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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진일기

리틀 포레스트는 아닌 그냥 시골 생활기 - 프롤로그

by Heigraphy 202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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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캐리어를 채웠다. 그동안 국내여행 가도 일주일이 넘는 일정이 없었고, 그래서 다 백팩으로 커버했는데, 이번엔 좀 긴 여행을 결정했다. 아니, 여행이라기보다 생활을 결정했다. 시골에 계시는 삼촌이 당분간 서울에 와서 지낸다고 하셨고, 그래서 시골집이 빈다고 했다. 시골이래도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우리 할머니는 서울에 쭉 계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 와본 적은 한 번도 없으며, 내게는 그냥 엄마의 고향쯤 된다. 때문에, 그곳에 그리운 게 있어서 간다기보다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생각해보니 기차에 캐리어를 어떻게 싣나 했는데 발 아래 공간이 생각보다 넉넉했다
기차에서 본 노을

  작년부터 꿈꾸던 일이었다. 언제나 애증인 서울에서의 삶에 지치기도 했고, 그때도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심신의 안정을 너무도 찾고 싶었다. 막연히, 그곳이 평화로울 거라 생각하며, 나도 그 평화에 동화될 수 있을 줄 알았지.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자연과 요리를 벗삼아 지내는 생활을 로망처럼 꿈꾸기도 했다. 그렇게 기어이 1년이 지나서야 기차에 몸을 실었다.

 

 

장작용 나무와 커팅기. 근데 공업용 같다?
삼촌께서는 나를 위해 나무를 더 해놓아 주셨다

잔가지-굵은 가지 순으로 넣고, 마른 가지 넣기
토치로 불 붙이면 된다. 보는 건 참 쉬워!

  시골은 생각보다 더 시골이었다. 대중교통이 잘 안 다니고, 차 없이는 슈퍼마켓도 가기 힘들다는 것 정도는 미리 알고 각오를 했지만, 난방도 나무를 때서 돌리는 줄은 몰랐다. 혼자 시골집에 있으려면 서울에선 생전 안 해본 일들을 이것저것 해야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배우려고 삼촌 계실 때 하루 먼저 왔다. 서울에서 안 해본 것뿐만 아니라, 사실 이 집의 규칙들을 모두 새로 배워야 했다. 잠시 빌려 쓰다 가는 거니까.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정말 조심히 머물다 가야지.

 

 

저녁식사 건강하게 하고 출출함을 못 참은 나는 결국 과자를 꺼냈지
모두가 잠든 시각 혼자 조용히 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이곳은 나의 작은 숲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리틀 포레스트>처럼 살 수 없다.'

  영화를 보자마자 든 생각. 영화 속 혜원이와 나는 아주 큰 다른 점이 있다. 혜원이는 '돌아왔다'는 것이고, 나는 '떠나왔다'는 것. 이곳은 엄마의 연고가 있는 곳이지 나의 연고가 있는 곳은 아닌데, 그곳에 가면 마치 바로 마음의 평화를 찾고 몸과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양 그런 기대를 했나 보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 그곳에 심어진 듯, 나는 어디에 심어진 사람일까? 결국 애증의 도시라며 떠날 듯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나는 서울에 심어져 나고 자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있는 동안에는 서울에서와는 또 다른 생활에 충실해보려고.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는 아니고, 그냥 시골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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