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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짧여행, 출사

여름, 아빠랑 천축사 템플스테이 02

by Heigraphy 202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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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템플스테이 일정 시작 전에 아빠가 절이나 돌아보자고 하셔서 밖으로 나갔다. 천축사는 사실 절 자체는 작은 편이라 돌아볼 곳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희망의 종

  천축사의 범종. 이곳도 규모가 큰 절이 아니라서 그런지 목어, 운판, 법고 등의 다른 사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범종의 이름을 '희망의 종'이라고 붙인 것이 인상적이다. 전에는 타종 체험도 했었는데 요즘 주변이 공사 중이라 위험해서 타종 체험은 당분간 생략한다고 한다.

 

 

서울 전경

  천축사의 만점짜리 경치. 아까는 조금 지친 상태로 급하게 보고 지나쳤다면 이번에는 여유를 가지고 조금 지긋이 바라본다. 이 뷰 하나만으로도 올라올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나저나 서울에 아파트가 참- 많네. 빼곡하게 들어찬 흰색 빌딩숲이 한편으론 어마무시하다. 어리석은 중생은 '저렇게나 집이 많은데 내 집은 왜 없나' 싶은 생각을, 절에 와서 해봅니다...

 

 

대웅전

  드디어 4시가 되고 템플스테이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가볍게 불교와 절에서의 예법과 예절 정도 알려주시고 사실상 또 쉬는 시간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스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이래저래 따라 하기도 하다 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잘 갔다. 인도에서부터 시작된 불교의 유래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 그게 현시대에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대웅전 내부 사진도 얼마든지 찍어도 된다고 하셔서 불상 사진을 남겼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과거, 현재, 미래를 뜻하는 부처님이라고 한다. 셋 다 같은 부처님인데 왼쪽은 이름을 모르겠고(...) 가운데는 석가모니 부처님, 오른쪽은 미륵 부처님이라고 불리는 듯하다. 

 

 

연등 달린 천장

  절하는 법도 배운 후에는, 방석을 두 개씩 이용하여 대웅전에 잠깐 누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스님께서도 아직 대웅전에 누워보신 적은 없다는데,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에게만 이렇게 특별히 기회를 주시는 모양이다. 바깥의 소리에 집중하려고 창문을 연 채 선풍기도 최소한으로 맞추고, 산 속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생각보다 덥지도 않고 자리도 편안했다. 한 2-30분 정도 누워있었던 것 같은데 얼마나 편안했냐 하면 그 순간 꿀 같은 낮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명상을 위해 이런저런 소리를 틀어주신 듯했지만 처음에 틀어주신 노래만 살짝 듣다가 스르르 잠에 빠져버렸다. 템플스테이를 통틀어 감히 가장 좋았던 시간이라고 말해봅니다. 제가 또 언제 절에 가서 가장 터 좋은 대웅전에서 낮잠을 자보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던 스님 모형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중, 종무소 앞이었나, 탑 위에 조그마하게 올라간 모형이 귀여워서 찍어본 사진. 고개를 계속 끄덕이며 움직이는 모형이었다.

 

 

저녁공양 시간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마자 5시 반부터 시작되는 저녁공양. '산사뷔페'라는 이름답게 음식들이 가짓수도 많고 양도 많은 게 정말 푸짐했다. 제가 또 절밥 좋아하는데요, 야무지게 먹어보겠습니다.

 

 

늘 정량보다 많이

  절에 오면 늘 평소 먹던 양보다도 많이 떠서 먹게 된다. 대부분 채소라서 그런지 양껏 먹어도 속에 크게 부담이 없다. 그러다 보니 배도 조금 빨리 꺼지는 느낌이라, 밤이 길 테니 더 든든하게 먹어두려는 마음도 있다. 사실 일단 너무 맛있어... 시간만 넉넉했으면 진짜 한 접시 더 떠다가 먹었을 수도 있다.

 

 

주지스님 계신 곳에서 본 풍경

  식사 후 저녁 예불은 없는 듯하고, 스님과의 차담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다시 천축사 일대를 돌아다녔다. 천축사에 강아지가 4마리나 있다고 해서 보러 주지스님이 계신 곳까지 올라왔다. 무문관보다도 조금 더 높은 곳이다 보니 역시 눈 앞엔 장관이 펼쳐진다. 그러나 스님 말씀으로는 이곳이 천축사에서 터가 제일 안 좋은 곳이라고 한다.

 

 

아빠

  경치가 가장 좋은 곳에서 내가 찍어드린 아빠와 아빠가 찍어주신 나. 아빠는 웬만한 카메라보다도 당신 핸드폰의 카메라가 훨씬 좋다며 열심히 나를 찍어주셨다. 그러게 사진 비슷하게 좋네. 그래도 나 올초에 새 카메라 산 보람 좀 있으면 좋겠는데😂

 

 

천축사의 강아지들

  아빠랑 내가 올라왔을 땐 이미 다른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어서 다가가기가 조금 쉽지 않았던 녀석들. 진돗개 두 마리와 시바견 두 마리라고 한다. 주지스님 계신 곳에서 이렇게 같이 지내는 모양이다. 귀여워 보이는 이 녀석들의 역할은 밤에 내려오는 멧돼지를 쫓아내는 거라고...ㅎㅎ 밤 9시가 넘으면 멧돼지가 내려와서 이 녀석들을 두 마리씩 순찰 보낸다고 한다.

  정작 스님들께서는 생선류도 일절 드시지 않는데, 이 녀석들에게는 북어포를 주시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스님들과 보살님들 사랑 듬뿍 받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지내길 바라.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
스님과의 차담 시간

  다른 절에서와 다르게 천축사에서는 차담 시간에 스님에게 직접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입소하면서 질문지에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쓰도록 했고, 그걸 차담 시간에 스님이 읽어보시고 답변을 해주시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장점이라면 익명이라서 사람들이 솔직한 질문을 쓸 수 있었던 것 같고, 아쉬운 점이라면 그 덕분에(?) 사람들은 말할 기회가 별로 없고 스님의 일방적인 강연 같은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많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연이나 고민 같은 것을 쓰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같은 류의 질문을 많이 썼던데, 나는 벌써 세 번째 템플스테이라고 은연중에 이미 '스님이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시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첫 템플스테이 이후로 늘 다른 사람들의 질문과 답이 궁금한 나는, 스님이 출가하실 때 스님의 질문은 무엇이었고 지금은 그 답을 찾으셨는지, 스님에 대한 질문을 적었다. 스님의 답변은 "모든 스님이 출가할 때 질문을 가지고 출가하는 것은 아닙니다"였다. 스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삶에 대한 엄청난 철학적 고민이나 큰 뜻을 가지고 출가하셨다기보다, 스님이 되시는 것이 마치 운명인 것처럼 흘러갔고, 그 과정에서 인내하셨고,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는 듯한 이야기를 하셨다. 여태 세 곳의 절에서 세 분의 스님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모든 스님들의 계기가 다 다르다. 어쩌면 사람들의 질문과 답이 생각보다 별거 없다는 H언니의 이야기가 정말로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아마 이날의 질문 중 가장 철학적인 질문을 적으셨는데, 사실상 거의 아빠 질문만으로도 두 시간은 토론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말했다시피 '대화'라기보단 '강연' 같은 시간이라 토론을 하기는 무리였고, 스님은 조금은 간단하게 답변을 하시고 넘어갔다.

 

 

  불교는 기복신앙이 아니며 오히려 자기수행을 하는 종교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 하고, 비우고, 내려놓고, 흘려보내야 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마음을 가지고 등등 좋은 말씀을 정말 많이 해주셨는데, 이걸 현실에 적용시키면 약간은 현실감 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은 점은 좀 아쉬웠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늘 연극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고 인간관계가 어렵습니다. 진짜 제 모습을 보여도 될까요?" 같은 질문이 있었는데, 스스로를 잘 알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와 같은 답변을 해주셔서 조금은 뜬구름 잡는 듯한 답변이 되어버렸다. 너무나 이론적인 답변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여기에는 차마 적을 수 없는, 차담 시간의 피날레 이야기가 있었는데...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여러모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어서 한편으론 기억에 남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장군이를 마주쳤다

  천축사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아는 강아지, 장군이. 차담 시간에도 계속 테이블 아래를 왔다 갔다 하던 장군이었다. 신기하게도(?) 장군이는 이날 많은 참여자들 중 어린 소년을 가장 잘 따르고 잘 어울려서 두 존재의 순수함이 통한 건가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밤이 되면 멧돼지 쫓느라 오히려 바빠질 녀석. 우리의 안전을 잘 부탁해.

 

 

어두워진 천축사와 밝아진 서울

  절에 와서 내가 좋아하는 도시 야경을 볼 수 있을 줄이야. 여러모로 정말 올라오는 보람이 있는 곳.

 

 

고무신

  하루종일 잘 신고 다녔던 고무신. 당연히 일반 운동화보다 바닥이 얇은데도 크게 불편한 점 없이 잘 신고 다녔다. 그러나 절을 벗어나서 산을 따라 산책을 할 거면 고무신은 위험하다며 본인 운동화를 신고 가길 권장하시더라.

 

 

현미과자 야식

  소등시간이 가까워지고 역시나 조금 출출해져서 일일 룸메들과 함께 먹은 야식. 무문관은 3인 1실인 곳이라 처음 만난 두 분과 함께 방을 썼다. 다른 분들은 책이랑 노트, 나는 키보드를 가지고 갔는데 벌써 취침시간이 가까워져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되어 아쉽다는 이야기를 잠깐 나눴다. 천축사 와서 생각보다 뭘 많이 했나?

  나도 나름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이날 대웅전에서부터 꿀 같은 낮잠을 잔 만큼 꽤나 피곤했는지 생각보다 금방 잠들었다. 원래 템플스테이 오면 일찍 잠들었다가 한두 시간 뒤에 깨서는 새벽 타종 때까지 못 자고 한두 시간 눈 겨우 붙였다가 아침공양 하러 가곤 했는데... 이날은 템플스테이 인생 중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가장 꿀잠을 잔 날이었다. 그만큼 피곤했나 싶기도 하고, 그만큼 마음이 편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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