흐름으로 중구난방 쓰고 있다.

 

  아무래도 매듭짓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매듭지어야 할 것들의 정리를 미루고 싶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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