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부터 새벽같이 출발해서 어느새 점심때가 된 제천 여행. 조금은 늦은 아침식사가 아직 소화가 덜 된 관계로 갈증만 해소할 겸 비행장 근처의 카페에서 목을 축인 후 의림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당일치기 일정
- ~9:30 제천역 도착
- ~10:30 아침식사 (소백산 육개장)
- ~11:30 제천 비행장
02
- ~13:00 카페 비행(Be 幸)
- ~15:00 의림지 구경 (용추폭포, 의림지 놀이동산 등)
- ~16:00 점심 겸 저녁식사 (의림지 막국수)
03
- ~17:00 교동 민화 마을
- ~17:40 제천 중앙시장
- ~18:15 제천역 출발
- ~20:00 청량리 도착
카페 비행(Be 幸)
계획엔 없었으나 한여름에 그늘도 없는 땡볕의 비행장을 돌아다니느라 좀 지쳐서 발견하자마자 들어간 곳. 테라스석도 있고, 실내 창도 커서 더위/추위 피하며 음료로 목을 축이고 편하게 비행장 뷰를 감상하기 좋은 카페인 듯싶다. 시그니처 음료인 비행밀크티를 마셨는데 맛있었음!
비행장에서 걸어서 약 2-30분 정도 걸리는 의림지. 많이 먹기도 했고, 여행하면서 안 걸으면 이제 허전하지! 대부도나 삽시도에서처럼 무슨 걷기 코스를 걸은 건 아니지만, 걸어야만 보이는 풍경들이 있기 때문에 소소하게라도 걸어본다.
조금 딴얘기지만 언젠가부터 이렇게 시원시원 뻗어있으면서 한적한 도로가 보기 좋더라구. 이것도 걸어야만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
제천의 명승지, 의림지(義林池)
슬렁슬렁 걷다보니 생각보다 금방 도착한 의림지. 평일 낮의 의림지는 다행히(?) 꽤나 한적했다. 호수치고는 규모가 꽤 커서, 사진도 찍어가며 별의 별 것을 다 살펴보며 걷는 여행지 발걸음으로 한 바퀴 돌면 시간 좀 걸릴 수 있겠다 싶었던 곳.
의림지는 단순 관광지가 아니라, 무려 삼한시대에 농경을 위해 축조된 저수지였고 따라서 '농경문화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충남&충북을 가리켜 '호서지방'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의림지의 서쪽 지방'이라는 뜻이라는 건 처음 알았네. 조선시대 기록에도 자주 등장하는 곳으로, 가히 제천의 명승지라고 불릴 만한 듯하다.
의림지에 있는 두 개의 정자 중 하나, 영호정. 소나무에 둘러싸인 모습이 상당히 조화롭고 운치를 더한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조화를 꾀했던 우리 선조들의 건축 방식은 참 존경스럽다. 아주 화려하진 않지만 수려한 단청까지.
1807년에 이집경에 의해 지어졌다가 6.25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그의 후손 이범우가 1954년에 고쳐지었다고 한다. 이범우는 3.1운동 때 제천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고.
소나무가 우거져서인지 가는 길마다 그늘이 지고 그리 덥지가 않았다. 여름에 걷기 정말 좋았던 의림지 둘레길.
멀리서 보니 도란도란 재미있어 보였던 오리배. 가족 단위 방문객이 와서 많이 타는 듯하다.
꽤 오래되어 보이는 키 큰 소나무들 아래 놓여있던 죽은 소나무 하나. 어떤 이유로 고사한 소나무 줄기를 벤치처럼 활용하는 듯했다. 그늘을 주다가 고사목이 되어서도 아름다운 휴(休)로서 자리를 내어주려 한다는, 인간이 지은 글귀가 왠지 찡하다.
두 나무의 줄기가 맞닿아 결이 서로 통한 나무, 연리목.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걸, 애틋한 사랑에 비유한 인간의 글귀 때문에 또 발길이 붙잡힌다. 사물을 시감으로 바라보는 시선 참 멋지다.
그만큼 의림지 주변으로는 소나무가 참 많고, 키가 크고 우거져서 그늘을 많이 만들어주어 여름에 쾌적하고, 보다시피 사연 있는 소나무들도 있어서 의림지에서 소나무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의림지 산책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존재.
의림지를 한 바퀴 도는 게 꽤 짧지 않은 만큼, 중간중간 편의시설들이 좀 있다. 음료는 물론 음식을 파는 곳도 있고, 의림지 경치를 즐기며 먹을 수 있는 야외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다.
매점은 내 목적지가 아니라서 사진만 찍고 지나가려다가, 고영희님이 보여서 홀린 듯 쫓아갔다. 풍운을 즐길 줄 아는 고영희님인지 길 끝에 앉아 의림지를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직 살짝 아기냥이 같은데 귀엽다, 귀여워.
호수에 떠다니던 그 많던 오리배는 여기서 타는 거였다. 혼자서 탈 맘도 없었지만, 3인 이상부터라서 어차피 못 타는 거였구나 싶었다. 여러 명이 왔다면 한 번쯤 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의림지에 있는 두 개의 정자 중 또 다른 하나, 경호루. 이것도 키 큰 노송 사이에 서있는 누각이 꽤나 그림같다. 이익공 팔작집 단청이 특징이라고 한다. 바닥이 조금만 더 깨끗했다면 앉아서 쉬었다 가기 좋았을 것 같다.
용추폭포
의림지에 가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 용추폭포. 경호루에서 갈림길을 지나 아주 조금만 이동하면 용추폭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 갈 수 있다.
한국에서 이렇게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시원하게 낙하하는 엄청난 양의 물줄기를 조금은 넋놓고 쳐다보게 되던 곳. 가만히 보고 있자면 복잡했던 내 마음도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직접 내려다보는 것도 마다않는 사람이라면, 유리전망대에서 발 아래 떨어지는 폭포를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무데크 가운데 딱 폭포가 떨어지는 부분만 유리로 되어 있어서 폭포의 높이나 힘을 조금이나마 실감해볼 수 있다.
용추폭포를 기준으로 약간의 갈림길 같은 것이 있는데, 바깥쪽으로 크게 돌다보면 동굴 포토존(?)에 이를 수 있다. 왜 포토존이냐 하면, 동굴 안에 의림지 쪽으로 구멍이 두어 개 나있어서, 이곳에 앉아서 의림지를 배경으로 역광 그림자샷 같은 거 많이 남기더라고... 물론 나는 혼자라서 패스. 일행이 있었다면 나도 사진 남겨보고 싶었던, 조금은 아쉬웠던 구간.
바깥쪽으로 크게 돌다보면 이 수변데크를 걸어볼 수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제천문인협회 같은 곳에서 시화전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아마추어와 준프로 그 경계 어딘가에 있는 분들의 솔직한 표현들을 꼼꼼히 읽어보며,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아서 웃음 지었던 곳. 개인적으로 이런 구간이 있으면 걸음이 느려지고 시간이 더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의림지는 나 같은 객(客)에게는 한 번 들러보는 곳이지만, 주민들에게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이다.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고 정겨운 곳. 방해하고 싶지 않은 모습.
내가 방문하기 며칠 전에 제천에서 국제음악영화제를 한 모양이다. 제천에 그런 행사가 있는 줄 몰랐는데, 꽤나 흥미롭다. 내년에는 방문을 고려해볼지도?
의림지 놀이동산
인근에 놀이동산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운영을 하는지는 미지수라 사진이나 남겨보러 들어간 곳. 근데 웬걸, 기구 돌아가는 소리와 사람 소리가 좀 들린다.
매표소도 있고 놀이기구도 몇 있었지만, 운행을 하는 놀이기구는 거의 없는 듯했고, 매표소에도 사람이 없어 보인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어디서 나나 했더니, 이 바이킹 한 대만이 계속 왔다갔다하며 운행을 하고 있었다. 사람은 양끝에 한 두 명 탔나? 방문객이 없으니 모든 것이 다 멈춘 속에서 유일하게 힘차게 움직이던 것.
호수인데 무려 섬도 하나 떠있는 의림지. 조선 숙종 때 축조된 인공섬이라고 한다. 섬 주변에 순채라는 식물이 많이 자라서 '순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현재는 철새들의 서식처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의림지 막국수
많이 걸었고 의림지도 꽤 돌아본 것 같으니, 건너뛴 점심과 다가올 저녁을 한큐에 해결하러 가본다. 의림지 인근에 위치한 '의림지 막국수'. 막국수와 메밀치킨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새로운 조합의 식당이었는데, 혼자서도 무리해서 음식을 주문할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의림지에서 먹었던 것 중에 제일 맛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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