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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진일기

리틀 포레스트는 아닌 그냥 시골 생활기 09

by Heigraphy 2021.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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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아침부터 전화가 온다. 집 전화는 아니고 휴대폰에 삼촌의 이름이 뜬다. 이미 진작에 일어난 척 목소리를 깔고 받아본다. 며칠 전에 사촌언니랑 연락하다가 삼촌 오실 때쯤 난 다시 서울로 갈 거라고 말했었는데, 언니가 그 말을 전했나 보다. 삼촌은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이 있든 없든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가라는 이야기를 해주시고 싶어서 전화를 하신 거다. 당신이 내려오실 때는 나에게 연락을 하시겠다는 말씀과 함께. 우리 삼촌 쏘쿨하시다.

 

이제 점점 비슷해지는 하루

  점점 반복되는 일이 많고 단순해지는 시골 생활기. 요즘 하루의 일과는 메리 산책-(가끔) 불 때기-밥 해먹기 정도이다. 9일 차 포스팅이 8일 차 포스팅이랑 같은 거 아니냐고 물어도 할 말 없음ㅎㅎ

  메리는 아무래도 콘크리트 길보다 흙길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냄새 맡을 게 더 많아서 그런가? 아무튼 오늘은 조랭이떡들 만나게 해 주려고 새로운 길로 가본다.

 

 

조랭이떡들을 마주한 메리

  이 중에 덩치는 제일 큰 녀석이 제일 겁먹고 있는 것 같다. 좋다고 신난다고 다가오는 조랭이떡들에 비해 메리는 딴청만 피우고 조랭이떡들이 먼저 다가오면 가만히 서서 혀만 낼름낼름 거린다. 제일 늠름하게 생겨서 제일 겁쟁이ㅋㅋㅋㅋ

 

 

멍충멍충하게 나온 메리... 동생들이 무서웠니 메리야

  가자고, 가자고 하는 것 같아서 일단 후퇴. 동네 친구들과 친해지기 1차 시도 실패! 다음에 또 놀러오자.

 

  집에 돌아가서 오후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번엔 찐 우리 할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 시골 갔다면서. 잘 지내나? 밥은 잘 먹나? 혼자서 안 무섭나?" 반가운 할머니 목소리! 정작 할머니께서는 서울에 계시는데 내가 시골에 있는 아이러니ㅎㅎ 물어보시는 내용들은 역시 똑같구나ㅎㅎ 잘 지내고, 옆집 할매네 가서 밥도 얻어먹고, 이웃으로부터 사과도 얻어먹고, 밤에도 괜찮다고 조잘조잘 대답을 한다.

  춥지는 않냐는 말씀에 불 때면 안 추운데 불 붙이는 게 쉽지 않다고 대답한다. 낙엽 같이 잘 타는 거 주워다가 깔고, 위에 잔가지 올리고, 그 위에 큰 나무를 올려서 밑에부터 태우면 잘 탄다는 팁을 술술술 알려주신다. 우리 할머니께서도 소싯적에 불 많이 때 보셨나 보다. 여태까지 나무를 그렇게 체계적으로 쌓아본 적은 없는데 할머니 말씀 새겨들어야겠다.

  심심하진 않냐면서, 근처에 친구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하신다. 매일 블로그로, 카톡으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눠서 괜찮긴 하지만, 혼자 평균 연령 60세는 훌쩍 넘는 동네에 지낸 지 10일 가까이 되니까 친구들 생각이 나긴 하는데, 우리 할머니 내 맘을 어찌 이렇게 잘 아시는지. 다정하게 통화 후 서울 가면 찾아뵙겠다고 하며 전화를 마무리한다.

 

 

뭐했다고 하늘이 벌써 분홍빛일까

  해가 지기 전에 메리랑 산책 한 번 더 하기. 덕분에 예쁜 색의 하늘도 볼 수 있었네.

 

 

개잘생김

  멍충멍충과 개잘생김을 넘나드는 너란 개... 그러고 보면 요즘 내가 제일 많이 찍는 피사체가 너인 것 같네 메리야.

 

 

겁도 없는 조랭이떡ㅎㅎㅎㅎ

  다시 조랭이떡들네로 왔다. 아직 귀도 다 안 펴진, 제일 어려 보이는 조랭이떡이 겁은 제일 없다. 며칠 전 내 신발 한 짝 물어다 놓은 범인이기도 했던 녀석ㅎㅎ 나랑도 한 두세 번 봤다고 이제 꼬리 살랑살랑 치면서 다가오는데 너무 사랑스럽다.

 

 

조랭이떡들끼리 신났다

  메리가 외면해서 둘이서만 신난 건지, 둘이서만 신나서 메리가 외면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드디어 만나긴 했는데, 메리는 여전히 뭔가 얼어있었다는 것ㅎㅎ 겁쟁이 메리야 으이구~~

  얘네들 짖는 소리가 들리니 할머니께서 문을 열고 나와보시더니 오늘도 어김없이 밥을 먹고 가라고 하신다. 괜찮다고, 오늘은 개도 데리고 왔고, 저도 집에 쌀을 안쳐놓고 와서 가서 먹어야 한다고, 오늘은 그냥 할머니 얼굴 보러 온 거라고 말씀드린다. 그럼 개는 잠시 마당에 두고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하셔서 결국 염치 불구하고 커피를 한 잔 얻어마셨다.

 

 

볶은 땅콩을 주셨다

  오늘 볶으셨다는데 볶은 거 다 나 줘버리신 할머니.. 너무 많다고, 조금만 덜어주시면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오늘도 역시 당신이 가진 모든 맛있는 것을 퍼주시는 할머니...^^ 무엇으로 또 보답을 해야 할까!

 

 

해질녘의 메리

  요즘 조금 걷는다고 다리가 더 튼실해 보이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이겠지..? 산책할 때마다 내가 너의 견생샷들을 찍었다는 걸 너는 알까.

  집에 돌아오니 해가 금방 져서 저녁시간이 되었다. 오늘의 메뉴는 며칠 전부터 벼르고 별렀던 참치쌈장. 드디어 해 먹는구나.

 

 

양파, 대파, 마늘 등 각종 채소 손질

  쌈장엔 된장과 고추장만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들어가는 재료가 많다. 그것도 모였을 때 맛이 없을 수 없는 재료들로다가. 오늘도 백종원 선생님의 레시피를 참고한다.

 

 

참치기름으로 뚝배기 코팅하기
양파, 대파 등 채소 먼저 볶기
고춧가루 등 넣고 다진 마늘도 한스푼! 이거면 이미 맛있지
오늘도 핵심 재로 집된장과 집고추장

  여기까지만 끓여도 벌써 맛있는 쌈장 맛이 나는데, 이렇게만 먹기 아쉬우니 참치를 곁들이는 거라고 한다. 참치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넣을 수 있고, 아니면 그냥 이대로 쌈 싸 먹어도 훌륭하다.

 

 

참치 투하

조금만 더 끓이면 정말 그럴 듯한 비주얼

  냄새부터 이미 맛있는 쌈장이다. 오늘의 요리도 대성공!

 

 

두 번째 메뉴는 배추전

  참치쌈장만 먹기에는 부족하니까 두 번째 메뉴인 배추전을 만든다. 이거 사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제사 음식이라 평소에는 잘 안 먹는데, 일단 나는 삼촌 밭의 배추가 굉장히 많고, 무엇보다 이것도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해 먹고 싶어졌다. 그리고 참치쌈장은 그냥 채소 싸 먹어도 맛있다는데, 배추전 해서 먹으면 더 맛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뇌피셜로 뚝딱뚝딱 만들어봄.

 

 

배추전 완성!
참치쌈장 클로즈업
오늘의 저녁식사

  오늘도 역시 빠질 수 없는 한국인의 밥심. 덕분에 다시 찾아온 탄수화물 파티. 원래 배추전은 간장 베이스 양념에 찍어 먹는데 오늘은 참치쌈장이 있으니 간장 양념은 굳이 만들지 않는다.

 

 

역시 잘 어울리는 두 조합

  쌈장이 생각보다 매콤해서 밥이랑 배추전이랑 먹기 딱 좋았다. 쌈 싸 먹듯 먹진 않고 그냥 전을 잘라서 쌈장과 곁들여 먹었는데 맛의 궁합이 참 좋다. 제사 아닐 때 일부러 배추전 만들어 먹기는 처음인데 앞으로도 종종 간식처럼 해 먹어도 되겠는 걸? 오늘의 식사도 대만족이다.

  요즘 부지런히 사진 찍고, 보정하고, 1일 1포스팅, 가끔은 2포스팅까지 하는 거 돌아보면 뿌듯하고 좋은데, 너무 아웃풋만 쏟아내다 보니 이제 슬슬 나한테 좋은 것들을 입력하는 시간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져온 책들도 좀 읽고, 좋은 작품도 보고 뭐 그런 시간들을 여유롭게 가져보고 싶다. 여기서마저도 바빠서 못 한다는 핑계를 대면 안 될 것 같아. 돌아가기 전에 많이 쏟아낸 만큼 또다시 채워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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