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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진일기

리틀 포레스트는 아닌 그냥 시골 생활기 10

by Heigraphy 2021.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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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아침에 누군가의 전화로 눈을 뜨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벌써 마을에서 나를 찾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아니고 오늘도 건너집 할머니께서 밥 먹으러 오라며 아침부터 전화를 하신다. 30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하니 조금 놀라시는 눈치길래, 최대한 빨리 가겠다며 대충 고양이 세수에 양치만 하고 간다. 창피함을 잊고 얼굴이 두꺼워지는 기분이다.

 

아침부터 귀여운 조랭이떡들

  할머니댁에 가는 게 즐겁고 반가운 이유 중 하나. 오늘은 내 식사하러 온 거라서 메리는 없어 말랑콩떡들아. 다음에 또 같이 올게.

  할머니댁에 들어가니 이미 손님들이 많았다. 윗집 할머니랑도 인사하고, 도우미 아주머니랑도 인사한다. 남의 집에서 자꾸 사진을 찍는 게 조금 실례인 것 같아서 이제 사진은 찍지 않지만, 오늘도 진수성찬에 밥도 한 대접 가득 주신다. 어르신들께서 나보다 식사를 더 잘 하시는 것 같다. 이러니 할머니께서 매번 내게도 밥을 한 대접 주시면서 그것도 부족할 거라 생각하시나 보다. 식사 후 커피까지 마시고 자리를 일어난다. 오늘도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

 

 

그들을 만난 흔적

  집에 돌아오자마자 메리와 산책을 했다. 이제는 내가 문열고 나가면 좋아서 날뛰는 것 이상으로 자기도 데려가라고 꺽꺽 우는 메리... 혼자만 외출하는 것이 미안해진다. 언젠가 내 경제력이 안정되고 환경이 괜찮으면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 며칠 메리를 보면서 조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메리는 바깥 생활을 하는 친구라 사실 내 손을 타는 게 많지 않은데도, 매일 2산책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데다가, 도시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감수하고 굉장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에. 출퇴근 안 하고, 마당 있는 집에 울타리를 치고 키울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수도권에서 그렇게 살려면 다다음생쯤에나 될까..?

 

 

불 때기 필수템

  오늘은 불 때다가 해가 질 일 없게끔 조금 이른 시간에 불을 때본다. 이제는 음악 없으면 못 살겠는 시골 라이프.

 

 

전날 비가 왔는데 다행히 멀쩡했던 나무

  이제 남아있는 나무가 별로 없다. 삼촌이 가시면서 이거 이틀 치라고 하셨는데, 열흘을 살았으니 그래도 선방(?)했다고 해야 하나. 물론 창고 같은 곳에 예전에 해두신 나무들이 더 쌓여있기 때문에 나무 없을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단지 내가 아껴쓰고 싶을 뿐.

 

 

대참사1
대참사2

  여느 때처럼 재 퍼다 버리러 가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재를 온몸과 카메라로 뒤집어 써버렸다. 나는 그렇다 치는데 카메라가 대참사..... 바람과 재한테 화를 낼 순 없어서 타이밍을 못 맞춘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버렸다. 매번 새로운 사건사고의 연속인 불 때기.

 

 

잔가지가 필요해서 오늘도 톱질
할머니 말씀대로 체계적으로 쌓아보려고
잔가지를 득템하였습니다

톱으로 나무도 잘라보려 했지만... 이건 실패

  그렇게 두꺼운 나무는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좀 단단해서 힘에 부쳤다. 이건 내 힘으론 안 될 것 같고 커팅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있는 나무 다 쓰면 진짜 큰일이겠는데 이거.

 

 

낙엽→잔가지→마른나무→생나무
한 번에 붙었다!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대로 나무를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아 밑에서부터 불을 붙이니 한 번에 붙었다. 대박! 오늘은 잔가지 직접 자르고 여기저기서 나무 모아오고 하느라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불 붙이는 게 한 번에 되니 아주 일사천리로 끝난 것 같고 후련하다. 불 때기 마스터 하고 간다고 했는데 열흘만에 이게 되는구나.

 

 

반가운 굴뚝 연기. 이 모습을 보려고 그렇게 애를 썼지.

 

노동 후 꿀 같은 휴식

  다들 이곳에서 혼자 심심할 것 같다고 하시니, 별로 그렇진 않았는데 괜히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할머니께서 친구라도 있으면 부르라고 하셨지만, 정작 삼촌께는 여쭤본 적이 없어서 전화를 드린다.

  "삼촌, 혹시 이번주에 안 오시면 제 친구 불러도 될까요?"

  "어~ 친구 아니라 친구 할애비라도 불러서 같이 있든 말든 마음대로 해. 따뜻하게 있고 밥 잘 챙겨먹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친구 할애비에서 빵 터졌다. 우리 삼촌 정말 저세상 쿨함이시다. 그래서 주말에 시간이 되는 친구를 불렀고, 친구도 선뜻 OK하여 이 시골에 손님이 오게 되었다. 점점 반복되는 일상에 조금은 무료해지던 차에 또 새로운 상황이 펼쳐질 거라 벌써 기대가 되네!

 

 

해 넘어가기 전 산책
그림으로 그린 듯한 하늘과 구름

오늘도 잘 걸었다 메리야

  하늘이 딱 예쁠 시간에 산책을 나가서 예쁜 사진도 많이 찍었네. 메리 없었으면 여기서 과연 1일 1외출은 했을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슬슬 해가 저물어 간다. 지난 장칼국수의 맛을 잊지 못해서 오늘도 수제면을 뽑아서 바지락 칼국수를 해 먹을 거다. 바지락 칼국수는 백선생님 레시피가 없어서 그냥 아무 유튜브를 참고했다. 유튜브는 이쯤 되면 오늘날의 백과사전이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멸치육수 우리기
채소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애호박과 대파 정도 필수로 있으면 좋을 것 같고, 그 외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듯하다. 자취요리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육수가 팔팔 끓어 우러나는 동안
칼국수 면을 뽑아본다. 전날 미리 해두었던 반죽.
오늘도 밀대 대신 컵으로

  지난 번에 면이 조금 두껍고 투박하게 뽑힌 것 같아서, 이번엔 꽤 신경써서 최대한 얇게 반죽을 밀어보았다.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조금은 익숙해진 듯한 느낌.

 

 

반죽 착착 접어 가지런히 썰어다가
손으로 한 번씩 펴줘야 하는 건 변함없다

해물 칼국수가 될 것이야

  오징어까지 들어가니 해물 칼국수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칼국수의 핵심 재료. 냉동 해물이라도 맛만 좋고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오늘은 바지락 많이, 오징어 약간!

 

 

채소부터 넣고
면 넣는데 다 뭉쳐서 조금 망한 듯..ㅎ
약간은 불안한 마음에 휘적여본다

  해물 조금 손질하는 사이에 면이 또 다 붙어버렸다. 지난 번처럼 하나씩 떼서 넣어보려고 했는데, 면이 얇아서인지 떨어지는 게 아니라 끊어지고, 만질수록 오히려 더 뭉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을텐데(...)라는 조금 귀찮아진 마음으로 대충 넣어버렸다. 벌써 초심을 잃어버린 것인가.

 

 

완성

  양념장 만들고, 김치까지 썰어서 뚝딱 완성한 바지락 칼국수. 멸치육수와 바지락육수까지 우러나와서 그냥 먹어도 시원하고 맛있었다. 거기에 약간 심심한 듯하면 양념장 넣어서 또 조금은 자극적으로 먹어주고. 면은 너무 얇게 만들었는지 저번보다는 쫄깃함이 덜했고, 뭉침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저번 장칼국수는 초심자의 행운이었나 보다. 국물이 맛있다보니 거의 2인분은 되는 양을 한 방울도 남김 없이 다 먹었다. 이쯤 되면 해 먹을 것도 거의 다 해 먹은 것 같은데 앞으론 뭘 먹어야 되나 고민이다.

  저세상 쿨함의 삼촌 덕분에 갑작스럽게 오기로 한 친구와도 무엇을 해 먹을까 행복한 토론을 했더랬다. 친구가 이 블로그를 보며 먹고 싶었다는 음식을 해주기로 하고, 나도 친구의 음식을 맛보기로 한다. 간만에 시내 나갈 일 생긴 것도 좋고, 맛있는 거 먹을 생각에도 설렌다. 친구에게도 랜떡을 맛보여주겠노라 했고, 가고 싶은 카페도 하나 있었는데 같이 가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고향에서 고향 친구 만나는 건 아니지만, 왠지 리틀 포레스트의 로망을 다 실천해보는 것 같아서 묘하기도 하다. 얼른 오렴,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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