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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y Heigraphy
시각적 기록/사색하는 연습장

뭐하시는(던) 분이세요?

by Heigraphy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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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시는(던) 분이세요?”
"무슨 일 하셨어요?"


  어디선가 일을 시작하면 꼭 듣는 질문이면서, 들을 때마다 대답하기가 퍽 난감한 질문. 내 나이쯤 되면 이전에 무슨 일을 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나는 늘 뭔가를 하며 바쁘게 살았지. 그런데 이 질문은 무엇으로 돈을 벌었냐는 뜻일까? 무엇으로 나의 시간을 채웠냐는 뜻일까?
  일정한 기간 동안 누군가에게 꾸준히 지식을 전파했으면서도 교육자라고 하긴 어렵고, 수 년째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벌써 수백 편의 데이터가 쌓였지만 작가라고 하기도 어렵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사진전도 열었지만 사진작가라 하기도 어렵다. 그 외에 큰 연관성 없는 9 to 6도 이것저것 해봤지. 없다기엔 없지 않고 있다기엔 깊지 않다. 그게 늘 나의 고민이자 콤플렉스 같은 거였다.
  한 우물을 깊게 판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 좀 작고 초라해지는 기분이다. 혹은 앞으로 한 우물을 깊게 팔 준비가 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 나 스스로가 어떤 우물을 파야하는지 모른 채로 얕은 웅덩이들에 발바닥만 적신 채 오래 방황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길이 확고하고 특히 그 분야가 겹치는 사람 앞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더욱 없어진다.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다가도, 프로페셔널을 논하면 스스로를 한껏 부족하다고 낮추며 피하기에 바쁘다. 겸손 정도가 아니라, 정말 나 자신을 한낱 보잘 것 없는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게 요 며칠 내가 스스로에 대해서 느끼고 놀랐던 부분. 그래도 내 글과 사진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에게 실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울 정도로 내가 나를 방어하기에 급급해 보였다. 웃긴 건 공격하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지.
  돈 버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따로 하는 생활을 꽤 오랫동안 해온 듯하다. 그래서인지 매번 돈 버는 일은 하루에 얼만큼의 시간을 쓰든, 얼마를 벌어다주건 ‘본업’이라는 생각보다는 늘 ‘파트타임잡’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최소한의 생계유지와 좋아하는 일을 더 편안하고 재미있게 하기 위한 수단 같은 것. 뭐 물론 엄청난 돈을 받아본 적이 없고 매번 고만고만한 돈만 받아서 ‘얼마를 벌어다주건’ 같이 쿨한 척 이야기 하는 걸 수도 있지만.
  올해는, 평소에 자연스럽게 나의 시간을 가득 채운 일들을 직업적으로까지 연결시켜보고자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현재진행중이다. '뭐하시는 분'인지, 때로는 접점조차 없어보이는 이 일들을 어떻게 풀어서 다 설명해야 하지? 이걸 내가 해온 ‘일’이라고 설명하는 게 맞긴 한가? 백문이불여일견, 올해가 지날 때쯤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문득 내가 ‘나를 위한 기록’은 별로 안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곳에 있는 모든 기록이 다 내가 좋아서 쓰고 남긴 것들이지만, 정작 나를 표현하는 기록은 별로 없었다. 사진전 이력 한 줄을 증명하기 위해 외장하드를 수없이 뒤져서야 기어코 완성했다. 이 수백 편의 기록 중에 내 이름을 걸고 한 사진전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한 게시물이 하나도 없었다니.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공간에 뭔가를 계속 쏟아내면서, 정작 나라는 사람 자체는 눈에 안 띄고 싶었던 이상한 마음.
  그나마 비교적 최근에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 점은, 대나무숲처럼 써오던 블로그를 지인들에게 하나둘 공개하면서 오히려 좀 더 자유롭고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거 하나 밝히고 즐기기까지가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다른 사람들은 더 알리지 못해서, 더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워하던데. 나는 참 현대사회에 최적화된 인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해서 앞으로는 나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인색하지 말자 다짐한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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