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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진일기

리틀 포레스트는 아닌 그냥 시골 생활기 08

by Heigraphy 2021.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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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겐 아직 한밤중이었던 시간, 9시 반쯤 집 전화가 울렸다. 잠결에 우리집도 아닌데 받아도 되나 싶다가,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알 것 같아서 받았다. "아직도 자나? 밥 먹으러 와!" 전날 아침밥 먹으러 오라던 건너집 할머니의 전화였다. "지금 깨긴 했는데 죄송하지만 점심 때 가도 될까요?" 비몽사몽 양해를 구하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밤새 글 쓰느라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죄송해요..

 

오늘도 누가 사료를 넣어주고 간 것 같다

  그래봤자 두 시간이 안 되게 좀 더 눈을 붙였다가 나갈 채비를 한다. 밖에 나오면 늘 메리의 상태부터 확인하는데 지난날 이후에도 누가 자꾸 사료를 넣어주고 가시는 것 같다. 문 뒤에 사람 있는데 누가.. 왜..? 메리 굶어 보이나요..?

 

 

휴식 중인 소들

  가까이만 가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정말 귀엽다. 소가 엎드린 거, 자는 건 또 처음 봤네.

 

 

할머니댁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집 마당을 지키는 조랭이떡들이 짖자 할머니께서 미리부터 문을 열고 나를 마중하신다. 점심 상은 벌써부터 차리고 계셨던 모양이다. 어제의 메뉴가 입맛에 안 맞았을지 걱정하시며 계란찜에 깻잎무침에 이것저것 신경쓰신 메뉴들이 더 늘어났다. 오늘은 밥 조금만 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솥에 있는 밥 다 먹어야 한다며 오늘도 한 대접 가득 퍼주신다. 용량 초과여도 주시면 또 다 먹는 나ㅎㅎ

  식사 후에는 커피를 들고 따뜻한 아랫목으로 가자며 데려가셔서 TV를 켜셨는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했던 유머 1번지가 나왔다. 어떻게 이 방송이 지금 나오지..? 아무리 케이블이라고 해도 거의 3-40년 전 방송을 재방송해준다고..? 서울에선 이런 채널 못 봤는데.. 보다 보니 희극인을 왜 희극인이라고 부르는지 이제야 알겠다. 그 시절의 개그는 정말 다 희극(戱劇)이었구나.

  내일도 아침 먹으러 오라는 할머니 말씀에, 할머니 너무 번거로우실 것 같아서 이제 식사는 괜찮다고, 다음엔 그냥 놀러 오겠다고 말씀드리며 집을 나온다. 사실 저도 집에 먹을 게 많고 찍어야 할 사진이 많아서요..(?)

 

 

굿보이 메리!

  할머니 댁 다녀오느라 오늘은 오후 산책. 이젠 내가 나오면 산책을 간다는 걸 아는지 전보다 더 좋아서 날뛰는 것 같다. 주말이라 그런지 동네에 왠지 사람이 더 많이 보이는데, 보는 사람마다 멈춰 서서 지내는 건 괜찮은지 안부를 한 마디씩 묻고 가신다. 심지어 차로 지나가시다가 멈춰서 창문 내리고 안부를 물으시니 무슨 동네 슈퍼스타가 된 것 같다. 메리랑 걸어서 더 눈에 띄는 것 같기도 하고.

 

 

소와 마주한 메리
겁쟁이 메리는 외면했다

  소는 어김없이 '저 녀석들은 뭔가' 하는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메리는 관심이 없는 건지 겁이 나는 건지 고개를 돌린다. 요 며칠 지켜본 사람으로서 후자에 한 표 던진다.

 

 

드디어 아아!

  날이 좀 추웠지만 걷고 오니 갈증이 나서 오랜만에 아이스 한 잔 마셨다. 얼음 트레이를 사 오길 정말 잘했다.

 

 

이 그림도 이제는 지겨울 듯... 오늘은 불 때는 날
잔가지가 모자라 톱질도 해본다

  해가 지기 전에 불을 때야 수월할 것 같아서 더 늦기 전에 나왔다. 사실 집에 냉기가 한가득인데 낮엔 좀 덜 춥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가 큰맘 먹고(?) 나왔다. 지난날의 3시간 불 붙이기 악몽이 떠올라서 이젠 나무로 불 때는 거 조금 두렵다.

 

 

붙었었는데
안 붙었었습니다

  이날도.. 불붙은 줄 알고 들어갔는데 온도가 안 올라서 다시 와보니 꺼져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서 밖도 안도 잘 안 보여서 한 1.5배로 애먹은 것 같다. 삼촌은 헤드라이트를 쓰셨던 것 같은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서 한 손엔 휴대폰 플래시, 한손엔 토치 들고 열일 중...

 

 

불씨님 제발 살아남아주세요

  정리 다 하고 들어왔는데 불 안 붙어서 다시 나갈 때만큼 힘이 빠지는 경우도 없는 것 같다. 차라리 시간이 비슷하게 걸리더라도 한 번에 붙는 게 훨씬 좋다. 이날도 불 붙이는데 3시간 걸렸고, 무엇보다 오후 느지막이 붙이러 나가서 다 붙이고 나니까 이미 깜깜해진 저녁이 다 되어서 계획들도 망치고 하루가 너무 아까웠다. 거기다가 온기가 채워지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집은 여전히 추운 것도 좀 서러웠다(...) 도시의 편리함 아직 그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날은 보일러 때문에 너무너무 그립더라고. 경험도 한두 번이고 이제 효율을 좀 찾고 싶은데 아직도 헤매고 있으니. 원래 일주일 정도 머물다 가려고 했고 오늘이 딱 그즈음되는 날인데, 이제 슬슬 서울에 갈 시간인가 싶었다. 연락 오는 친구들에게 이제 돌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며 한탄을 그렇게 해댔다.

 

 

계획 변경, 메뉴 변경! 오늘은 뚝배기에 국물 요리다

  며칠 전부터 참치쌈장을 만들어 먹고 싶었는데 오늘도 못 먹겠다. 너무 바들바들 떨고 들어와서 국물요리를 먹어야겠거든. 뚝배기 김치찌개를 끓일 거다.

 

 

시장에서 사온 국거리 돼지고기부터 볶고
중간과정이 많이 생략되었지만 양념과 채소 넣고 김치도 넣어준다
보글보글 끓이다가 고명용 파까지 올려주면
어느새 완성!

다른 반찬도 필요없다

  오늘도 김치찌개 하나로 밥 한 그릇 뚝딱.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좀 살 것 같았다. 엄마는 전화하면 늘 밥은 잘 먹고 있냐고 물어보시는데, 너무 잘 먹어서 탈이지요. 이 블로그 보시면 깜짝 놀라시겠다. 오히려 난 늘 이렇게 요리가 하고 싶었던 걸.

 

 

데자뷰..?

  지난 일요일과 같은 풍경ㅎㅎ 맥주는 추워서 안 마시려고 했는데 방이 조금씩 덥혀지면서 오늘 하루의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결국 오픈.

  사실 시골 오면서 뉴스도 더 안 보고 완전 세상과 동 떨어진 것처럼 살고 있는데, 그나마 슈카형 방송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고 있다. 초반엔 3의 3의 3의 3의 3승 같은 수학 얘기를 해서 조금 집중도가 떨어졌지만(...) 오미크론이라는 변이 바이러스가 나왔다는 소식을 슈카월드 보고 알았으면 말 다했지. 워낙 청정한 지역이다 보니 이 동네 안에만 있다 보면 코로나가 딴 세상 얘기 같다. 서울 가면 또 세상 시끄러운 이야기들만 들리며 살게 되려나. 그래도 이젠 좀 가고 싶은 마음 반, 아직은 남아있고 싶은 마음 반,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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