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에 본점이 있다는 삼진어묵 가는 길. 절영해안산책로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이길래 주변이나 좀 더 둘러볼 겸 걷기 시작했다. 그 길목에 있던 남항시장. 6.25 전쟁 이후 각지에서 온 피난민이 모여 자연스럽게 생긴 시장이라고 한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시장은 생각보다 활기찼다.
20분 정도를 걸어 도착했다. 삼진어묵이 그렇게 맛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디 어묵이 다르면 얼마나 다른가 한 번 볼까.
들어오자마자 규모에 놀랐고, 인파에 놀랐고, 다양한 어묵 종류에 놀랐다. 다 맛있어 보였지만 그중에 제일 먹음직스러워 보였던 건 바로 이 어묵고로케. 인기 있는 맛은 이미 다 팔려서 따끈따끈한 새 판이 막 나오고 있는 참이었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꼬치어묵이나 떡볶이에 넣어 먹는 어묵이랑 많이 다르긴 하네!
다음날 조식으로 먹을 것과 친구 줄 것을 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삼진어묵이 전국에 딱 영도에만 있는 줄 알았기에.. 예를 들어서 지도에 '서울 스타벅스'라고 검색하면 보통 서울에 있는 스타벅스가 다 나오는데, '부산 삼진어묵'은 검색했더니 영도점이 콕 집혀 나오길래 영도에만 있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친구는 집 옆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거였는데도 이날 하루 종일 어묵 상자를 들고 다녀야 했단 이야기...^.ㅜ (심지어 서울 우리 집 옆에서도 사 먹을 수 있다. 허허)
여기까지 걸어온 만큼만 더 걸어가면 남포동에 있는 숙소에 갈 수 있길래 또 걸어가기로 했다. 날씨만 좋다면야 걷는 거 너무 좋지.
배가 많이 정박되어 있던 부산항. 새삼스럽게 여기가 항구도시임을 실감하는 중. 이곳에서 제주도행 배도 탈 수 있다고 한다.
반대편에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영도에 온 김에 영도대교를 건너볼 걸 그랬나?
다리 아래에서 낚시 중이시던 아저씨. 여행 다니면서 이런 사람 사는 모습 볼 때가 제일 좋아.
부산대교를 건너 남포동으로 돌아왔다. 영도에서 걸어서 돌아올 수도 있고, 숙소 위치 하나는 정말 잘 잡은 것 같네.
조금씩 좋아지는 날씨에 영감을 받아서 오후 일정이 좀 바뀌었다. 아니, 애초에 정해진 게 없었기에 바뀌었다고 하기도 뭐하지만... 숙소에서 삼각대를 챙겨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야경사진이 찍고 싶어서 봐두었던 곳, 옥련선원으로 향했다. 어차피 봐 둔 야경스팟은 두 곳이고, 여기가 약속 장소 가는 동선에 있었고, 친구를 만나서 저녁에 여기를 같이 오면 친구가 할 게 없기 때문에 혼자 후딱 볼 생각으로 낮에 찾았다. 낮에 찍어도 멋진 사진이 나오기를 바라며.
그치, 사진 찍으러 간다는데 오르막이 빠지면 섭하지. 그래도 완전 산 중턱에 있는 절이 아닌 게 어디야. 여기서 오른편으로 빠지면 옥련유치원도 있다. 유치원생들도 오르내리는 곳인데 나도 힘차게 가봐야지.
드디어 다 올라왔다..고 생각했다. 일주문을 지나 들어오면 사자상들이 반겨준다.
절의 규모가 크지 않아 압도되는 느낌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뭔가 힘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옥련선원의 창건 시기와 창건자는 알 수 없지만 무려 670년(문무왕 10년)에 원효가 백산사라 이름 짓고, 910년(성덕왕 9년)에 최치원이 은둔하며 참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이라고 한다.
안에서 재(齋)를 드리는 중인 것 같아서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불교의 예법(禮法)을 알았다면 여기까지 와서 절도 한 번 올리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불교 명상 배울 때 제대로 안 배우고 기둥 앞자리에 편히 앉아 꿀만 빨았던 지난날이여...🤦♀️
잘 가꾸어진 경내에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은 동자승과 부처님. 근데 내가 찾는 부처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이쯤 돌아보다가 혼자서는 도저히 못 찾겠어서 주변에 있는 다른 방문객에게 이렇게 생긴 불상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어봤다. 이분들도 잘 모르시는 듯해서 절에서 일하시는 분께 물어봤는데 한 번에 알아보시고는 좀 더 올라가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드디어! 부처님 찾아 서울에서부터 왔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높이가 약 15m나 되는 국내 최대의 석조좌불상이라고 한다. 딱 원하는 뷰가 정해져 있어서 거기서 사진 찍을 생각만 했는데, 귀한 유물들도 생각지 못하게 많이 알아가고 담아가는 것 같다.
옷 매무새 정리도 못하고 찍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처음 물어봤던 방문객들도 이 불상은 못 봤는데 보고 싶다며 같이 올라가서 찍어주셨다. 불상 위치 물어봤는데 같이 올라가주시고, 말 걸어주시고, 사진도 먼저 찍어주겠다고 해주신 부산 시민분들 감사드립니다.. 첫날 괜히 혼자 위축되었던 제가 바보 같아지는 기분이었어요.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부산분들은 더 따뜻하네요.
부처님을 찾았다고 끝이 아니지, 원래 목표한 바대로 부처님을 사진에 잘 담기 위해 진짜 여정 시작.. 부산에서의 두 번째 공식(?) 등산.
굳이 비교하자면 암남공원 후문 오를 때보단 훨씬 수월했다. 오늘은 비도 안 오고 나 바지도 입었다구.
하지만 문제는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가 없다는 것... 오르락내리락하며 왔던 길을 다시 그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 사진 스팟이 나오겠거니 싶은 곳이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계신 어르신께 여쭤봤는데 원래는 문을 열어놓는데 코로나 때문에 최근에 닫았다고 한다. 또르르... 안쪽에 아주머니 두 분이 걸어가시긴 했는데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어서, 소리를 높여서라도 아주머니들께 그 안으로 어떻게 가는지 여쭤볼 걸 그랬나 싶다ㅠㅠ
가보지를 못했으니 지금도 정확한 스팟이 어디였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사실 모르겠다. 다음에 부산 가면 꼭 다시 찾아가서 부처님께 인사도 드리고 목표한 사진도 찍어야지. (레퍼런스 사진이 진짜 멋있는데 내 사진이 아니라 함부로 올릴 수 없는 게 아쉽다)
사실 천천히 오르내리면 그렇게 힘든 길도 아니었는데, 시간이 좀 촉박해서 이곳을 거의 뛰다시피 왕복을 한 나는 반 기진맥진.. 뛰어다니며 내내 이 굳건한 울타리만 본 것이 조금은 속상하네.
그래도 이곳을 낮에 혼자 미리 와봐서 다행이었다. 진짜 저녁에 야경 찍겠다고 왔다간 어둡고 길도 모르는 산 혼자 오르기도 무섭고, 그렇다고 누구랑 같이 왔다간 상대방에게 더 민폐... 이번엔 답사했다고 생각하고 다음에 더 준비해서 와야겠다. 유서 깊은 절 하나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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