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이다. 앙둥이가 다녀간 뒤로 이 시골 생활에 뭔가 더 의욕이 없다. 정확히는 그전만큼 부지런히 사진찍고 글쓰고 뭔가를 남기는 데에 의욕이 없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그 외에는 사실 다 살자고 하는 본능적인 행위에 가까워서 먹고, 먹이는 일에는 변함이 없는데.
집에 있던 물을 다 마셨다. 2주에 6병이라니 나 생각보다 물 많이 안 마시는구나. 배송시키면 그래도 3-4일이면 온다고 해서 앙둥이 오기 전에, 아니면 적어도 와있는 동안엔 오겠지 했는데 앙둥이가 집에 가고 나서야 덩그러니 왔다. 다행히 둘이서 물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좀 더 여유를 두고 시켜야겠다.
이날은 카메라는 들지도 않았고, 낮에 뭐 해먹었는지 핸드폰으로도 사진을 안 찍었다. 안 남겨놓으니 나도 뭘 먹었는지 기억이 전혀 안 나네. 아마 앙둥이 있을 때 손크게 만들어서 남은 음식들 먹었겠지?
조랭이떡의 심장어택을 잊지 못해 괜히 또 이쪽으로 걸어와보다가 할머니랑 조랭이떡이랑 딱 만났다. 할머니께선 다른 이웃분들을 배웅해주시는 길이었다. 그리곤 내게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며 집으로 불러주신다. 나는 정말 커피 한 잔만 하려고 들어갔지.
메리를 묶어두느라 할머니보다 조금 늦게 들어왔더니, 이미 쌀을 안치시고 계셨다. 그 전에는 밥 먹고 가라고 하시면 내가 한사코 거절을 하니, 이번엔 저녁 시간이기도 하겠다, 당신께서도 식사를 하셔야 하니 내 몫까지 자연스럽게 착착착 준비하신 저녁 상차림. 오늘만큼은 나도 맛있게 먹는다.
사실 나는 할머니께 늘 밥 조금만 주시라고 하는데, "그래 조금만 먹어라-" 하시곤 그릇 한가득 주시고,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더 먹으라며 두 주걱은 더 퍼주신다. 갓 지은 밥이라 지금 딱 맛있다며. 그러면 또 거절하지 못하고 싹싹 다 긁어먹고 온다. 위 사진은 이미 두 그릇 째 반 이상 먹은 거다. 할머니 음식이 맛있어서 한 그릇 정도는 쑥쑥 넘어가긴 한다. 그새 양이 늘었는지 이제 한 그릇 정도는 딱히 용량초과도 아닌 것 같아...
전날은 사실 블로그 쓸 생각이 없어서 핸드폰으로 대-충 찍었는데, 할머니의 진수성찬을 잊을 수 없어서 짧게나마 남겨보았고, 다음날의 사진이 훨씬 많이 남아서 이어서 써본다.
앙둥이가 가져와준 고구마 중 마지막 두 덩이. 6개 중 3개는 내가 먹고 1개는 앙둥이가 먹고 2개는 메리 주려고 남겨놨다. (내가 좀 덜 먹었으면 메리 더 줄 수도 있었는데.. 고구마 빠스가 그렇게 먹어보고 싶었네?.. 미안하다 메리야)
다행히 고구마를 아주 잘 먹는다. 겨울에 강아지들이 고구마 많이 먹고 그렇게 뚠뚠해진다는데ㅎㅎ 뚠뚠해질 만큼 많진 않아서 미안... 나머지는 이따가 산책 후에 또 먹자.
기름을 꽤 자작하게 넣고 겉면을 튀기듯이 했는데 소시지가 퍽퍽 터지고 기름이 사방에+나한테 튀어서 애먹었다. 백 선생님이 소시지에 칼집 꼭 넣어주라고 했는데 멋대로 생략하고 대참사 일어날 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읍시다...
케찹 빠진 소스도 꽤 먹을 만했다. 어렸을 때 먹었던 떡꼬치 맛 같기도 하고? 양이 얼마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밀도 높은 탄수화물(=떡)이 있어서인지 조금만 먹어도 꽤 배가 불렀다. 사실 이건 간식이고 식사는 또 따로 하려고 했는데, 일단 이걸로 마무리. 이웃분의 가래떡 덕분에 또 든든하게 한끼 해결했네. 덕분에 제가 이곳 생활을 연명해갑니다.
걸으면서도 어딘가를 보며 낑낑대는 메리. 하지만 거긴 대부분 길이 안 난 산비탈이거나 이웃집 앞마당이라 갈 수가 없다. 나름 매번 새로운 길 찾아서 가본다곤 하는데, 그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특히나 동네 개들이 있는 곳을 지날 때면 그 친구들한테 메리가 걷는 걸 보여주기도 미안하고, 가고 싶어하는 눈치인데 데려갈 수 없는 메리에게도 미안하다. 그렇다고 그쪽을 안 지나가면 산책이 안 되고, 이거 참 딜레마일세. 그리고 메리는 정작 다른 개들 만나면 피하기 바쁜데, 멀리 있으면 보고 싶고 그런 건가..?
우물거리는 모습이 바보 같고 귀엽네ㅋㅋㅋㅋ 앙둥이에게 사진을 보내주니 "더 가져갈 걸-"이라며 아쉬워한다. 다음에 고구마 많이 들고 또 와 누나!
사실 이제 대충 기름 보일러 약간과 전기 장판이면 나는 별로 안 추운데, 집을 한 번씩 덥혀줘야 한다고 해서 반은 의무감에 때는 불. 시골은 다 이렇게 때는 줄 알았는데, 막상 둘러보면 굴뚝에 연기나는 집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내가 못 본 건가. 그동안 나만 열심히 불 땐 거 같고 그러네.
집이 덥혀지길 기다릴 겸, 다녀오는 동안에도 불씨가 살아있는지 확인할 겸, 늦은 산책을 한 번 더 한다. 새로운 길로 슬슬 걷다가 새로운 이웃분을 만나서 인사를 한다. 이 시골 생활에 반드시 갖춰야 하는 품성이 있다면 인사성이다.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동네 토박이 어르신들의 표정이 밝아지신다.
일평생을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 서울에서만 거의 살았던 나지만, 다행히 짧은 네덜란드 생활 때 이웃과 인사하는 것을 배웠다. 나의 동네가 아니라서 오히려 이방인으로서 지내는 동안이나마 동네에 동화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도 비슷한 마음이다. 이곳에서 묘하게 자꾸 떠오르는 그곳의 생활.
정작 서울 가면 다시 온 세상 사람들을 피하며 살기 바쁘겠지.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기를 바라겠지. 참 희한해. 메트로폴리탄에서 사는 자에겐 어쩔 수 없는 무정함 같은 게 장착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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