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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진일기

리틀 포레스트는 아닌 그냥 시골 생활기 07

by Heigraphy 2021.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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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시골 생활 일주일 차다. 하는 거라곤 밥 해먹고 산책하고 일기 쓰는 것뿐인데 시간이 너무도 빨리 간다.

 

어제랑 똑같은 길을 가도 또 흥미로워하는 녀석
오늘도 메리와 함께 시작하는 하루

  동네에 사람을 별로 못 본 것 같은데 어째 지나가는 어르신들은 나를 다 봤단다. 어제 개 데리고 걷는 거 봤다며, 그것도 힘이 좋아야 할 텐데- 하신다. 동네에 조그만한 녀석들이 많아서 메리가 상대적으로 더 커보이나 보다. 힘은 좋긴 한데 말을 잘 들어서 괜찮아요. :)

 

 

산책 후 늦은 아점. 오늘도 이웃분이 주신 사과를 먹을 거다.
샐러드에 넣어 먹어야지!
어느새 시들해진 쌈채소를 썰었다. 이럴 거면 그냥 샐러드 채소를 사올 걸.
닭가슴살도 넣고. 많이 못 사와서 아껴 먹는 중...
발사믹 드레싱 졸졸졸

발사믹 드레싱과 사과의 조합이 궁금하다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리고 맛있음!

  달달한 사과와 고소한 발사믹 드레싱이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발사믹이 그냥 만능 드레싱인 것 같기도 하고. 여기에 식빵 같은 것만 있으면 샌드위치 만들어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시장 나갈 때 사올 목록이 하나 추가되었다.

  샐러드 먹으면서 실시간으로 친구에게 이 사진을 보내니 어떻게 찍었냐며 깜짝 놀란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면 다 할 수 있단다... 가끔 나는 집이 집인지 스튜디오인지 잘 모르겠긴 해.

 

 

나도 이웃분께 나눔 하고 싶다

  사과를 주신 분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짐작가는 분이 계셔서,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전부터 인사 가야지 생각했던 분이 계셔서 나는 귤을 들고 나서본다. 사실 장 볼 때만 해도 이웃분은 미처 생각을 못 하고 나 먹으려고 사온 귤인데 양이 많기도 하고 빈손으로 가기도 뭐하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사와서 더 많이 나눠드릴 걸 그랬다.

 

 

호기심 어린 모습이 역력한 소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축사 울타리 사이로 머리를 빼꼼 내밀면서까지 나를 따라 시선을 쫓던 녀석들. 심지어 내가 가는 방향으로 축사 안을 따라 걷기까지 한다. 무엇이 그렇게 궁금한 걸까? 내가 낯선 이라는 걸 아는 건지. 산만한 덩치에 순진무구 호기심 어린 눈이 너무 귀엽다. 소가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였던가.

 

 

건너집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만찬

  귤을 들고 찾아뵌 곳은 건너집 할머니댁. 이미 창문으로부터 나를 보시고는 밥을 새로 안치신 것 같았다. 왔으니 저녁 먹고 가라며 한상 가득 차려주신다. 모두 밭에서 딴 작물들로 손수 만드신 귀한 반찬들. 쌀도 올해 수확한 좋은 쌀이라며, 저만한 대접에(밥그릇 아니고 대접..!) 밥을 두 그릇이나 주신다. 이미 용량 초과지만 거절할 수 없어 감사한 마음으로 싹 비웠다. 밥도 주시고 감사한데, 오히려 이렇게 찾아와줘서 내게 고맙다고 하시는 할머니. 내일 아침도 먹으러 오라고, 밥은 할머니댁에서 먹으라고 하신다. 너무 감사한 말씀인데, 제가 늦잠을 많이 자서 일어날 수 있으면 와보겠다는 자신없는 대답을 한다.

  엊그제 누가 집앞에 사과를 두고 갔는데 혹시 할머니께서 두셨냐고 여쭤보니 아니라고 하신다. 동네에 사과 재배하는 집은 OO네가 있는데, 그 집이 뒀나 보다고 하신다. 우와 그 사과도 재배하신 사과인 줄 몰랐네. 근데 OO네라고 말씀하셔도 난 거기가 어디인지 누군지 모를 뿐... 사과 주신 분은 영원히 미스테리로 남을 것 같다.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나도 누군가에게 베풀다 보면 돌고 돌아 그분들에게 닿기를.

 

 

나의 신발은 어디로?

  집에 가려고 나오니 신발 한 짝이 없다. 사진 속 왼쪽 위 귀퉁이에 있는 조랭이떡 같은 게 어딘가로 물어다 놓은 거다. 그렇다고 멀리는 못 갖다놔서 불빛 비추니 근처에 보인다. 웃기고 귀여운 녀석.

  배가 너무 부르기도 하고, 다른 개 냄새 묻히고 온 게 미안해서(?) 돌아가선 메리랑 저녁 산책 한 번 더 했다. 평소 같으면 보자마자 신발에 본인 앞발을 막 긁었을 텐데 거짓말처럼 차분하게 냄새만 맡던 메리...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건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보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해가 완전히 진 후에 밖을 나가보았다. 마침 구름도 없고 날이 맑은 데다가 불빛도 없는 시골이라 육안으로도 밤하늘의 별이 너무 잘 보인다. 책에서나 보던 별자리도 눈에 쏙쏙 들어오고, 앱을 켜고 보니 건너편 하늘에는 목성과 토성도 있다고 한다. 너무 아름답다. 가끔 밤에 나와서 이런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별궤적 사진 찍기 도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시골의 밤에 2시간씩 밖에 있으려니 손발이 꽁꽁 언다. 겨울 별사진 찍을 때 핫팩과 방한 신발, 롱패딩 같은 건 기본인데 오랜만에 찍는다고 방심했다.

  가만히 서있자니 더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니 발소리를 듣고 동네 개들이 짖는다. 밤에 시끄럽게 다른 집에 죄송해서 움직이지도 못하겠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스쿼트를 했다. 발이 안 시린 건 아닌데 발이 시리다는 사실을 잊게 해준다. 궁여지책이었지만 다시 생각하니 어이없어ㅋㅋㅋㅋ 근데 나쁘지 않은 방법을 찾은 것 같기도 하고.

  찍는 동안 차가 두어 대 지나갔는데, 이 밤에 저 사람은 잠옷 차림으로 밖에서 뭘 하는 건가 싶어서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줄어들다가, 사진을 찍는 중이라는 걸 알고는 슥 지나가는 차가 두어 대 있었다. 이거 또 내일 동네에 소문 다 나는 거 아닌지.

 

 

그 결과물

  아주 가끔은 눈보다 카메라가 더 많은 것을 담을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인가 보다. 그 어느 곳에서 별 사진을 찍었을 때보다 무수히 많은 별이 찍혔다. 찍는 동안 유성도 하나 본 것 같다. 정말 매력적인 시골의 밤하늘.

  서울에 돌아온 뒤로는 찍은 적이 없었으니, 정말 오랜만에 찍어본 별궤적 사진이다. 너무 가끔 찍으니 찍을 때마다 아쉬운 점이 보이고 습작 같은 느낌이 든다. 서울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찍어야겠다.

 

 

카모마일 티로 마무리

  들어오자마자 전기장판 켜고 차를 우렸다. 하필이면 불도 안 땐 날인데 밖에서 덜덜 떨다 들어와서 몸을 녹이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땐 치트키 쓰는 거지.

  건너집 할머니와 좀 더 안면을 트고 이야기를 나눴으니 앞으로 종종 찾아봬야겠다. 엄마 어릴 때 옛날 이야기도 듣고, 정겨운 시간이었다. 할머니들은 내 손자 네 손자 할 거 없이 다 애틋하신 건지, 당신이 가지신 모든 맛있는 것을 퍼주실 기세라 감사하면서 우리 할머니 생각도 나서 웃음도 난다. 별 사진을 더 잘 찍으면 인화하여 이게 당신들께서 지켜오신 마을의 밤하늘이라며 삼촌과 할머니께 선물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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