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캐리어를 채웠다. 그동안 국내여행 가도 일주일이 넘는 일정이 없었고, 그래서 다 백팩으로 커버했는데, 이번엔 좀 긴 여행을 결정했다. 아니, 여행이라기보다 생활을 결정했다. 시골에 계시는 삼촌이 당분간 서울에 와서 지낸다고 하셨고, 그래서 시골집이 빈다고 했다. 시골이래도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우리 할머니는 서울에 쭉 계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 와본 적은 한 번도 없으며, 내게는 그냥 엄마의 고향쯤 된다. 때문에, 그곳에 그리운 게 있어서 간다기보다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작년부터 꿈꾸던 일이었다. 언제나 애증인 서울에서의 삶에 지치기도 했고, 그때도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심신의 안정을 너무도 찾고 싶었다. 막연히, 그곳이 평화로울 거라 생각하며, 나도 그 평화에 동화될 수 있을 줄 알았지.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자연과 요리를 벗삼아 지내는 생활을 로망처럼 꿈꾸기도 했다. 그렇게 기어이 1년이 지나서야 기차에 몸을 실었다.
시골은 생각보다 더 시골이었다. 대중교통이 잘 안 다니고, 차 없이는 슈퍼마켓도 가기 힘들다는 것 정도는 미리 알고 각오를 했지만, 난방도 나무를 때서 돌리는 줄은 몰랐다. 혼자 시골집에 있으려면 서울에선 생전 안 해본 일들을 이것저것 해야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배우려고 삼촌 계실 때 하루 먼저 왔다. 서울에서 안 해본 것뿐만 아니라, 사실 이 집의 규칙들을 모두 새로 배워야 했다. 잠시 빌려 쓰다 가는 거니까.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정말 조심히 머물다 가야지.
'이곳은 나의 작은 숲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리틀 포레스트>처럼 살 수 없다.'
영화를 보자마자 든 생각. 영화 속 혜원이와 나는 아주 큰 다른 점이 있다. 혜원이는 '돌아왔다'는 것이고, 나는 '떠나왔다'는 것. 이곳은 엄마의 연고가 있는 곳이지 나의 연고가 있는 곳은 아닌데, 그곳에 가면 마치 바로 마음의 평화를 찾고 몸과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양 그런 기대를 했나 보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 그곳에 심어진 듯, 나는 어디에 심어진 사람일까? 결국 애증의 도시라며 떠날 듯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나는 서울에 심어져 나고 자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있는 동안에는 서울에서와는 또 다른 생활에 충실해보려고.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는 아니고, 그냥 시골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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