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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진일기

리틀 포레스트는 아닌 그냥 시골 생활기 05

by Heigraphy 2021.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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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서나 여기서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출근할 때 아니고선 나는 프로늦잠러라는 것이다. 시골에서의 하루는 짧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은 해보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이날은 반드시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 있어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다름 아닌 시내에 장보러 가는 날이다.

 

아침 메리
그를 만난 흔적

  오늘도 귀여운 메리, 하지만 내 옷은 안 귀엽네... 내 밥 챙겨먹기 전에 메리 밥부터 챙겨준다. 몰랐는데 강아지는 밥을 넉넉히 놔두면 배고플 때 알아서 먹는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뒤로 혹시 내가 늦잠자서 밥 늦게 줘도 문제 없게끔 아침저녁으로 밥그릇이 비지 않게 충분히 주고 있다.

 

 

아침부터 밥도 지어본다. 오늘은 먼 길을 가야하니 든든히 먹어야 해.
조촐한 듯 있을 건 다 있는 구성
나름 참치쌈밥

  고기 없이도 참치쌈장에 싸먹기만 해도 맛있다는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배추와 된장과 참치, 그리고 전날 남은 장칼국수의 국물을 국 삼아 후다닥 차려 먹은 아침 식사. 사실 장칼국수에 들어간 재료가 거의 참치쌈장의 재료와 맘먹어서 조합이 꽤 괜찮았다. 다음엔 제대로 참치쌈장을 만들어 먹어보리.

 

 

간만에 꽃단장

  그동안 외출이라곤 거의 집앞 반경 100m 이내만 다닌 것 같은데, 이날은 아주 먼 외출을 결심하여 간만에 장신구도 착용하고 나갈 준비를 해본다. 차 없으면 시내 나가기 힘들다는데, 튼튼한 두 다리가 있고 마침 나는 요즘 걷기에 꽂혔으니 걸어보려고. 시내까지는 걸어서 약 2시간 반이 걸린다고 나온다.

 

 

날씨가 좋다

  집을 나서는데 우연히 건너집 할머니를 뵀다. 어디 가냐시길래 시장에 간다고 했더니 아침에 가는 버스는 벌써 떠났는데 어쩌냐며 걱정하신다. 걸어간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아니라고, 조금만 걸어나가면 다른 버스 정류장이 있고 곧 버스 올 시간일 테니 타고 가라며 당부하신다. 시장에 가려면 무슨 정류장에 내려서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고 등등 당신이 경험으로 알고 계신 모든 것들을 알려주실 기세이다. 새겨 듣고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할머니가 말씀하신 정류장쯤을 지나가니 정말 버스가 딱 왔다. 하지만 나는 오늘 걷기로 마음먹었으니 버스는 그대로 떠나보냈다. 돌아올 때는 타고 돌아올게요.

 

 

오늘도 시원하게 뚫린 도로
굽이굽이 가다보면 어느새 그곳에 닿겠지
점점 집이 많이 보인다

  시내 방향으로 걷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시내에 가까워진 거리는 아닌데 여기는 우리 동네보다 집이 더 많이 보인다. 내가 지내는 곳이 유독 더 한적한 곳이기는 하구나.

 

 

하늘이 예뻐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 인도가 나왔던가

  차도의 갓길로 한참을 걸었는데 어느새 인도가 나왔다. 내가 살던 세계에선 참 당연한 거였는데 한참을 없다가 보니 괜히 좀 반갑고 그러네.

  그나저나 걷다보니 좀 더운 것 같아서 겉옷을 벗었다. 해 있고 바람만 안 불면 그렇게 춥지 않은 시골의 초겨울 날씨 참 신기해. 다만 땀이 식으면서 저체온증 걸릴 것 같아서 금방 다시 입었다.

  지나가는 길에 또 웬 학교가 나와서 이곳도 엄마가 다닌 곳인가 싶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시내에 나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뭐 타고 가냐시길래 걸어간다고 했더니, "너 벌써 적응 다 했네~ㅋㅋㅋ" 하신다. 거기가 산길도 넘어야 하고 20리는 될 건데 어떻게 걸어갈 생각을 했냐며 웃으신다. 엄마가 말한 '산'은 몇 년 전에 도로공사를 하면서 길도 잘 닦아놨고 기껏해야 언덕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걸어갈 만하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장 같은 곳에 도착했다.

 

 

운 좋게도 5일장 서는 날 왔다
채소, 과일, 해산물 등등 다양한 것들을 팔던 시장

  2시간 반 걸린댔는데 1시간 반만에 왔다. 조금 빠릿하게 걸은 것도 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진짜 장날에 맞춰 와서 원래 목적지보다 앞에 있는 시장에 도착한 거였다. 어차피 필요한 물건만 사면 이 시장에서 사나 저 시장에서 사나 큰 차이가 없으니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이면 바로 살 생각으로 시장을 둘러봤다. 매우 활기찬 시장이어서 좋았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좀 비싸다..?

 

 

원래 목적지였던 365시장
평일 낮이라 조금은 한적하다
마늘 없이 못 사는 한국인이라 마늘 사러 왔음. 의성마늘 등 좋은 마늘이 많아 보였다.

  이 시장도 좀 비싸다. 사실 전날 쓱닷컴으로 배송 시켜보려고 둘러보느라 얼떨결에 시세(?)를 좀 알고 왔는데 거기서 본 것보다 다 조금씩 더 비싸다. 이상한데... 나의 생각대로라면 섬이 아닌 이상 도시보다 시골이 저렴하고, 마트보다 시장이 저렴해야 하는데...

  거기다가 지금 나는 1인 가구인 셈인데 마늘을 파는 기본 단위가 '되'나 '말'이라서 양도 고민이 되었다. 조금만 덜고 조금만 싸면 좋겠는데 시장의 단위에는 그런 거 없다. 결국 어느 집에 가서 한 되에 1만 원하는 마늘을 반만 덜고 5천 원에 사기로 했는데, 사장님이 윗부분만 조금 덜어내더니 딸 보는 것 같아서 많이 안 던다며 인심 좋게 담아주셨다. 그래, 시장의 인정은 아직 있구나. 이외에도 몇 가지를 더 사고 점심을 먹으러 떠났다.

 

 

가는 날이 장날 2탄, 하필이면 먹고 싶었던 빵집 휴무일..
빵집 뒤 골목에서 본 길냥이
나드리분식 쫄면

  이곳의 쫄면이 아주 맛있고 유명하다고 해서 와봤다. 면이 통통하면서 쫄깃하고, 양념장도 맛있는게 맛집 인정이다. 이곳은 당연히 나중에 따로 후기 올릴 예정.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통화하며 식사했다. 시장 좀 봤냐시길래, 보긴 했는데 생각보다 비싸다고, 서울보다 비싸고 마트보다 비싸다고 했더니 원래 그렇다고 하신다. 시골은 오히려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사는 사람은 다 사서 가격이 조금 비싸도 그러려니 한다나. 여기저기 저렴한 곳 가격비교 해가며 사는 건 서울에서나 그렇다고 한다. 전혀 몰랐던 사실.

  사실 서울에서도 내가 장을 직접 보는 일은 많지 않았다. 기껏 산다고 해도 나 먹을 닭가슴살이나 샐러드 같은 거나 사지, 주식인 채소, 고기, 곡식, 과일 같은 것들을 사본 적이 없으니 물가를 몰랐던 것도 맞다. 애호박 하나에 2천 원, 마늘 한 되에 1만 원 가격 보고 진심으로 놀랐다. 내가 생각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한 끼 먹을 당근 사면 80원 나왔던 네덜란드의 그것에 멈춰있었나 보다. 마늘도 통마늘 2개에 500원 뭐 이랬던 것 같은데.. 마늘의 민족이라서 마늘 가격은 더 약간의 배신감이...

  우리나라로 치면 '장'을 네덜란드에서는 '오픈마켓'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마트보다 더 싸다. 멜론 3덩이에 1유로, 아보카도 5개에 1유로 등등, 얼마나 인상적이었으면 아직도 가격을 기억할까.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장은 마트보다 무조건 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저녁에 이 이야기로 서울 살다가 또 다른 시골로 간 친구랑 의외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집값 빼곤 시골이 다 더 비싼 것 같다며, 집만 어떻게 좀 된다면 서울이 가장 살기 좋을 지도..?

 

 

쯔양이 먹고 갔다는 랜떡

  쫄면에 이어 꼭 먹어야지 생각했던 랜떡의 떡볶이. 다만 배가 부르니 포장을 했다. 부산에서만 가래떡 떡볶이 파는 줄 알았는데, 여기도 가래떡 떡볶이를 파는구나. 쯔양님이 먹었고, 놀라운 토요일 방송에도 나왔다고 하니 너무 궁금하다. 이곳도 따로 후기 올릴 예정.

 

 

다시 처음 봤던 시장으로

  이후에도 시장과 마트를 오가며 필요한 것들을 마저 사고 슬슬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하루에 몇 대 다니지도 않는 버스를 놓치면 아주 큰일나기 때문에. 건너집 할머니도 그러셨고, 엄마도 그러셨고, 버스 타는 곳을 잘 찾아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감사한 말씀이지만 요즘은 카카오맵이 버스 정류장도 다 알려주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답니다.

 

 

덜덜 떨다가 탄 버스

  버스가 OO시에 있다고 해서, 막차시간이 OO시이고 배차간격이 좀 클 뿐 계속 다니는 거라 생각하여 정류장에 좀 일찌감치 가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OO시에 딱 한 대가 오는 거였다. 그래서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네... 주변에 카페 같은 것도 없고 그야말로 길에서 그냥 한 시간을 서 있었다. 허허.

  버스를 타니 10분만에 집에 왔다. 이래서 할머니께서 타고 가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던 거구나. 누군가 내가 내릴 정류장에서 벨을 누르길래, 이 한적한 정류장에 내릴 사람이 없을 텐데 누군가 싶어서 봤더니 옆집 할머니께서 같은 버스를 타고 계셨었다. 덕분에 정류장부터 집까지 같이 슬슬 걸어오며 대화를 나눴는데, 나이를 물어보시고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이 찼다며 결혼은 안 하냐고 물으신다. 애인도 없는 걸요, 허허. 다 큰 처자가 결혼도 안 하고 여기까지 와서 뭐하나 싶은 게 어르신들 초미의 관심사인 모양이다. 할머니 세대에는 그럴 수 있지.

 

 

우렁각시가 두고 간 사과

  집에 도착하니 누가 문 앞에 사과를 두고 가셨다. 삼촌께 주신 걸까? 아니면 나한테 주신 걸까? 메리 밥 준 분과 더불어서 이 우렁각시 같은 동네 어르신들 대체 누구예요...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은데 정체를 모르니 그럴 수가 없네.

 

 

오늘의 하울링

  시장과 마트를 넘나들며 사온 식재료와 음식들. 얼음 만들어 먹으려고 얼음 트레이도 샀다. 이걸로 해먹을 음식들이 벌썩 기대가 되는구만.

 

 

저녁 메뉴는 파전

  살 때부터 파전을 생각하며 집어든 재료들. 삼촌 밭의 파는 많이 따먹었으니 이젠 마트표 대파를 섭취해야겠다. 거기에 소소한 해산물까지. 갑오징어가 저렇게 조그마하게 나오는 줄 몰랐다.

 

 

파 송송, 해물도 슥슥
어차피 밀가루 반죽 할 거니까 호박전도 만들어보려고
부침가루로 반죽 만들기
깔끔하게 호박전부터 만들어본다
별 거 안 묻히고 기름 둘러 살짝 구워만 주면
금방 먹음직스러운 호박전 완성!

  큰맘 먹고 2천 원짜리 애호박 사온 기념으로(?) 남은 애호박을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같이 부쳐버렸다. 계란도 뭐도 없이 부침가루만 묻혀서 구웠는데 이미 맛있다.

 

 

파전 반죽도 시작
지글지글, 최대한 얇게 펴서 튀기듯이 굽는 게 목표다

뒤집기 도전!
망했죠?ㅎ
심폐소생 중
두 번째 전도 어찌저찌 완성
양념장도 후딱 만들어서 한상차림

떡복이와 맥주까지, 하루의 마무리로 완벽해!
탄수화물 파티였지만 맛은 좋았다

  사실 떡볶이를 먹을 건데 떡볶이만 먹기엔 부족할 거 같고, 무슨 조합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파전과 호박전이 나왔다. 만들고 보니 약간 탄수화물 파티인가 싶지만 그래도 맛 자체는 썩 잘 어울리고 좋았다. 이날은 체력적으로도 꽤나 고생을 해서 탄산수도 아닌 맥주를 꺼내본다. 배가 터지게 먹은 것 같다.

 

 

식물도 돌봐야 한다

  이곳에선 돌볼 생명들이 많다. 메리와 금붕어와 화분들까지. 이 공간에서만큼은 모든 생명이 무려 내 손에 달려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멀리하면 큰일난다. 내가 있는 동안 나도 이들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

 

 

어김없이 찾아온 저녁 일과

  버스를 시간 맞춰 탄 덕분에 다행히 이후의 일과도 차질없이 해낼 수 있었다. 이런 일정이라면 앞으로도 차 없이도 시내 두어 번은 더 왔다갔다 할 수 있겠는데? 경험치를 통한 자신감이 +1 상승하였습니다.

 

 

+) 에필로그

오늘의 걷기 기록

  집에서 시내까지의 20리를 포함하여 하루동안 결국 30리를 넘게 걸었다. 이렇게 걸어도 이게 또 15km가 안 된다니... 매번 한강에서 걸었던 15km를 기준 삼아 이게 얼마나 걸은 것인지를 가늠해보게 된다. 이제 이 정도는 걸어도 다음날 아무런 기별도 없다. 걷기 근육이 조금씩 늘고 있긴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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