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by Heigraphy
시각적 기록/사색하는 연습장

잔나비의 세대에 살고 있구나

by Heigraphy 2022. 5. 21.
반응형


1.

유튜브 빠더너스(BDNS) 채널의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EP13 최정훈] 편을 봤다.
마냥 재미있는 사람인 줄만 알았던 문상훈 님은 생각보다 훨씬 서정적이고 감수성 짙고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영상 초반에 문상훈 님이 최정훈 님에게 쓴 편지가 너무나 뭉클하더라고.

산울림의 시대에 살지 못해서 아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TOY를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어린 것 같아 속상한 적도 많았고요.
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은 전부 옛날 노래들일까 고민하다가 깨달았어요.
아 나는 잔나비의 세대에 살고 있구나.
이게 내 아들에게는 부러움이겠구나.

내 세대를 자랑스럽게 해 준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낭만주의자 최정훈 님께 마음을 담아
2022년 5월 상훈


20여 분 가까이 되는 영상 중 가장 진하게 여운을 남긴 부분.
과장 조금 보태서 편지의 주인공 최정훈 님만큼이나 감명을 받았다고 하고 싶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갈 무렵 정말 많이 들었던 잔나비의 노래들은 그랬지.
그때는 잔나비의 노래만이 나를 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지.
비록 나는 산울림과 TOY를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잔나비의 세대에 살고 있음은 확실한 것 같다.
열병 같은 시간이 조금 지난 뒤로는 손길이 살짝 뜸해졌던 그들의 음악은, 무방비 상태인 내 마음을 또다시 예고 없이 울린다.
잔나비의 세대에 살고 있음에 영광이어라.


2.

시 평론가 데이비드 오어(David Orr)가 보고하기를, 어떤 임의의 X에 대해 '나는 X를 좋아한다'와 '나는 X를 사랑한다'의 구글 검색 결과를 비교해보면, 대체로 '좋아한다(like)'가 '사랑한다(love)'보다 세 배 더 많다고 한다. (중략) 그러나 이상하게도 '시(poetry)'만은 결과가 반대여서 시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두 배 더 많다고 한다. 왜일까? 나로 하여금 좀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바로 그런 기분이 된다.

- 신형철, 「펴내며」,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문학동네시인선 100)』, 2017, p.5


영상에서 최정훈 님에게 시집을 두어 권이나 건네는 문상훈 님의 모습을 보고, 서점에 가서 아주 오랜만에 시집을 들춰봤다.
한참을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시인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좋은 문장을 사랑한다.


3.

서울, 그곳은

문상훈 님의 문장에 여운을 가진 채
[초록을거머쥔우리는]을 들으며 종로구 한복판을 걷다가

서울이 너무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서정적인 도시가 또 있나 생각했다.
삭막해 숨이 막힐 것만 같던 순간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이 도시에 사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하늘을 보며
주변의 작은 것들을 살피며
걸었다.

자동차의 밀도에 고개를 가로젓다가도
도로 끝에 우뚝 서 있는 산을 보면서
이런 풍경을 가진 곳이 또 어디 있나

그렇게 생각했다.

문장과 가사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기 얼마나 쉬운가.
시와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울게 하기 얼마나 쉬운가.

언어와
언어에 담긴 정서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건
얼마나 큰 일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4.
좋은 건 좋다고 표현해야 행복한 사람이라, 조금 더 적어보자면, 요즘은 개그맨들이 참 멋지고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느낀다.
용진호로 시작한 영감의 원천이 어느새 조금씩 확장되는 기분이다.
정말이지 재능이 있는데 열정도 있고 그래서 멋있고 대단하고 천재 같은 사람들.
문상훈 님을 보면서 또 느꼈다.


5.
살면서 카메라로 꼭 담아보고 싶은 장면과 사람들이 내 마음속에 몇 있는데,
'최정훈 님이 공연하는 모습'이 추가되었다.


6.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EP13 최정훈

부디 오래오래 낭만을 가지고 살아주세요.


Copyright ⓒ 2015 Heigraphy All Rights Reserved.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