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역시 뒤척이며 깊은 잠은 못 잤지만, 적어도 자다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밤은 아니었다. 9시쯤 잠들어서 자다 깨다 하며 시계를 보니 10시, 12시, 4시쯤 되었다. 4시에는 밖에서 타종이 이루어져서 종소리를 들으며 약간 잠이 깼다. 타종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서 아빠로부터 새벽예불을 가자는 문자가 왔다. 사실 첫 템플스테이 이후로 나는 이제 새벽예불은 안 가는데... 아빠가 보고 싶다고 하시니 일단 대충 채비를 해서 나가본다.
아빠는 타종 후 바로 예불이 있는 줄 아시고 대웅전으로 바로 가셨다는데, 타종 후 새벽 예불까지는 약 1시간 정도의 공백이 있었다. 겨울에는 이 시간이 그냥 공백일 수도 있었겠지만, 여름이라 해가 길어져서 그런지 예불 전 일출을 감상할 수 있었다. 5시 34분에 일출이 있을 예정이고, 새벽 예불도 5시 30분부터이니 10~20분쯤 전에 만나서 일출을 보고 예불을 가자고 했다.
5시 30분에 일출이래서 20분 전쯤 나왔는데 하늘은 이미 꽤 밝아져 있었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는 쪽은 산에 가려서 해가 보이지는 않았고, 아침노을만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가면 왠지 더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약간 욕심이 났단 말이지.
해돋이 감상 후 바로 시작될 새벽 예불과, 예불이 끝난 후 바로 이어질 아침 공양을 위해 분주해 보이는 두 공간이었다. 5시 반부터 예불 시간이라고 하여 해돋이를 대충 보고 대웅전으로 갔는데, 사람들이 아직 해돋이에 여념이 없다는 걸 아셨는지 충분히 감상할 시간을 주신 다음 예불을 드릴 수 있도록 시간을 조금 미룬 듯했다.
해돋이 더 잘 보이는 곳 찾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천축사 이곳저곳을 더 보게 된 뜻밖의 여정. 천축사에도 석굴암이 있는 줄 몰랐다.
대웅전 근처였던 것 같은데, 목어 대신 물고기가 달린 종이 있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면서 자동으로 울리는 건가? 사람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울리는 건가?
대웅전 말고도 예불을 드리는 공간들이 더 있는 듯했다. 어스름한 새벽빛 아래에서 보게 된 전각들.
높은 곳으로 올라와도 여전히 해는 안 보였지만, 아침 노을은 더 진하게 볼 수 있었다. 계절에 따라 해 뜨는 위치가 조금 달라서 보이는 게 조금 다르다는데, 천축사의 여름 아침 하늘엔 이런 뷰가 펼쳐지니 참고하기. (물론 사진적 과장이 조금 있을 수도 있음..😇) 해가 안 보여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아침노을 명소는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이 대웅전 반대쪽에 옹기종기 모여서 계속 일출을 보고 있길래 우리도 자리를 옮겼다. 날이 더 밝으면서 주황빛 하늘은 점점 색을 거두고 벌써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 시간에도 이미 서울 한복판에는 차가 많이 다니고 있더라고. 일요일 아침 5시 반인데.
사람들이 모여서 일출을 보던 곳이 마침 주지스님께서 지나가시는 길목이라, 모여있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데리고 대웅전으로 가셨다. 일출 보느라 예정된 시간보다는 조금 늦게 시작된 아침 예불.
주지스님을 포함하여 스님 세 분 정도가 계셨다. 보살님들과 봉사자분들, 템플스테이 참여자까지 하니 대웅전이 은근히 꽉 찼다. 전날 배운 방법대로 열심히 따라서 절을 해본다. 예불집을 받고도 조금 헤매고 있을 때면, 봉사자분이 여기를 펼치면 된다며 알려주신다. 불경을 세네 개 정도 왼 후에 예불이 끝났던 것 같다. 아빠 덕분에 오랜만에(?) 참여해 본 아침 예불.
아침에는 입맛이 조금 없어서 적게 담은(?) 편. 누룽지가 있길래 밥은 생략했다. 지난 템플스테이 때처럼 밤새 못 잤으면 밤새도록 굶주리느라 아마 많이 먹었겠지. 몇몇 채소는 이곳 텃밭에서 직접 길러서 자급자족하시는 모양이던데, 다 정말 신선하고 맛있었다. 파인애플 같이 맛있는 과일이 나온 것도 좋아.
식당에 물이 없어서 식사 후 종무소에 정수기를 이용하러 갔는데, 주지스님께서 계셨다. 내게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시고 인상을 보시는 듯하시더니 너무 착하다며 조금 독해질 필요가 있다고 하신다. 스님께 인사를 드리면 가끔 그 사람의 기운 같은 것을 파악해서 한 말씀해주시기도 한다고 하셨는데, 내 기운은 착했나 보다(?)ㅎㅎ 첫인상이 참 얌전하고 조용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긴 합니다만 제가 또 보기보다 마이웨이가 있는 사람이라ㅎㅎ 스님 말씀 덕분에 마침내 오픽 자기소개 때 할 말이 정리가 되었다(?) 요건 에필로그에서 계속~
한 보살님께서 천축사 뒤쪽으로 산을 조금만 더 오르면 마당바위라는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보는 경치가 또 끝내준다고 하셔서 아빠랑 등산에 나섰다. 사실 비가 와서 못 갈 뻔 했는데.. 아빠 산책하시는 동안 나는 잠을 더 잤고, 한 30분 눈을 붙였더니 아빠한테 전화가 와서 비가 그쳤으니 올라가자고 하신다. 뭐 하고 있었냐고 하시길래 잤다고 했더니 여기까지 와서 왜 자냐는 우리 아부지... 왜 자긴요 쉬러 왔으니까 쉬는 거죠... 그럴 거면 집에서 쉬지 왜 왔냐는 아부지...😂 아빠가 나보다 체력 더 좋아 증말..
이 등산로도 결코 쉽지 않았다... 점점 가팔라지는 돌산을 15분 정도를 올라가면 된다. 마당바위 가기 참 쉽죠...? 더 놀라웠던 건, 아침 9시쯤 된 시간이었는데 올라가는 사람은 물론 이미 내려오는 사람들까지 꽤 적지 않았다는 것. 세상은 넓고 부지런한 사람은 참 많구나.
목적지까지 다 올라오고 나면 늘 뿌듯함과 보람이 느껴지는 놀라운 도봉산 등산. 잘 보면 이곳에서도 롯데타워가 보이고, 오른쪽에 남산타워도 보인다! 천축사에서 보는 경치보다도 확 트인 느낌이 확실히 있다. 보살님께서 추천해주신 이유가 다 있구나. 누군가 그럼 일출도 마당바위가 더 잘 보이냐고 여쭤봤었는데, 일출은 또 천축사가 더 잘 보인다고 하신다.
봉우리에도 이름이 다 있던데 내게는 일단 그냥.. 봉우리.. 뭔가 비슷한 눈높이에서(?) 보는 것 같아서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이번에도 내가 찍어드린 아빠와 아빠가 찍어주신 나. 찍자마자 자신 있게 카톡으로 사진 보내주시는 모습이 은근 귀여우시다ㅋㅋㅋ 핸드폰 카메라에 자부심 넘치시는 울 아빠🤣 그나저나 나 왜 이렇게 꾸부정 어정쩡해...?
왕복 30분 산 타고 왔다고 벌써 허기가 진다. 전날 밤에 먹고 남은 현미과자와 함께 방에 있는 커피를 마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문관 준비성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템플스테이 소감문을 제출하면 소원을 적을 수 있는 보리수잎을 주신다. 심플하면서도 우리 가족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조금 찡한 아버지의 소원과, 뭘 적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적어본 나의 소원. 나는 나와 내 사람들이 정말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다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지내요.
천축사에서 할 것들은 다 한 것 같아서 조금 일찍 퇴소하여 하산을 하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오도 가도 못하다가 지붕이 있는 종무소 앞 쉼터로 가니 보살님께서 우리를 보시고는 우산 있냐고 물어오신다. 없다고 했더니 흔쾌히 우비를 주시겠다고 한다.
보살님께서 "따님이랑 같이 오니 좋으시죠?" 했더니 아빠가 "평소엔 대화가 별로 없는데 이렇게 오니 좋네요." 하신다. 맞다, 나 평소에 사실 엄청 살가운 딸은 아니긴 한데.. 보살님한테 그렇게 솔직하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네😂 특정이 될 것 같아서 구체적인 멘트들은 안 적고 싶기도 했는데, 아빠와의 추억을 최대한 많이, 자세하게 간직하고 싶어서 굳이 적어봄.
누군가에겐 흔한 일회용 우비 중 하나지만, 이 산중에서는 참 귀한 물건일 텐데 흔쾌히 건네주셔서 정말로 감사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쓰던 것들이 뭐 하나 쉽게 준비된 게 아니겠구나. 하다못해 산을 계속 오르내리는 수고로움이라도 거쳐야 있는 것들일 테니. 스님들과 보살님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와 배려 덕분에 정말로 편하게 잘 쉬다 갑니다🙏
내려오면서 아빠께 템플스테이 어떠셨는지 등등을 여쭤봤는데,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고 아빠 연세의 사람들은 별로 없어서 좀 놀랐다고 하신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가끔 이렇게 템플스테이 가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다행이었다. 다만 다음에는 등산 안 해도 되는 절로 가기...😂
내려가며 나눈 대화로 느꼈을 때, 아빠야말로 재가승이라도 해도 될 정도로 이미 이 철학을 꽤나 깊이 이해하고 계신 분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스님께 궁금했던 그 부분, 아빠야말로 젊었을 때 삶에 대한 철학적 고민 때문에 실제로 출가를 고려해보신 적도 있다고. 그 시절 아빠의 질문은 무엇이었고 답은 무엇이었을까. 정작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질문과 답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네. 아빠랑 조금 더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아빠랑 템플스테이, 올여름 꽤나 바쁜 와중에도 가장 잘한 일 중 하나.
- 에필로그 -
원래 점심 먹을 시간이 없을 뻔했는데, 예정보다 조금 일찍 산을 내려온 덕분에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러 갔다. 확실히 내려오는 건 조금 빨랐던 느낌. 템플스테이 시켜줬으니 아빠가 맛있는 거 사주신다며 소갈비를 먹으러 갔다. 고기를 먹으니 이제야 힘이 좀 나는 것 같다고 하시는 아부지.
아빠도 절밥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동물성 단백질이 없으니 영양적으로 조금 부족한 느낌이 있으셨나 보다. 고기랑 오신채를 무조건 멀리하기보단, 율법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필요가 있겠다는 아빠 말씀에 조금 놀랐다. 우리 아빠... 내 생각보다 개방적인 분일지도...?
하산이 왜 그렇게 급했는고 하면, 오후에 오픽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지. 시험 접수를 미리 해둔 상태에서 잠시 잊은 채로 템플스테이를 급하게 예약하는 바람에 꽤 무리하는 스케줄이 되었다. 절에서 영어 염불이라도 외야겠다고 농담처럼 얘기했었는데, 그럴 시간과 정신 없고요... 템플스테이 중간중간 어느 한쪽에도 집중을 못하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템플스테이 때는 원래 막 생각의 늪에 빠져서 잠 못 드는 밤을 지새워야 하는데(?) 생각의 늪에 빠질 겨를이 없이 머릿속이 속세에서처럼 딴생각으로 꽉 차서 오히려 잘 잤나?
하여튼 모든 질문이 랜덤인 오픽 시험에서 첫 질문만큼은 무조건 자기소개가 나오는데, 이걸 전날까지도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야말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은데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설명해야 한다면 대체 뭘 설명해야 하나?' 싶어서. 직장? 취미? 운동? 한 2주를 고민하다가, 스님의 "착하다"는 말씀에 거짓말처럼 윤곽이 그려졌다. '사람들이 보는 내 첫인상과 내가 생각하는 나.'
"사람들이 내 첫인상을 자주 착하고, 조용하고, 부끄럼 많고, 내성적이어 보인다고 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려. 나는 talkative person은 아닌데 adventure person이야. You know, you cannot judge a book by its cover, right?"
산 내려가며 즉흥으로 시뮬레이션 짜서 시험 본 결과는, 영어 오래 안 쓴 것 치고는 선방했지 뭐. 다행이다. 아이디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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