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이어지는 코스: 북한산 둘레길 20코스 왕실묘역길
배우 하정우 씨가 쓴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나도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걷기에 생각보다(?) 진심이었던 하정우 씨의 마음이 좀 인상적이게 다가왔다고 해야하나.
남는 게 시간일 때는 온갖 잡념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나도 걷기로 좀 상쇄해보고 싶다.
'걷기'를 일로 할 때는 오히려 사무실에 앉아서 뭉개는 시간이 훨씬 많았는데, 일이 끝나고 나서야 직접 걸어보는 아이러니.
목적지 없이 걷는 건 그동안 많이 해봤으니, 이번엔 다양하게, 기왕이면 서울의 여러 면을 보면서 걸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두루누비' 어플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두루누비'는 한국관광공사에서 만든, 전국 걷기여행길/자전거길 길라잡이 어플이다.
두루누비에 등록된 다양한 걷기 코스 중에 내가 첫 번째로 선택한 코스는 북한산둘레길 1코스 소나무숲길이다.
빨간색으로 루트가 표시되어 있고, GPS를 켠 채로 '따라걷기'를 하면 그 위에 나의 걷기를 기록할 수 있다.
일단 1시간 반이면 걷는 데다가 3.1km밖에 되지 않는 난이도 '쉬움'의 코스라서 선택해보았다.
그리 멀지 않아서 출발지까지 또 걸어간 건 안 비밀.
북한산 둘레길은 다양한 코스가 있는데, 그 중에 내가 걸을 코스는 수유동으로 나가는 '소나무숲길'이다.
서울에서 둘레길을 걸어보긴 처음인데 기대된다.
출발지였던 우이령입구.
두루누비 어플을 켜고, '따라걷기'를 켠 상태로 '북한산 둘레길(수유동)' 표지판을 잘 따라서 걸어본다.
시작과 동시에 계곡을 만났다.
출발지까지 열심히 이어폰 꽂고 오다가, 이곳에 와서 물소리를 듣자마자 이어폰을 뺐다.
이런 길에서는 역시 주변 소리에 귀기울이는 게 최고지.
이어폰은 도시에서나 사용해도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
이 동네는 사실 처음 와보는데, 계곡을 따라 집이라기엔 뭔가 상당히 정돈된 외관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일반 가정집은 아니고 아마 리조트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우이동이 MT촌으로 유명한 건 알았어도, 이렇게 세련된(?) 숙박시설들이 즐비한 줄은 몰랐네.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을 줄이야.
그리 멀지도 않은데 그동안은 몰랐던 게 아쉽다.
지금까지 우이령입구에서부터 0.6km를 걸어왔고, 북한산 둘레길(수유동) 쪽으로 계속 걷기를 이어가본다.
색색깔의 단풍이 참 곱고 예쁜데, 어느새 많이 떨어진 듯하다.
한 일주일만 빨리 왔어도 걸으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가을 산은 역시 참 아름답구나.
아쉽지만 계곡길 따라 걷는 건 여기서 마무리하고, 왼편의 돌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한다.
계단 올라왔는데 도로에 아스팔트 길이 나와서 조금 당황했다.
여기서 둘레길 끊긴 건가 싶었는데, 길 건너서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두루누비 지도 보면서 갔다고 해도, 표지판 없었으면 못 찾고 헤맸을 것 같다.
서울 둘레길 조성 참 잘해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주택가 길을 걸어서 가다보면 오른편에 소나무 숲길 구간 입구가 나온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다시 북한산 둘레길 1코스 소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던 냥이.
쌔까만 털에 왠지 코가 오똑해 보이는 게 참 귀여웠다.
길목에 앉아있다가 내가 지나가려고 다가가니 옆 수풀에 잠시 숨어있다가, 내가 지나가고 나니 다시 길목에 나와서 자리를 잡았다.
거기가 네 터전이구나? 내가 방해해서 미안해.
그렇게 가파른 오르막도 아니고, 내리막도 아니고, 완전히 평평한 길도 아니고, 적당히 완만한 게 걷기 딱 좋은 길이었다.
사실 전부터 등산도 참 하고 싶었는데, 주변 산들이 너무 본격적이라 엄두를 약간 못 내고 있었다.
그런데 둘레길이 등산도 아닌 것이, 평지 산책로도 아닌 것이 딱 적당한 코스로 안내해주는 것 같다.
앞으로 둘레길 몇 개 더 정복한 다음에 내공이 쌓이면 등산도 다녀봐야지.
둘레길로 시작하는 거 너무 좋은 것 같다.
바스락 거리며 가을을 밟으며 가는 길.
가을이 조금만 더 오래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
길을 살짝 잘못 들어서 간 곳에 부처님이 서계셨다.
왼편에는 송주사라고 하는 아주 작은 규모의 절이 있었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불상인 것 같은데, 이런 곳에도 부처님이 계시는구나.
그 바로 옆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또 꽤 큰 규모의 교회가 있었다는 사실.
뭔가 길이 점점 더 본격적인 듯한 느낌이다.
분명 도시에 있는데 도심에서 벗어난 이 느낌이 너무 좋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길이 아닌 흙과 나뭇잎이 뒤덮인 길을 걷는 느낌도 좋다.
적당히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큰 힘은 들지 않는 게 딱 내가 원했던 코스.
사실 조금 느즈막히 출발하는 바람에 해가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요즘 한 5시 반 정도만 돼도 해가 지더라고..?
나무 뒤로 구름이 주황빛으로 물든 예쁜 하늘이 펼쳐졌는데, 역시 사진에는 다 안 담기지.
다 와서 꽤나 헤매다가 역시 표지판 보고 길을 찾았다.
두루누비 어플은 방향 표시가 되지 않고, 내가 지나온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만 표시가 되어서, 딱히 특징이 될 만한 건물도 없는 이 숲길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는 게 조금 쉽지 않다.
그러니 둘레길 곳곳에 있는 표지판을 정말 적극 활용해야 한다.
사실 출발할 때부터 희미한 달을 봤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달이 조금씩 더 선명해지고 있다.
여유있게 걷는 것도 좋지만, 해지기 전에 하산(?)하는 것이 목표라 조금 더 서둘렀다.
둘레길에서도 아마 꽤 높은 지점에 올라왔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봤자 산이라기엔 애매한 높이지만..
저 멀리, 저 아래 아파트들이 보여서 남겨본 사진.
조금만 더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면 드디어 고지가 눈앞에 보인다.
가로등이 켜진 시간에 드디어 출구로 나왔다.
두루누비에 표시된 도착지점은 여기보다도 조금 더 나가야 하지만, 사실상 여기가 둘레길의 끝이지 않나 싶다.
똑같이 인적 드문 길을 걸어왔는데 흙길을 걸을 땐 그러려니 하다가 콘크리트길을 걸으려니 왜 좀 무서울까..?
이곳까지 오면 둘레길 1코스를 거의 다 걸은 거다.
공원을 통해 큰길까지 나가면 두루누비에서 추천하는 코스 완주한 셈!
처음에 3.1km에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는데 해 지기 전에 내려오겠다고 부지런히 걸어서 그런지 45분만에 완주했다.
두루누비에서는 아주 여유있는 시간을 제시해주는 것 같다.
평균속도가 3.97km/h인 거 보면 그렇게 빠르진 않고 보통인 것 같은데.
아마 둘레길에서 두어번 길을 헤매서 우왕좌왕 하는 동안 시간을 좀 까먹었지 싶다.
이렇게 첫 둘레길 따라걷기 완료.
늦게 시작한 점이 좀 아쉽고, 헤매느라 시간이 조금 늦어진 점도 아쉽다.
(끝나고 나서 이미 해 다 짐)
쉬운 코스라길래 만만하게만 봤는데 언덕도 꽤 있고, 개인적으로 적당히 힘들고(?) 좋았다.
(+참, 요즘 두루누비 '따라걷기'로 걸으면 온누리 상품권도 준다. 개이득.)
둘레길 출발지까지 걸어가고, 도착지에서 또 걸어와서, 오늘의 총 걷기 기록.
15,432걸음 / 514kcal 소모 / 8.5km
작정하고(?) 걸었는데도 15,000보 정도밖에 걷지 못했다니.
출퇴근 할 때 다른 거 안 하고도 하루에 보통 6천 보, 많으면 8천 보 정도는 걸었는데, 생활 속에서 걷기를 적립하는 게 은근히 쉬우면서, 마음먹고 걸으면 그게 또 생각보다 어려우면서 그런가보다.
하정우 씨는 하루에 3만 보를 목표로 걷는다던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 짐작이 된다.
아무튼, 이건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걷기 근육을 키워볼 테야💪
북한산 둘레길 1코스 소나무 숲길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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