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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 200%

[영화후기] 더 퍼스트 슬램덩크 The First Slam Dunk (2023)

by Heigraphy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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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2-30년 전 뭇 소년소녀들의 가슴을 울렸을 스포츠 청춘 만화 [슬램덩크] 극장판이 개봉했다. 일본 만화가 극장판으로 개봉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예: 포켓몬스터, 명탐정코난, 짱구는 못 말려 등등), 그동안 꾸준히 언급되고 틈틈이 새로운 '화(話)'가 나왔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슬램덩크]는 1990년대에 완결이 난 뒤로 원작의 이야기를 크게 확장하거나 추가하는 것 없이 세월이 흘렀다. 따라서 팬들 입장에서는 약 20년을 꼬박 기다린 극장판의 개봉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당시 TV 애니메이션판과는 달리 만화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감독을 맡으며 기대를 더했다.

  애니메이션임에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 관객층이 3-40대인 것만 봐도, 원작이 연재될 당시 이 작품을 접했던 소년소녀들이 성장하여 추억을 떠올리며 극장을 찾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누군가에게는 아주 반가운 작품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조금 벽이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원작 [슬램덩크]를 안 봤더라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전국 고등학교 농구팀 종합평가 (원작 슬램덩크 23권 中)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나오는 북산과 상대팀의 실력 정도는 알고 보면 좋을 것 같아서. 북산 농구부는 종합평가 결과 C등급으로 약체 중에 약체라고 볼 수 있다. 위 이미지는 만화책 속 장면으로, 북산이 C등급 평가를 받은 것을 보고 충격 먹은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모습이다. 왼쪽부터 강백호, 정대만, 채치수, 송태섭, 서태웅.

 

 

더 퍼스트 슬램덩크(THE FIRST SLAM DUNK), 2023

줄거리

  전국 제패를 꿈꾸지만 아직 전국 고교 농구 약체인 북산고와, 이미 최강체인 산왕공고가 고교 농구 전국체전 32강에서 만난다. 한쪽의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경기가 될 것 같으나, 예상외로 경기는 꽤나 치열하고 예측할 수 없게 흘러간다.

  이야기는 등장인물 송태섭의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몇 번씩 엎치락뒤치락하며 경기의 흐름이 바뀔 때마다, 주도권을 가져오는 선수들의 개인 서사를 송태섭의 과거사에서의 접점을 통해 한 번씩 비춰준다.

 

 

 

*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을 수 있음

 

감상

  십수 년 전에 만화책으로 [슬램덩크]를 봤지만 이후로 작품을 다시 찾아본 적은 없어서 느낌만 남고 내용은 많이 까먹었다. 덕분에 모르고 보는 것만큼이나 짜릿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 볼 때만큼이나 긴장+간절+짜릿... 오히려 좋아. 과몰입해서, 영화 보는 내내 몸이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했다(맨 뒷자리라 다행).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님이 직접 감독으로 참여해서인지, 만화책 그림이 막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오프닝에 펜으로 스케치된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이 걸어 나올 때부터 전율이 찌르르 흐른다. 심장이 바쿠바쿠(쿵쾅쿵쾅)... 애니메이션은 3D로 구현했는데 어색함이 거의 없이 정말 잘 만든 작품인 듯하다.

 

  '슬램덩크'라는 이름만 보고 보러 간 거였기에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도 거의 없었다. [슬램덩크]의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2시간으로 다뤘을까 싶었는데, 원작 [슬램덩크]의 클라이맥스 경기와도 같았던 산왕전의 내용을 다룬 거였다. 거기에, 원작에서는 크게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던 송태섭의 이야기가 주를 이뤄 조금 놀랐다.

 

  영화를 본 후 주호민 작가님의 감상을 봤는데, "인생 자체가 존 프레싱이었던 송태섭"이라는 표현에 아주 공감한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송태섭 서사... 이렇게나 딥한 줄 몰랐지. 농구로 극복해 가는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형의 그림자에서 오래 지내다가, 산왕전에서 마침내 '존 프레스'를 뚫고 "산왕에게 이긴다"는 형의 목표를 대신 이루며, 송태섭의 인생에서도 한 발을 나아가는 모습이 강한 희열과 찡한 감동을 준다. 원작에서는 강백호, 서태웅 등에 비해 큰 비중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영화로 이렇게 풀어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플래시백이 너무 잦다는 평이 조금 이해가 되는데, 반대로, 그렇지 않았다면 안 그래도 아주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경기에 쉴 새 없이 하이라이트 같은 장면들이 터져서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2시간이 되었을 것 같다. 즉, 원작과는 조금 다른 전개였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전개 방식은 그거대로 좋았다.

 

  북산고 5인뿐만 아니라 상대팀인 산왕공고 인물들의 서사까지 다뤄줘서 참 좋았다. 특히 정우성... 전국 1위 찍고 해 볼 건 다 해봤으니 새로운 경험을 달라고 했더니, 그게 패배의 경험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경기 끝나고 복도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모습에 나까지 짠해짐. 북산고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팀까지 버릴 캐릭터가 하나도 없도록 잘 만든 만화.

 

  송태섭을 중심으로 북산 5인방의 서사가 하나씩 나오는 구성 좋았고, 경기 마지막 1분을 묵음으로 연출한 장면에서는 다들 숨소리도 못 낸 채 보았고, "뚫어! 송태섭!!!" 외침과 함께 'The Zeroth Sense' 노래가 터질 때 너무나 벅찼고, 서태웅과 강백호의 하이파이브를 3D로 볼 수 있는 것도 모자라 그게 다시 2D 그림으로 전환되는 연출까지, 버릴 장면 하나 없고 다 보고 나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온갖 명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원래 스토리도 탄탄한데 극장판 연출을 진짜 기가 막히게 했다.

 

 

  너무 오랜만에 다시 봐서, 영화 보는 내내 몇몇 설정이나 캐릭터들 성격 정도만 떠오르고, 거의 [슬램덩크] 처음 보는 사람의 입장과 같았다고 봐도 된다. (원작 진짜 깊이 본 사람들은 영화 속 디테일한 장면들 하나하나까지도 원작의 그것과 매치해서 잘 찾아내던데, 그런 걸 전혀 못 볼 정도) 그런데도 엄청 재미있게 보면서 울고 웃고 했으니, [슬램덩크] 처음 보는 사람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호들갑 떨긴 싫지만 이 막 벅차고 반가운 느낌을 달랠 길이 없어 SNS에 영화를 본 당일에 이것저것 올렸더니, 친구들에게 연락이 두어 개 와서 신나게 대화를 나눴다. 슬램덩크를 좋아하는 동년배가 이렇게나 많았다니. 어릴 때는 혼자 보고 혼자 좋아해서 벅찬 감정을 누구랑 못 나눴는데, 이제라도 같이 공감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자막판으로 한 번 봤는데 아무래도 여운이 가시기 전에 더빙판도 한 번 더 봐야겠다. 두 번째는 디테일들을 찾아내는 재미로 봐야지. 개인적으로 만화책으로 [슬램덩크]를 봤던 터라 사실 만화책이 가장 다시 보고 싶다. 라떼는 말이야, 서마터폰 없을 때 밥 먹으면서 만화책 보고 그랬단 말이야. 이래 봬도 어렸을 때 만화책에 꽤 진심이었고, [슬램덩크]도 예외 없지.

 


슬램덩크 단행본 23, 24권

  왠지 집에 딱 두 권이 남아있더라. 집 책장에 한 이십 몇 년 꽂혀있었나 보다. 만화책은 빌리기보단 사 버릇하던 오빠 이제 와서 고맙고, 사달라는 대로 사주시고 지금까지 버리지도 않고 보관해 주신 부모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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