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by Heigraphy
시각적 기록/사진일기

리틀 포레스트는 아닌 그냥 시골 생활기 03

by Heigraphy 2021. 11. 26.
반응형

 

  조금씩 조금씩 이웃분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온 동네에 저 집 조카가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소문이 다 났나 보다. 나는 이웃분들 봐도 누구인지 잘 모르는데 나를 보시는 분들마다 아가씨가 그 조카냐고 물어오신다. 어찌 시골에 내려와서 지낼 생각을 다 했냐는 호기심 어린 질문도 잊지 않으신다.

 

간단한 아침식사

  메리의 밥을 챙겨주고 내 밥도 먹는다. 아침이라 새로 요리를 하기도 뭐하니, 전날 조금 남은 김치찌개를 얹어서 먹었다. 원래 아침에는 전날 먹고 남은 걸로 후다닥 먹는 것이 국룰 아닌지.

 

 

메리가 말을 할 줄 알면 좋겠다

  분명히 아침에 밥 주고 다 먹는 걸 보고 들어왔는데, 내 밥 먹고 다시 나가니 밥그릇에 사료가 듬뿍 채워져 있다. 뭐지? 누구지? 택배가 온 듯 우체국 차가 와서 벨을 누르고 가길래 뒤늦게 나와봤는데, 설마 우체국 아저씨가 사람 없는 줄 알고 채우고 가신 건가? 택배 돌리기에도 바쁜 와중에 개밥까지 챙겨주신다고? 도무지 짐작이 안 가서 괜히 메리를 붙잡고 닦달해본다. 메리야, 밥 누가 준 거야, 어? 말 좀 해봐.

 

 

맨발로 메리를 만나는 건 위험하다

  택배가 와서 양말도 못 신고 나름 급하게 나간 건데 우체국 아저씨는 이미 떠났고, 발에는 메리로 인한 영광의 상처만 남았다. 사람만 보면 좋아 죽는 메리의 앞발을 어떻게 하면 좀 진정시킬 수 있을까?

 

 

메리 이불 만들어주기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바깥 생활을 하는 메리가 자꾸 눈에 밟혔다. 삼촌께서 버리려고 내놓고 가신 이불이 있어서, 어차피 버릴 거라면 메리 주면 좋겠다 싶어 삼촌께 전화를 드렸다. 개한테 이불을 준다니 삼촌 기준에서는 허허 웃을 일이셨지만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하라며, 개집이 작을 테니까 이불을 반 잘라서 넣어주라는 세심한 아이디어까지 제안해주신다. 역시 방식이 좀 다를 뿐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 거지.

  그에 더해 택배가 도착했다는 이야기, 어제까지 멀쩡하던 금붕어 한 마리가 갑자기 죽어서 보내줬다는 이야기 등등을 전해드리고 전화를 마친다. 삼촌이랑 이렇게 길게 통화해본 건 처음이다.

  전화하는 중에 삼촌이 하신 "너 알아서 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자꾸 맴돌던지. "귀찮으니 네가 알아서 하"라는 뉘앙스가 아니라, 정말로 내가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는, 무엇을 하든 네가 하기 나름이고 나는 걱정 안 한다는 그런 '믿음'이 느껴진 말이었다. 감사하다.

 

 

메리는 이불을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 네가 행복하면 됐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이걸로 나름 노즈워크도 시켜보고,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집에도 들어가게 해보려고 했는데, 노즈워크도, 이불 집에 넣어주기도 다 실패다. 이불을 집에 넣어주기만 하면 바로 물고 끌어서 바깥으로 빼던 메리... 터그 놀이라도 하자는 건가 싶어서 잡고 놀아주려고 하면 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혼자 물고 뜯고 흔들고 하는 게 좋은 모양이다. 그래도 밖에서 깔고 앉긴 해서 다행이야. 의도한 것의 30% 정도는 그대로 사용해줘서 다행이야.

  메리와 놀아주고 있는데 옆집 할머니께서 오시더니 말을 거셨다.

  "조카가 온다더니 아가씨가 그 조카구나."

  "네 안녕하세요ㅎㅎ"

  나는 당신을 모르는데 나를 아시는 할머니... 집이라고 행색도 조금은 꼬질하고 편하게 나왔는데 이웃분을 만날 줄이야... 몇 마디 더 나누다가, 집에 사람이 있으면 당신이 개 안 봐줘도 되겠다는 말씀과 함께 가셨다. 설마 메리 밥 주신 분이 이 분이신가? 옆집 비우면 강아지 밥도 서로서로 챙겨주는 그런 인정 많은 동네였나 보다.

 

 

오늘도 오후 작업 으쌰으쌰

  블로그 한 편 쓰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든다. 이마만 한 사진과 글로 요즘 1일 2포스팅이 어떻게 나오는 거냐면... 사진엔 없는 시간 동안엔 내내 랩탑만 두들기고 있다고 보면 된다. 커피 한 잔 하면서 하는 오후 작업이 어느새 루틴이 되었다💪 별 거 안 한 것 같은데 어느새 벌써 저녁 시간이다.

 

 

수제비 다음은 칼국수일 것 같다고 했지? 결국 또 반죽을 했다.
사진으로 굳이 안 남기던 번거로운 일들도 괜히 남겨봄. 요리=식사=설거지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정말 시골 생활에 로망이 될 만한 것들만 똘똘 뭉쳐서 보여준 거다. 물론 내 포스팅도 90%는 그렇긴 하지만.. 10% 정도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괜히 남겨본 사진.

  그나저나 칼국수 반죽은 또 숙성을 시켜야 한대서 냉장고에 고이 모셔두고 오늘은 다른 메뉴를 먹을 거다. 두 번째 반죽이라고 저번보단 좀 더 수월하게 한 것 같다.

 

 

드디어 소고기 개봉박두
부채살을 구워먹을 것이다

  들어오기 전에 시내에서 사온 유일한 고기..라서 사실 좀 아끼고 있었는데, 벌써 3일 차이기도 하니 중간 점검 겸 자축(?)하는 느낌으로다가 구워 먹기로 결정했다. 올리브유와 후추에 잠시 절여두기.

 

 

오늘은 삼촌 밭의 채소가 아닌 마트표 쌈채소
발사믹 드레싱 졸졸졸

  소고기를 스테이크처럼 구워 먹을 거니까 쌈채소도 샐러드처럼 먹어보기로 했다. 쌈채소도 잘라서 드레싱만 부으면 샐러드지 뭐. 하여튼 구운 고기+채소 조합은 손도 별로 안 들고 맛있고 든든해서 참 좋다. 뚝딱뚝딱 해먹기 가장 좋은 메뉴.

 

 

향이 더 나면 좋겠다는 마음에 다진마늘 투하
몇 없는 향신료로 노력해본다

남은 까망베르 치즈도 굽기

  며칠 전에 생 까망베르 치즈를 먹어봤는데 맛이 조금 아쉬웠던 데다가, 원래 구워서도 먹는다길래 구워봤다. 살짝 구우면 다른 치즈와 달리 녹아서 흐물흐물해지지 않고 적당히 부드러워지는 까망베르 치즈. 진작 이렇게 먹었어야 했네.

 

 

한국인은 역시 밥심! 그리고 오늘도 탄산수

  정말 간단한데 정말 맛있고 든든했던 한 끼. 사실 고기가 별다른 간이나 시즈닝이 안 되어 있어서 조금 심심했는데, 샐러드의 발사믹 드레싱이 너무 맛있어서 게눈 감추듯이 먹었다. 거기에 까망베르 치즈의 재발견도 기쁘고, 오늘도 완벽했던 식사.

  오늘도 먼저 인사하며 다가와주신 이웃분께 정을 느끼고, 삼촌으로부터 느낀 '믿음'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하루. 사람은 믿어주는 만큼 할 수 있다는 언니의 말도 생각나던 날. 나도 그동안 수많은 믿음을 주었고 믿음을 받았지. 스스로도, 타인과도. 나를 키운 건 그 믿음들이 아니었을까. 개중에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그 누군가도, 여전히 잘 살고 있겠지

 

 

Copyright ⓒ 2015 Heigraphy All Rights Reserved.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