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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진일기

리틀 포레스트는 아닌 그냥 시골 생활기 14

by Heigraphy 2021.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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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일이다. 앙둥이가 다녀간 뒤로 이 시골 생활에 뭔가 더 의욕이 없다. 정확히는 그전만큼 부지런히 사진찍고 글쓰고 뭔가를 남기는 데에 의욕이 없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그 외에는 사실 다 살자고 하는 본능적인 행위에 가까워서 먹고, 먹이는 일에는 변함이 없는데. 

 

일주일만에 도착한 배송

  집에 있던 물을 다 마셨다. 2주에 6병이라니 나 생각보다 물 많이 안 마시는구나. 배송시키면 그래도 3-4일이면 온다고 해서 앙둥이 오기 전에, 아니면 적어도 와있는 동안엔 오겠지 했는데 앙둥이가 집에 가고 나서야 덩그러니 왔다. 다행히 둘이서 물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좀 더 여유를 두고 시켜야겠다.

  이날은 카메라는 들지도 않았고, 낮에 뭐 해먹었는지 핸드폰으로도 사진을 안 찍었다. 안 남겨놓으니 나도 뭘 먹었는지 기억이 전혀 안 나네. 아마 앙둥이 있을 때 손크게 만들어서 남은 음식들 먹었겠지?

 

 

내 눈에는 훨씬 작아 보이는데 사진만 찍으면 조랭이떡이 왜 이렇게 커 보이는 걸까?

  조랭이떡의 심장어택을 잊지 못해 괜히 또 이쪽으로 걸어와보다가 할머니랑 조랭이떡이랑 딱 만났다. 할머니께선 다른 이웃분들을 배웅해주시는 길이었다. 그리곤 내게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며 집으로 불러주신다. 나는 정말 커피 한 잔만 하려고 들어갔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어주신 진수성찬

  메리를 묶어두느라 할머니보다 조금 늦게 들어왔더니, 이미 쌀을 안치시고 계셨다. 그 전에는 밥 먹고 가라고 하시면 내가 한사코 거절을 하니, 이번엔 저녁 시간이기도 하겠다, 당신께서도 식사를 하셔야 하니 내 몫까지 자연스럽게 착착착 준비하신 저녁 상차림. 오늘만큼은 나도 맛있게 먹는다.

  사실 나는 할머니께 늘 밥 조금만 주시라고 하는데, "그래 조금만 먹어라-" 하시곤 그릇 한가득 주시고,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더 먹으라며 두 주걱은 더 퍼주신다. 갓 지은 밥이라 지금 딱 맛있다며. 그러면 또 거절하지 못하고 싹싹 다 긁어먹고 온다. 위 사진은 이미 두 그릇 째 반 이상 먹은 거다. 할머니 음식이 맛있어서 한 그릇 정도는 쑥쑥 넘어가긴 한다. 그새 양이 늘었는지 이제 한 그릇 정도는 딱히 용량초과도 아닌 것 같아...

 

 


 

   전날은 사실 블로그 쓸 생각이 없어서 핸드폰으로 대-충 찍었는데, 할머니의 진수성찬을 잊을 수 없어서 짧게나마 남겨보았고, 다음날의 사진이 훨씬 많이 남아서 이어서 써본다.

 

전자렌지로 고구마를 쪘다
처음 해본 것 치고는 잘 나온 것 같다

  앙둥이가 가져와준 고구마 중 마지막 두 덩이. 6개 중 3개는 내가 먹고 1개는 앙둥이가 먹고 2개는 메리 주려고 남겨놨다. (내가 좀 덜 먹었으면 메리 더 줄 수도 있었는데.. 고구마 빠스가 그렇게 먹어보고 싶었네?.. 미안하다 메리야)

 

 

고구마 냄새를 맡은 메리
냠냠쩝쩝

  다행히 고구마를 아주 잘 먹는다. 겨울에 강아지들이 고구마 많이 먹고 그렇게 뚠뚠해진다는데ㅎㅎ 뚠뚠해질 만큼 많진 않아서 미안... 나머지는 이따가 산책 후에 또 먹자.

 

 

인간의 식사도 준비해본다. 앙둥이가 받아온 가래떡으로 소떡소떡 만들기.
어묵도 들어가니 소떡어라고 해야되나?
소시지는 닭가슴살 소시지로.. 어떻게 다 먹나 했는데 이렇게 먹네

내 마음대로 만들어 본 소떡..어떡..
백 선생님은 케찹이 핵심재료라고 하셨는데, 없으니 그냥 매콤달달한 소스로 만들어 먹으려고
튀긴 소떡과 어떡은 바로 소스팬으로 옮겨서 묻히기

  기름을 꽤 자작하게 넣고 겉면을 튀기듯이 했는데 소시지가 퍽퍽 터지고 기름이 사방에+나한테 튀어서 애먹었다. 백 선생님이 소시지에 칼집 꼭 넣어주라고 했는데 멋대로 생략하고 대참사 일어날 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읍시다...

 

 

소스까지 묻혀서 완성
어떡어떡

  케찹 빠진 소스도 꽤 먹을 만했다. 어렸을 때 먹었던 떡꼬치 맛 같기도 하고? 양이 얼마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밀도 높은 탄수화물(=떡)이 있어서인지 조금만 먹어도 꽤 배가 불렀다. 사실 이건 간식이고 식사는 또 따로 하려고 했는데, 일단 이걸로 마무리. 이웃분의 가래떡 덕분에 또 든든하게 한끼 해결했네. 덕분에 제가 이곳 생활을 연명해갑니다.

 

 

산책타임!
요즘 메리는 가고 싶은 곳이 늘었다

  걸으면서도 어딘가를 보며 낑낑대는 메리. 하지만 거긴 대부분 길이 안 난 산비탈이거나 이웃집 앞마당이라 갈 수가 없다. 나름 매번 새로운 길 찾아서 가본다곤 하는데, 그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특히나 동네 개들이 있는 곳을 지날 때면 그 친구들한테 메리가 걷는 걸 보여주기도 미안하고, 가고 싶어하는 눈치인데 데려갈 수 없는 메리에게도 미안하다. 그렇다고 그쪽을 안 지나가면 산책이 안 되고, 이거 참 딜레마일세. 그리고 메리는 정작 다른 개들 만나면 피하기 바쁜데, 멀리 있으면 보고 싶고 그런 건가..?

 

 

배추가 꽃처럼 핀 것 같아서 문득 예뻐 보였다
산책 잘 하고 왔으니 또 다시 고구마 타임

  우물거리는 모습이 바보 같고 귀엽네ㅋㅋㅋㅋ 앙둥이에게 사진을 보내주니 "더 가져갈 걸-"이라며 아쉬워한다. 다음에 고구마 많이 들고 또 와 누나!

 

 

굉장히 귀찮은 게 사진에서도 보이는 것 같네
잔가지와 톱질, 익숙하죠?

불 붙이는 모습은 더 익숙할 듯

  사실 이제 대충 기름 보일러 약간과 전기 장판이면 나는 별로 안 추운데, 집을 한 번씩 덥혀줘야 한다고 해서 반은 의무감에 때는 불. 시골은 다 이렇게 때는 줄 알았는데, 막상 둘러보면 굴뚝에 연기나는 집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내가 못 본 건가. 그동안 나만 열심히 불 땐 거 같고 그러네.

 

 

옷에 밴 불냄새도 뺄 겸 메리랑 저녁 산책

  집이 덥혀지길 기다릴 겸, 다녀오는 동안에도 불씨가 살아있는지 확인할 겸, 늦은 산책을 한 번 더 한다. 새로운 길로 슬슬 걷다가 새로운 이웃분을 만나서 인사를 한다. 이 시골 생활에 반드시 갖춰야 하는 품성이 있다면 인사성이다.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동네 토박이 어르신들의 표정이 밝아지신다.

  일평생을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 서울에서만 거의 살았던 나지만, 다행히 짧은 네덜란드 생활 때 이웃과 인사하는 것을 배웠다. 나의 동네가 아니라서 오히려 이방인으로서 지내는 동안이나마 동네에 동화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도 비슷한 마음이다. 이곳에서 묘하게 자꾸 떠오르는 그곳의 생활.

  정작 서울 가면 다시 온 세상 사람들을 피하며 살기 바쁘겠지.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기를 바라겠지. 참 희한해. 메트로폴리탄에서 사는 자에겐 어쩔 수 없는 무정함 같은 게 장착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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