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고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건 몰라도 특정 공간에서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하려면 적어도 지역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언젠가부터 공간의 지속 가능성, 그것의 답이 로컬에 있음에 집착하는 이유는, 살면서 뿌리가 약해 자본에 의해 쉽게 사라지는 공간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홍대-합정-상수 일대를 뻔질나게 돌아다닐 때, 그렇게 숱하게 다닌 공연장 주변으로 맘 붙일 공간이 참 없었다. 매번 가는 공연장은 비슷한데 그 앞뒤 시간에 다닐 식당, 카페, 펍 하나 꾸준히 갈 만한 곳이 없었다. 조금 마음에 든다 싶으면 얼마 후에 폐업을 하든 이사를 가든 꼭 무슨 소식이 들려왔다. 글자로만 보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직접 체감하며 살았다.
비단 요식업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문화의 지속 가능성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흔들리지 않는 문화의 '뿌리'를 가진 지역이라는 게 있을까?
어떤 공간,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문화를 만들어가려면 결국 마을에 애정을 가진 지역 공동체의 공감과 지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곳의 커뮤니티를 이루는 사람들이 배제된 채 새로운 문화가 자리 잡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사실 해당 지역에서 주체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엔 '문화를 만든다'기보단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살면서 고작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의 횟수밖에 방문하지 못했는데,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공간들이 몇 있다. 태국 치앙마이의 The North Gate Jazz Co-Op.(노스게이트 재즈바)과 네덜란드 알크마르의 Stadskantine Alkmaar(알크마르 도시 식당), 그리고 스키담의 Stichting de Spellenfabriek(게임 공장)이다. 세 공간의 공통점은 지역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지역 사람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누구나 부담 없이 와서 즐기다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노스게이트 재즈바에는 지역을 넘어서 전 세계의 음악가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인다. 음악으로 하나 되는 세계인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이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공간일 만큼, '로컬'들이 꾸리고 이어가는 공간의 매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쉽게 흔들리거나 사라지지 않는 힘이 분명히 있다.
알크마르의 Stadskantine는 너무 노후된 건물에 자리 잡고 있어, 시에서 건물 철거 명령이 내려지는 바람에 잠시간 문을 닫기도 했는데, 결국 알크마르 내 다른 곳에 재오픈을 했다.
살면서 꼭 한 번은 타이밍 맞춰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영국의 에든버러와 미국 텍사스주의 오스틴이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올해로 벌써 75주년을 맞는 축제이며,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는 35주년을 맞는 축제이자 콘퍼런스이다. 두 축제 모두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가 되었다. 더불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축제가 되기도 했다. 에든버러는 일 년 중 이 이벤트 하나로 먹고 산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음악인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한다길래, 이번 기회에 나의 이런 케케묵은 작은 이상을 조금이나마 실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꽤나 설렜다. 근데 구성원의 생각은 내 생각과 좀 다르더라고. 오히려 이 동네의 바이브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길 원하더라고. 그래서 또 접었다. 그냥 내가 동네 어딘가 라이브 카페 같은 거 하나 차리는 게 제일 빠를 수도 있겠다 싶다.
로컬에 기반한 뿌리 깊고 튼튼한 문화를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
태국 방콕/치앙마이 여행 :: 40 노스게이트 재즈바와 카우보이 족발덮밥
네덜란드 워홀일기 :: 5/19-20 아지트를 삼다! 알크마르 Stadskantine(+알크마르 야경)
네덜란드 워홀일기 :: 6/3-4 아지트에선 맥주가 끝없이 들어가지/로테르담에 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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