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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진일기

리틀 포레스트는 아닌 그냥 시골 생활기 02

by Heigraphy 2021.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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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시골에 있기 이틀 차. 오늘은 드디어 직접 나무를 때서 난방을 켜봤다. 혼자 시골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냐는 질문 종종 받는데, 너무 바빠서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다. 먹고, 먹이고, 집 데우는 것만 해도 하루가 훌쩍 가는 데다가 나름대로 저녁에 하는 일도 있고, 사진도 찍고, 블로그도 쓰자면 하루가 정말 너무 짧다. 도시에서보다 훨씬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근데 몸이 가뿐하고 기분은 훨씬 좋은 그런 삶.

 

쌀은 불리고 쌀뜨물은 보관해두기
요거트에 콘푸라이크바 뿌셔뿌셔 섞기

  쌀 불리는 동안 출출하니까 에피타이저로 요거트 한 그릇. 요거트에는 역시 콘푸라이크인가보다. 콘푸라이크바는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부셔서 플레인 요거트에 섞어 먹어도 맛있다.

 

 

가장 만만한 건 역시 비빔밥! 갓지은 밥으로 해서 더 맛있다
오후엔 커피와 함께 밀린 작업들을 해본다. 가져온 책은 마우스패드행..

실내온도가 22˚C까지 떨어졌다

  삼촌이 마지막으로 난방 켜주고 가셨을 때가 아마 27˚C까지 올랐던 것 같은데, 별로 안 추운 것 같아서 난방 하루 안 켰더니 실내온도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겨울에 집이 더운 걸 싫어해서 난방 켜는 것보단 옷을 좀 더 입는 걸 좋아하는데, 바닥이 차갑거나 손이 시린 건 좀 못 견디는 스타일... 그래서 슬슬 나무를 때러 나가보았다. 잘할 수 있을지 긴장 반 기대 반.

 

 

시골의 노을

  요즘은 6시가 되기도 전에 해가 지는 것 같다. 그래서 밤이면 불빛이 없는 시골에서의 하루는 더 짧은 것 같다. 서울에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도 새벽녘에 할 일들 하면 된다는 생각에 '아쉽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는데, 시골에선 밤이 깊어가는 게 아쉬워서 적당히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고만 싶은 마음. (일찍 자는 건 선택지에 없는 야행성 인간)

 

 

오늘 내가 상대할(?) 녀석들. 삼촌께서 나무를 양껏 해주시고 가셔서 다행..
장갑까지 끼고 행색은 거의 전문가

슬리퍼 하나 가져올 걸... 없어서 할머니 신발인지 숙모 신발인지 빌려 신음
삼촌에게 배운 대로 잔가지부터 채워보는 중
큰 나무는 생각보다 무거워서 당황스러웠고.. 불을 어떻게 붙여야 하나 좀 막막했다

  나무 채우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삼촌께서 "이 정돈 네가 들 수 있겠지"하고 남겨두고 가신 나무를 낑낑대며 겨우 들거나 못 들어서, 내가 힘이 이렇게나 약했나 자괴감도 좀 들고... 고군분투 끝에 토치에 불 붙여서 나무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데 불 붙이는 게 무서웠다. 써본 거라곤 캔들용 입구 긴 라이터뿐이라서 일반 라이터 쓰는 게 좀 겁났고, 토치로 화력을 키우는 것도 좀 무서웠다. 그렇게 주저하고 있는데 빵빵 소리가 나더니 차가 한 대 멈춰섰다. "불 때요?"

 

 

진짜 전문가의 손길은 이런 거지

  삼촌과 평소에 왕래가 잦은 이웃분께서 지나가시다가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보고 멈춰서서 도움을 주셨다. 장갑 끼신 손으로 불붙은 나무도 턱턱 잡으시는 모습에서 내공이 느껴졌다. 내가 나무를 조금 어설프게 쌓았는지, 마른나무여야 하고 잔가지가 많아야 불이 잘 붙는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내가 넣은 건 생나무라며... 오랫동안 타긴 하는데 불이 붙기가 힘들다는 이유를 말씀해주셨다. 근데.. 얘기를 들어도 서울촌놈은 마른나무와 생나무를 구별을 못 하는데 어떡하죠...

  삼촌께서 이웃 주민분들께 당신이 잠시 집을 비우는 사이에 조카가 내려와서 지낼 거라고 말씀을 해두고 가신 모양이었다. 어제까지는 엄청난 이방인 같았는데, 오늘 이웃분의 도움을 받았다고 또 약간은 환영받는 기분이 들었다. 먼저 인사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움까지 주시다니, 내 마음이 더 따뜻해져버렸다.

 

 

마무리 정리

  난방 켜는 거에 1시간이나 걸릴 줄 상상이나 해본 나의 서울 친구들 있는지? 버튼 하나 누르면 금세 바닥도 물도 따뜻해지는 도시의 보일러가 새삼 감사해진다. 그래도 아직 그립지는 않다.

  시골 생활 만족스럽고 재미있는데, 단 한 가지, 이런 곳에서 진짜 산다면 파트너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플을 잘하는 두 사람이 팀플로 각자 잘하는 걸 해서 시너지를 내는 거지. 다 패진 장작으로 불 붙이는 것도 이 정도인데, 혼자 장작까지 패서 하라면 아마 엄두도 못 냈을 거다. 고작 일주일 체험기가 아니라 생활을 하게 된다면 더더욱. 나는 자연의 재료로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잘하니까 요리를 도맡고, 상대방은 겨울철 난방을 책임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다.

  아무튼, 고된 노동(?) 끝에 꿀맛 같은 저녁식사할 시간. 오늘의 메뉴는 김치찌개다.

 

 

밭에 몇 안 남은 파 따먹기
오늘도 백선생님 레시피 보고 파 송송
신김치, 잘 익은 김치, 갓 만든 김치 등등 종류도 다양했던 김치들.. 김치찌개엔 역시 신김치지!

쌀뜨물에 돼지고기부터 투하
고춧가루도 넣어주고
김치, 다진마늘, 두부 등등 넣고 잘 끓여준다
남은 수제비 반죽도 넣어본다. 김치수제비랑은 엄밀히 다르다!
고명용 파까지 넣고 조금만 더 끓이면 완성
잘 먹겠습니다

  김치찌개 한 그릇만 있어도 맛있게 한 그릇 뚝딱 할 수 있을 정도의 시장기. 고된 노동에 요리까지 했으니까 속 시원하게 해 줄 탄산수를 곁들여본다. 요즘 약간 지치면 맛있는 음식에 탄산수를 찾게 되더라고. 김치찌개는 내가 했지만 참 맛있었다. 백종원 아저씨 오늘도 감사합니다.

 

 

혼밥 할 때 영상 보는 건 여기에서도 별반 다를 것 없다
식사 후 🔥불님🔥 여전히 잘 붙어 있나 확인차 방문
오늘의 야식

  저녁 소일거리까지 끝나고 아주 느지막이 먹어본 야식. 죠리퐁을 요거트에 고명처럼 올려먹는 게 아니라, 아예 빠뜨려서 먹는다는 느낌으로 넣어서 먹으면 맛있다. 새로운 맛 조합을 발견할 때면 기분이 좋지.

  먹고, 불 때고, 먹었을 뿐인데 벌써 하루가 다 갔다. 이래서 시골에서의 하루는 참 짧고 해 떠있는 시간이 소중하다.

  전날과는 조금 다르게 이웃으로부터 환영받는 느낌이 들어서 따뜻해진 마음. 잘하는 일을 나눠서 할 파트너가 있다면 체험이 아닌 찐 시골생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도시에서의 간편함이 감사하면서도 아직까지는 조금 고된 일도 즐기며 할 수 있는 태도. 그런 것들을 느끼고 얻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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