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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진일기

리틀 포레스트는 아닌 그냥 시골 생활기 12

by Heigraphy 202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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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둥이가 온 지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추위를 타는 정도가 달라서 집의 온도를 어찌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집에서 추위를 별로 타지 않는 나와 추위를 많이 타는 앙둥이. 서초 호캉스 때는 딱 좋지 않았나 했더니, 그때도 앙둥이는 추웠단다. 이런 것도 잘 맞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날이 밝자마자 가스통을 교체했다

  둘 다 잘 만큼 실컷 자고, 일어나자마자 가스통의 상태부터 보러 간다. 삼촌께 여쭤보니 쓰던 걸 잠그고 예비용 가스통을 열면 된다고 하셨는데, 가스통 처음 만져보는 서울촌놈은 하라는 대로 해도 불안하다. 가스집 번호를 알려주면 새 가스통을 하나 더 주문해놓겠다고 하셔서 알려드리곤 오후쯤 가스 아저씨가 다녀가신 걸 확인한다. 시골집에 오면서 '나 있는 동안 설마 가스통 바꾸는 작업까지 하게 되겠어?' 했는데 이게 돼버리네.

 

 

아점 요리 담당은 앙둥이

  전부터 앙둥이가 마제소바를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다고 자랑해서, 그 마제소바 나도 좀 만들어달라고 해서 결정된 첫 번째 메뉴. 집에 있는 재료, 앙둥이가 집에서 가져온 재료, 시장에서 사 온 재료 등등을 십시일반 하여 선뜻 마제소바 만들기에 나섰다.

 

 

대파와 마늘 많이많이, 역시 마늘의 민족!
이번만큼은 생칼국수면을 사왔다

  생칼국수면이 쫄깃하니 맛있을 것 같아서 마제소바 면으로 당첨되었다. 지난번 바지락 칼국수 만들어 먹을 때 직접 뽑은 면이 약간 망한 감이 없잖아 있어서 이번엔 마트에서 면을 사 왔다. 3덩이가 들어있었는데 1덩이에 1인분쯤 되겠지 싶어서 손 크게 두 덩이 잡아서 면 풀어주는 중.

 

 

마늘 절반은 볶을 때 쓰고 절반은 생으로 올려준다
면 삶기와 고기 고명 만들기를 멀티로 하던 앙둥.. 대단해

다 삶은 면은 건져서 찬물에 살짝 씻은 후 플레이팅
계란 노른자가 포인트

  그나저나 한 명은 요리하고 나는 사진찍기만 하니까 이렇게 편하고 빠를 수가 없다. 내가 블로그에 얼마나 진심인지 아는 친구라 또 중간중간 이렇게 해줘, 저렇게 해줘 하는 요구사항도 잘 맞춰줘서 더 수월했다ㅋㅋㅋㅋ 협조 고맙다 앙둥! 덕분에 나는 요리에 보탠 건 1도 없고 이 마제소바는 오롯이 앙둥이의 작품이다.

 

 

마제소바 완성!

  시장과 마트에서 부추를 못 구해서 부추 빼곤 다 있는 마제소바 완성! 아쉽게도 계란은 자리잡지 못하고 주르륵 미끄러져 터져버렸다. 듬뿍 올라간 시장표 의성마늘이 생각보다 꽤 매워서 알싸한 마제소바가 되었다. 칼국수 면은 생각보다 많아서 정말 배 터지게 먹었다. 보기보다 맛이 없을 수 있다며 밑밥을 엄청 깔던 앙둥이였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아주 맛있게 한 그릇 뚝딱 했다.

 

 

메리랑 같이 산책 시간

  양이 생각보다 많아서 과식했으니 소화도 좀 시킬 겸 메리랑 산책하자고 길을 나섰다. 건너집 조랭이떡들도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그쪽으로 슬슬 걸어가본다.

 

 

어김없이 조랭이떡 등장
오늘도 제일 똥꼬발랄한 조랭이떡ㅎㅎㅎㅎ

  앙둥이가 메리랑 앞서 걷고 나는 좀 뒤쪽에서 따라오는데 어디선가 조랭이떡이 튀어나와서 막 달려오더랜다ㅎㅎㅎ 마침 할머니께서 어딘가 다녀오시는 길이라 집 앞에서 딱 만났다. 처음 보는 아가씨가 메리의 줄을 잡고 있으니 누군가 싶어 말을 거셨다가, 그 뒤로 오는 나를 보고는 친구가 온 거냐며, 오늘도 어김없이 들어왔다 가라고 초대해주신다.

 

 

과식해서 산책하러 나온 건데.. 또 다시 과식

  오늘 한 거라며 쟁반보다 큰 배추전 세 장을 죽죽 찢어주시고, 쫄깃한 절편도 두 줄이나 썰어주신다. 앙둥이가 배추전 먹고 싶다고 해달라고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건너집 할머니 댁에서 먹게 되었네. 빼지도 않고 깨작거리지도 않고 잘 먹는다며 친구가 착하다고 하시는 할머니ㅎㅎㅎㅎ 저희 배불러서 산책하러 나온 건데 여기서 또 먹고 있다고 하니, 오히려 밥도 먹고 가라고 하신다. 진짜 배불러서 못 먹는다고 겨우겨우 사양하니 그럼 전과 떡이라도 다 먹고 가라고 하신다.

  할머니랑 이야기 나누면서 살짝 젓가락을 쉬는 동안 앙둥이가 진짜 열심히 먹어서 다행히 전은 좀 줄어들었고, 떡이 6점 남아서 눈으로 3점씩 먹자고 했는데, 앙둥이 3점, 나 2점 먹고 마지막 하나 남은 걸 가위바위보 하자고 하니 앙둥이가 눈으로 욕했다ㅋㅋㅋㅋㅋ 배가 찢어질 것 같은 걸 어떡해... 다 안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정말 열심히 먹었다는 앙둥이. 내가 할머니께서 한 대접씩 주시는 밥을 왜 그렇게 넙죽넙죽 다 받아서 먹고 오는지 이제 알겠지?

 

 

  맛있는 거 먹고 과일도 한 보따리 받아서 나오니 오늘도 조랭이떡이 신발을 다 헤집어놨다. 할머니 신발은 안 건드리는데 손님만 오면 손님 신발을 그렇게 해둔다고ㅎㅎ 여기저기 흩뿌려놓은 건 물론이고 어떻게 놀았길래 정확히 신발 네 짝을 다 끈을 풀어놨는지 모르겠다. 귀여우니 봐준다ㅎㅎ

 

 

애교가 철철 넘치는 너란 강아지

  메리는 아직도 동생들이 불편한 것 같다. 동생들이 다가오면 피하는 걸 넘어서 이제 으르렁거리기까지 한다. 조랭이떡은 그런 메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메리만 보면 같이 놀자고 신나서 어쩔 줄을 모른다.

 

 

똥꼬발랄 조랭이떡
앙둥이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어

앙둥이의 시선에서 본 조랭이떡

  묶여있지 않아서 아마 동네에서 제일 자유로운 개일 텐데, 우리가 집에 가니 무슨 산책 가는 줄 알고 조랭이떡이 따라왔다. 저쪽에서부터 우다다다 뛰어오고, 놀자고 점프하고, 만져주니 배를 뒤집어 까는 이 애교쟁이에게 앙둥이가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개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는 이녀석도 집 지키긴 그른 것 같네!

 

 

그렇게 쳐다보면 유죄.. 심장 아파...
이 평화로운 풍경이 너무 좋다

  앙둥이가 메리 줄만 잡으면 메리 힘에 못 이겨서 저만치 앞서간다. 나는 뒤에서 말랑콩떡이랑 놀면서 천천히 가다보면 어느샌가 말랑콩떡이 앙둥이와 메리를 쫓아 우다다다 달려간다. 말랑콩떡이 우다다다 달려가는 건 대부분 사람한테 달려가는 거라 앙둥이에게 또 폭풍애교를 부린다. 이 와중에 메리는 꼬리 살랑살랑 흔들면서 날 바라보는 게 참 귀엽다. 사랑둥이들 덕분에 너무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경이야, 정말!

 

 

눈 마주치면 우다다다 뛰어오는 너 임마 진짜 유죄..ㅠ 사랑해ㅠ

덕분에 매우 행복한 산책이었다

  결국 우리 집까지 따라온 조랭이떡ㅎㅎ 할머니 걱정하실까 봐 요 녀석 데려다주러 한 바퀴 돌아서 할머니 댁 한 번 더 다녀왔다. 어찌나 똘똘한지 돌아가는 길에는 조랭이떡이 우리보다 앞서 가선 뒤돌아보고 기다리면서 마치 우리를 안내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물 친구들 덕분에 행복했다!

 

 

오늘은 불 때는 날
사이즈 좀 큰 나무 직접 잘라보겠다고 도전도전

  앙둥이가 와도 불은 때야지. 자기는 뭘 하면 되냐는 질문에 그냥 사진이나 몇 장 찍어주고 들어가라고 했는데, 톱질로 하도 고전하고 있으니 앙둥이마저 톱을 들었다. 많이 잘린 것 같은데 톱이 안 드는 단단한 부분이 있어서 어림도 없네.

 

 

드디어 쪼갰다!

  결국 톱질은 포기하고 톱 자국이 난 곳을 위주로 바위에 내리찍어서 나무를 쪼갰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기쁠까ㅋㅋㅋ

 

 

오늘도 한 번에 붙였다. 이제 진짜 장작불 마스터🔥

  오늘도 나무 쌓는 게 조금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불은 한 번에 붙었다. 불 때기에 숙달이 됐을 때 앙둥이가 와서 다행이다. 이것도 혼자 사진찍고 불 붙이고 북치고 장구치고 안 해도 돼서 더 빨리 붙인 것 같기도 하네!

 

 

저녁 메뉴는 콩불. 믿고 만드는 백종원 선생님 레시피!

  같이 만들자고 했는데 왠지 또 자연스럽게 앙둥이 주도로 만들게 된 콩불..ㅋㅋㅋㅋ 나는 채소 씻는 것 정도만 하고 사진만 찍었네, 또. 시장에서 콩나물 천 원어치를 샀는데 봉다리 한가득 주셨고, 우린 그걸 다 때려넣었다(...) 거기다 고기를 560g 정도 샀는데, 1인분에 200g 정도 먹지 않냐면서, 이 정도면 2인분 조금 넘는 양이네- 하면서 또 다 넣어버렸다. (기적의 계산법)

 

 

뭐가 너무 많고 뭐는 너무 적은데?
일단 볶아봐
비주얼은 그럴 듯하게 완성

  콩나물과 고기가 산 같아서 다른 재료의 향은 별로 나지 않으며, 재료 양은 두 배인데 양념장 양은 변함이 없어서 약간은 심심한 맛의 콩불이 탄생했다. 이미 다 만들고 나서 백 선생님의 영상을 다시 확인해보니 4인분 기준 고기 280g을 넣었다. ...? 그럼 딱 2배인 560g을 넣은 우리는 8인분을 만든 건가? 말도 안 돼ㅋㅋㅋㅋㅋ

 

 

간이 조금만 더 되었다면 좋았겠다

  예상한 맛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둘이서 절반 정도는 먹었으니 8인분까지는 아니고 4인분 정도 되나 보다. 우리 양이 많은 게 아니라 백 선생님이 표기를 잘못하신 거라고 믿을래...

  그나저나 자꾸 남는 음식들이 생겨서 음식 버리는 거 싫어하는 나로서는 곤란하다. 혼자 먹을 땐 그리 손이 큰 편이 아닌데 같이 먹는 사람이 있으니 손이 엄청 커버리네. 희한하다.

 

 

  저녁 먹고 조금 뒹굴거리다가 앙둥이에게 해 다 진 뒤에 밖에 나가봤냐고 물어봤다. 테라스에 나가본 게 다고 밖에 완전히 나가본 적은 없다고 해서, 시골의 밤하늘을 보여주기 위해 앙둥이를 데리고 나가본다.

 

 

넋놓고 보게 되는 이곳의 밤하늘
앙둥이는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나 보다

  나오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하던 앙둥이. 역시 좋아할 줄 알았어ㅎㅎ 서울의 밤하늘에는 별이 한두 개 정도 그냥 '떠있다'는 느낌인데, 이곳에선 다 셀 수도 없는 별들이 '반짝인다'는 느낌이라 너무 신기하다고 한다. 별이란 게 원래 저런 건데 그동안은 단 한 번도 본연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며.

  이 모습을 혼자 보기가 너무 아까웠는데 네가 와서 참 다행이라고 말한다. 이거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와서 보고 싶은 모습인데,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가만히 서서 별만 쳐다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추위만 아니었다면 몇 시간이고 밖에 앉아서, 누워서 별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별똥별도 하나 떨어진다. 그 짧은 시간에 앙둥이는 소원도 빌었단다.

 

 

흔한 별찍기 복장 (photo by 앙둥)

  지난주에도 이런 복장으로 사진 찍고 있었는데 차가 두어 대 지나가면서 봐버렸다. 내가 이곳에서 가진 옷 중에 제일 따뜻한 옷이라서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어차피 집 앞인데 뭐! 오늘은 너무 추워서 궤적 사진까진 못 찍고 별 사진으로 만족해본다.

 

 

오늘의 심야 영화는 라라랜드

  혼자보다 둘이 보면 더 재미있으니까 앙둥이 온 김에 1일 1영화 하는 중ㅎㅎ 까망베르 치즈 굽고, 남은 치킨 데워서 맥주랑 같이 착석한다.

  라라랜드는 개봉했을 때부터 화제가 되었던 영화라서 봐야지,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5년이 지나버렸다. 가끔 뮤지컬 같은 연출이 나오면 눈을 뗄 수 없고, 무엇보다 영화 배경이 아름답고 카메라 무빙이 미쳐서 영상미가 너무 좋았다. 그러나 그 외에는 사실 개인적으로 기대만큼 그리 재밌게 보진 못했다. 앙둥이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왜 그렇게 호평일색일까 오히려 조금 궁금해진 영화였다.

  워낙 많은 일을 한 하루라 그런지 마제소바 먹고 할머니 댁에서 배추전이랑 떡 먹고 온 게 어제 일 같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바쁘게 흘러간다는 걸 백번 이해한 앙둥이. 그녀의 시골 체험 두 번째 날이자 마지막 밤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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