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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진일기

리틀 포레스트는 아닌 그냥 시골 생활기 11

by Heigraphy 202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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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부터 손님이 오는 날. 혼자서 찾아오기 힘든 지역이니만큼 기차역까지 마중을 나가기로 한다. 서울에서 10시쯤 출발을 할 거라는데 나도 10시에 출발한다. ...? 어떻게 시도(市道) 간을 이동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에 출발하냐며 황당해하던 친구ㅋㅋㅋㅋㅋ 왜냐하면 나는 걸어서 갈 것이기 때문이지. 서울에서부터 지하철+기차 타고 오는 시간이 시골집에서 기차역까지 걸어가는 시간과 비슷해^_^

 

구름이 좀 꼈지만 오늘도 날이 참 좋다

  시내로 나가는 길이 여러가지가 있다고 해서, 오늘은 지난 번과 다른 길로 걸어가본다. 비포장도로가 한동안 이어지고 약간은 언덕길이 더 높으며 주변에 논밭이 더 많이 보인다. 이쪽 동네도 우리 동네 못지 않게 한적한 곳인 것 같다.

 

 

전날 눈이 왔나보다

  눈이 많이 쌓인 건 아닌데 미끄러지기 딱 좋을(?) 정도로 묻어 있어서 조심조심 걷게 되었다. 예정보다 조금 늦게 나와서 더 빠릿하게 걸어야 하는데 이러다 늦는 거 아닌가 싶었다. 친구에게 여기 어제 눈이 왔나보다고 사진을 보내려는데 데이터는 물론이고 전화국 신호도 잘 안 터져서 조금 당황했다. 삼촌댁보다 더 시골 같은 곳이 있었나..?

 

 

벼 베인 논

  이미 수확할 건 다 수확되었고 밑둥만 남은 논인데도 주변 갈대인지 억새인지와 어우러져 색이 참 예쁘다. 가을의 색으로 물든 자연과 해가 만나서 생기는 황금빛이 너무 좋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더더욱 고흐의 그림이 다시 보고 싶다.

 

 

수확 전의 배추밭인 듯

  우리 삼촌 밭의 배추보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배추밭은 처음 본다. 이곳만 초록이 진하게 남아있으니 눈길을 끈다. 이제 겨울로 접어드는데도 이렇게나 생생해 보이다니, 밭에 심어진 배추의 생명력은 강하구나.

 

 

드디어 등장한 인도

  포장도로와 거의 비슷하게 인도가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비포장도로로 오래 걸어서 그런지 저번보다도 인도가 더 반갑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길로 걸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기차역 도착

  조금 늦게 출발해서 눈길을 걸어오느라 속도도 더뎌서 늦을지도 모르겠다고 친구에게 얘기를 했는데, 생각보다 내 걸음은 빨랐다. 다른 것보다도 친구를 기다리게 할까봐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친구보다 딱 10분 정도 먼저 도착해서 대합실에서 몸을 녹이며 기다렸다. 2박3일짜리 일정인데도 집에서 해먹을 것들을 서울에서부터 바리바리 싸오느라 짐을 한가득 들고 나타났던 앙둥이ㅋㅋㅋㅋ 너를 이곳에서 볼 줄이야. 반갑다!

 

 

햇볕에 몸을 녹이던 길냥이

  기차역에서부터 시내까지는 또 거리가 조금 있기 때문에 걸어가야 한다. 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시간대가 맞는 것이 없고 환승을 해야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 불편해보인다(...) 30분 정도 걸린다는 걸 미리 양해를 구하고 걸어본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가 귀여워 잠시 눈길을 주니 우리를 쳐다보며 '야옹-'하고 운다. 그렇다고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던 녀석. 그래, 이 정도 거리감이 좋다. 🐱

 

 

영주의 명물 랜떡을 맛보여줬다

  한 번 먹은 뒤로 자꾸 생각나는 맛이라 친구에게도 꼭 한 번 맛보여주고 싶었는데, 친구는 생각보다 너무 매워서 고생을 했다. 내가 맵다는 말을 안 했던가..? 그래도 가래떡이 식감이 좋고, 이렇게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서서 뭔가를 먹어보는 게 오랜만이라며 반가워했다.

 

 

카페 하망주택

  걸어오느라 수고했으니 카페에 가서 몸을 녹이며 음료를 한 잔 한다. 아니 사실 이곳에 가려고 여기까지 걸어온 셈이다. 밖에서 본 외관이 상당히 감각적이라 와보고 싶었는데, 내부도 레트로풍에 꽤나 힙하고 무엇보다도 소품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살아있어서 분위기가 참 좋았다. 이렇게 느낌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있자니 영주가 아니라 그냥 서울 연남동쯤에서 만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커피를 다 마신 후 시내 구경을 더 하고 싶었지만, 마지막 버스 시간을 맞추자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조금은 서둘러 이동했다. 가까운 듯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목적지를 다 들렀다가 버스정류장에 가려면 생각보다 촉박하다.

 

 

지난 번에 못 갔던 선비골 오백빵집 드디어 갔다
친구가 온 김에 오랜만에 치킨도 먹어봐야지!

  빵집, 치킨집, 시장, 마트 등등을 싹 돌고 간신히 시간 맞춰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원래 가려던 마트가 문을 닫아서 위 치킨집 사장님들께 근처에 마트가 어디있는지 여쭤봤는데, 꽤나 큰 마트가 도로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지난 번부터 큰 마트 가려면 기차역 지나서 홈플러스까지 가야하나 엄청 고민했네. 이날도 진작 알았으면 큰 마트에서만 빠르고 깔끔하게 장볼 수 있었을 텐데.

  이 와중에 이곳 태극당이 유명해서 지나가는 길에 구경이나 해보자고 들어가보려 했는데, 너나 나나 들어가면 구경만 하고 나오는 건 불가능이고 들어가면 사야 돼서 안 된다고 나를 적극 만류하던 앙둥이ㅋㅋㅋㅋ 우린 우리를 너무 잘 아네.

 

 

  버스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점점 한적해지고 논밭뷰가 많아지니 앙둥이가 새삼 신기해했다. 길에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며 어떻게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할 수가 있냐고. 해질녘쯤 들어와서 시골의 하늘을 보곤 너무 예쁘다고 감탄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마침내 집에 도착해서 메리랑도 인사하고 함께 산책을 한다. 메리랑 만나려면 조금 지저분해져도 되는 옷을 입고 오랬더니 그 말에 충실했던 앙둥이.

 

 

선비골 오백빵집에서 산 빵들. 모니빵으로 샌드위치 해 먹고, 밤빵과 찹쌀떡은 누구 드릴 거다.
서울바베큐치킨 양념바베큐&똥집 후라이드
맥주를 마시지 않을 수 없지

  나도 많이 걸었고, 앙둥이도 먼길 오느라 고생해서 오늘은 요리 패스! 마지막에 마트에서 굉장히 급하게 장을 봐서 사실 이것저것 빼먹었지만 맥주는 기어이 챙겼다. 서울에서 손님이 오는데 더더욱 빼놓을 수 없지. 서울엔 없는 치킨집에서 사다 먹은 치킨은 매우 맛있었고, 오랜만에 먹은 닭똥집이 특히 별미였다. 맥주가 쭉쭉 들어가는 맛.

  그나저나 앙둥이는 이 식탁 블로그에서 많이 봤다며 반갑다고 한다. 주방과, 도마 등등 다 너무 익숙하고, 여기저기 카메라랑 삼각대가 서있으니 자기가 무슨 유튜버의 삶에 들어와있는 것 같다고 한다ㅋㅋㅋㅋㅋㅋ 즐겨보던 유튜버 만난 것 같다고 본인이 성덕이라고 하는 앙둥이 덕분에 빵 터졌네.

 

 

앙둥이가 해준 고구마 맛탕..이 아니라 고구마 튀김?

  해야할 일이 있어서 잠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마무리 후 방에서 나와봤는데 앙둥이가 맛탕을 만들고 있었다. 아직 미완성인데 갑자기 가스불이 꺼져서 안 나온다며 당황해하던 앙둥이. 내가 일을 하는 중이라 물어보진 못하고 혼자 고군분투 한 모양인데, 시간이 너무 늦으면 가스불이 안 나오도록 해두신 건가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고 한다ㅋㅋㅋㅋ

  그런 건 아니고 여긴 (당연한 얘기겠지만) 도시가스가 없고 LPG 가스를 사용하는데, 그걸 다 쓴 것일 뿐. 서울에서 가스량이 얼마나 남았을까 걱정하며 가스가 안 나오는 걸 상상이나 해봤나. 뭐 하나 당연한 게 없는 시골의 삶. 다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오늘은 해결을 못 하겠으니 고구마는 일단 그대로 먹자고 한다.

  그래도 다 익은 뒤에 꺼져서 다행이다. 고구마튀김 각자 올리고당에 찍어 먹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러브 액츄얼리

  벌써 12월이고, 카페만 가도 캐롤이 나온다. 괜히 크리스마스 때문에 들뜨는 이런 시즌에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한 번 봐줘야지! 

  벌써 몇 번째 보는 것 같은데, 옴니버스로 워낙 많은 이야기들을 보여주다보니 볼 때마다 이게 이런 내용이었나 싶은 놀라운 커플들의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에서 나의 최애 캐릭터는 단연 샘(토마스 생스터)이다. 애기 같은 얼굴로 사랑에 빠진 끔찍한 고통보다 나쁜 게 있냐니, 명대사야 아주ㅎㅎ 영화처럼 사랑이 넘치는 크리스마스 보낼 수 있으면 좋겠네.

  벌써 18년 전 영화이고, 지금은 세계적인 톱스타가 된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낯익은 등장인물들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던 것은 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벌써 4시가 다 되었다. 야행성 둘이 만나니 이것도 시너지가 나네? 혼자 볼 뻔한 영화도 둘이 보니 더 재미있는 느낌이다. 서울에서부터 먼길 와준 앙둥이에게 감사를. 교통 불편한 곳에서 차가 없으니 어디 데리고 다녀주지도 못하는데, 집에서 맛있는 거 먹고 바깥 경치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고 해줘서 더 고맙다. 있는 동안만큼은 너도 시골의 삶에 충실해져보기를 바라.

 

 

오늘의 걷기 기록

  오늘은 지난 번 보다도 더 걸어서 한강 15km 걷기 기록을 깰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쉽게도 실패다. 이거 뭐 시(市) 하나 정도는 이동을 해야 채울 수 있으려나? 그래도 오늘도 몸이 개운해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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