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를 보고 꼭 가야겠다 생각한 그곳! 국립고궁박물관을 다녀왔다.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은 타이페이 시내에서도 북쪽으로 약간 떨어져있어서 동선이 약간은 꼬이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옥배추(배추비취)와 동파육을 보기 위해서!
우리 호스텔(플립플랍, flipflop)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버스정류장에서 304번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눈 앞에서 버스 한 대를 놓치고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정류소 전광판에 약 50분 후에나 다음 버스가 온다고 떴다. 구글맵에 뜬 배차간격은 약 10~15분 정도였는데? 무엇을 믿어야할지 모르겠는데다가 버스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하염없이 기다려봤는데.. 진짜 한 시간 후에나 오더라. 덕분에 이날 일정에 약간씩 차질이 생겼다.
▲ 대만 국립고궁박물관 입구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도착. 대만의 고궁박물관은 장제스가 중국에서 대만으로 건너올 때 들고온 중국 본토의 유물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꽃할배에 나온 믿거나말거나(?) 썰에 따르면,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다가 아니라 박물관 뒤에 있는 산에 그 일부를 숨겨놨는데 그 수 또한 어마어마 하다나(고궁박물관 자체도 굉장히 크다. 하루 안에 절대 다 못 볼 만한 규모). 그 많은 유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아마 옥배추와 동파육일 거다. 사실 대만에 대한 지식이 매우 부족한 채로 가면서, 꽃할배에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이것만큼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계단에 서있는 사람들이랑만 비교해봐도 뒤의 박물관이 얼마나 큰 규모를 자랑하는지 알 수 있다. 아마 실내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었어서 찍지 못했던 것 같다. 나와 친구는 유스트레블카드를 구입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입장료로 각 250NT$를 지불했고, (내 기억이 맞다면) 각 100NT$를 지불하여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했다. 유럽여행 다닐 때 '아는 만큼 보인다'를 참 많이 느꼈기 때문에 아낌 없이 오디오가이드 선택. 이미 이곳의 역사나 유물을 꿰고 있는 분이라면 필요 없을 수도 있겠지..만 유물의 양이 워낙 방대한데다, 오디오 가이드가 그리 비싼 편이 아니기 때문에 대여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게다가 '한국어' 가이드니까.
혹시나 이 글을 보실 분들에게 팁을 하나 더 드리자면 옥배추와 동파육을 보실 분들은 입장하자마자 3층으로 바로 가시길. 옥배추와 동파육 보려는 사람들이 2층까지 줄을 서있다. 1층부터 여유롭게 돌고 3층에서 옥배추와 동파육을 보려다간 뒤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혹은 옥배추와 동파육 보는 걸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나와 친구는 1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입구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2층은 거의 못봤고, 1층 조금(핵심적인 유물들)과 3층에서 옥배추, 동파육을 보고 나니까 기념품샵 갈 시간 조금 남고는 끝나더라. 한 시간으로 둘러보기엔 택도 없는 규모라는 뜻.
▲ 아종면선 곱창국수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곱창국수를 먹으러 이동하려니 또 버스가 한 시간 뒤에나 온다길래.. 이번엔 과감하게 택시를 탔다. 국립고궁박물원에서 시먼역까지 약 300NT$가 나왔던 것 같다. 시먼역에 간 첫 번째 이유는 곱창국수를 먹기 위해서!
▲ 곱창국수 담는 중
큰 솥에다 대량으로 국수를 끓이다가, 들어오는 주문에 맞춰 국수를 덜어준다. 실내 테이블 같은 건 없고, 일회용 용기에 받아서 일회용 숟가락을 들고 근처에 서서(서서 먹는 테이블? 같은 게 있긴 있다. 자리가 적어서 그렇지..) 호로록 호로록 뚝딱 먹으면 된다. 왜 젓가락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먹느냐 하면, 아래 사진이 설명해줄 것.
▲ 곱창국수 큰 사이즈
▲ 곱창이 생각보다 듬뿍 들어가있다
나와 친구는 시먼에 있는 다른 맛있는 것들도 먹어보고 싶어서 곱창국수는 각 1그릇이 아닌, 대(大)자 하나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국수와 곱창이라니 느끼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느끼한 감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고소하고 맛있었다. 그리고 면이 굉장히 풀어져서 흐물흐물한 상태이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잡으면 미끄러지거나 끊어질 것 같고, 숟가락이 딱 알맞은 것 같다. 숟가락으로 떠도 '면 길이+미끄러움' 때문에 막 쉽지만은 않으니 요령껏 떠먹어야 되겠다. 그리고 한국인이 가면 고수를 잘 담아주지 않는 것 같다(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풀이다 보니까. 적어도 우리 그릇에는 일부러 안담아준 듯했다). 담아달라고 하면 바로 담아준다.
▲ 녹차 아이스크림
밥 먹자마자 옆집에서 후식을 챙겨먹었다. 바로 녹차 아이스크림! 정말 곱창국수집 바로 옆에 있다. 다만 아이러니 했던 건 가격이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곱창국수 한 그릇보다 녹차 아이스크림 한 개가 더 비쌌다. 곱창국수가 쌌던 것도 있고, 이 아이스크림이 꽤 값이 나갔던 것도 있고.. 하하. 그래도 녹차맛만큼은 꽤 진하고 정말 맛있었다. 다만 워낙 더운 나라라 그런지 천천히 먹다가는 녹아서 아래 과자가 녹아 구멍이 뚫린다. 나와 친구도 약간의 낭패를 보았다.
녹차맛 말고 그냥 소프트콘(?)도 판다. 입가심용으로 괜찮았던 아이스크림.
이 중간 즈음에는 사진은 없지만 까르푸에 쇼핑을 하러 갔다. 한국에 있는 내사람들에게 선물할 봉지 밀크티와 화장품통 밀크티 뭐 그런 것들을 사러. 시먼딩은 워낙 번화가라 까르푸도 주변에 두어개 있는데, 나와 친구는 참 많이 돌아돌아 가서 겨우 하나를 찾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찾은 까르푸가 몇개 층으로 이루어진, 꽤 큰 곳이었다는 것(원래 까르푸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하하). 살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쇼핑을 끝내고 나오니 제일 큰 봉지로 한 봉지가 나왔다. 그런데 다른 한국인들의 카트를 보니 우리는 정말 양반이라는 걸 느꼈다. 참, 까르푸에는 한국인들이 엄청 많고, 대만에서 만날 한국인들은 이날 까르푸에서 다 만난 것 같다. 까르푸에서도 아예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은 한쪽에 모아서 팔기도 하더라.
원래 우리 이 다음 일정은 룽산쓰(용산사)를 가는 거였는데 그 짐을 다 들고 도저히 남은 일정을 소화할 수가 없을 것 같더라. 아무래도 호스텔에 한 번 들러야하지 않나 고민하던 차에, 친구가 자기가 내 짐까지 들고 호스텔에 다녀올테니 이따가 용산사(룽산쓰)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실 이날 대만에서 교환학생을 하는 동생과의 약속인듯 약속아닌 약속같은 일정(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정해진 게 아니라, "나 대만 가는데 시간 되면 보자~" 이런 느낌의 약속이었다)이 있었던지라 친구나 동생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 둘 중 한명이라도 불편해하지 않을까 약간 걱정하던 차에, 자기가 호스텔에 다녀오는 동안 동생을 만나고 있으라는 친구의 배려였다. 덕분에 나로선 짐도 덜고 동생도 조금 더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참 고마웠다.
▲ 동생과 마신 밀크티
동생이 마침 시먼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아서 금방 만날 수 있었다. 만나자마자 둘 다 갈증이 나는 관계로 밀크티를 한 잔씩 사마셨다. 친구랑은 매번 코코밀크티만 사마셨는데, 여기는 다른 곳이었다. 50란 밀크티! 코코랑은 메뉴가 또 달랐던 것 같다. 나는 초코 어쩌고를 시켰던 것 같은데 바보같이 당도를 약 50정도 추가하는 바람에 초코의 달달함도, 설탕의 달달함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맛이 났다. 여기서는 동생이 교환학생으로 공부를 하는 신분인 만큼 동생 통역찬스를 써서 주문을 했다. 중국어로 굉장히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더라. 그렇게 버블티 하나씩 물고 마치 명동 거리 같은 시먼딩 거리를 걸어걸어서 룽산쓰까지 갔다. 그리 멀지 않고, 거리를 구경하면서 가는 재미가 있는지라 걸어갈만 하다.
▲ 룽산쓰(용산사, 龍山寺)의 입구
우리는 걸어서 갔지만 지하철 룽산쓰(용산사, 龍山寺)역에 내리면 바로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도시 한가운데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절은 처음 봐서 개인적으로 새로웠다. 입구부터 사람도 바글바글하다. 이곳에서 친구도 다시 합류하여 함께 룽산쓰를 구경했다.
▲ 룽산쓰 입장
입구를 지나 들어가면 이렇게 재(齋)를 올리는 곳이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유교에서는 제(祭), 불교에서는 재(齋)라고 한다. 목적 또한 제(祭)는 후손들이 돌아가신 분을 기리기 위한 거라면, 재(齋)는 재계(齋戒), 즉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복된 것을 깃들게 하자는 것으로 다르다. 나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이 많은 사람들 중 물론 나와 같은 여행객도 있었겠지만, 대만사람들에게 '절'은 매우 익숙하고 일상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는 듯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재를 올리고 있었다.
▲ 각자의 염원이 담긴 초
▲ 점괘를 봐주는 돌
두 돌을 동시에 던져서 서로 다른 면이 나오면 종이를 뽑아서 거기에 적힌 내용으로 점괘를 보는 거 같은데.. 우리는 미처 그 과정을 알지 못해서 반달모양 돌 두개만 던져보고 왔다. 신기하게도 세 사람 다 서로 다른 면이 나오긴 했다. 제대로 알았다면 셋 다 점괘도 뽑아보고 해석도 들어보고 왔을텐데 아쉽다. 그래도 저 당시에는 우리 다 소원 이뤄지겠구나~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나올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하하..
▲ 경을 읽는 여인
▲ 재를 올리는 여인들(2장)
사실 이 룽산쓰(용산사)는 코스에 넣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주장했는데, 이유인 즉슨 이렇다. 첫 번째로 꽃할배 대만편을 보면, 이 룽산쓰에서 박형근 할아버지가 재를 올리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데, 그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재를 올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어떤 굳은 믿음 같은게 보였고, 간절함(신께 무엇을 바라는 의미의 간절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수양(?)하는데 있어서의 간절함)이 보였고, 또한 비록 사진이고 화면 속이지만 맑은 정신들이 느껴졌다고 해야하나. 그 기운들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두 번째로는 아시아의 종교적 제의의 모습도 매우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여행을 다닐 때 '성당'을 보러 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빈번했다. 유럽의 역사, 문화, 정치, 종교, 건축, 미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가톨릭'은 매우 많은 것들을 설명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의 '종교'란 어떤가? 비록 유럽인들에게 가톨릭의 의미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 아시아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종교와, 그 문화적 형태들이 있을 거다. 그런 모습들이 보고 싶었다. (본인은 무교라서 오히려 다양한 종교의 모습들이 궁금하기도 하다.) 아주 단순하게는, 유럽에서 성당 보러 가는게 당연한 거듯이 아시아에서도 자연스럽게 절을 보러 가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직접 그 모습을 본 소감은, 이들 모습이 굉장히 경건하게 다가오면서도 일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대만사람들에게 절이라는 장소는 특별하면서도 특별한 장소가 아니구나 싶은 생각. 이렇게 룽산쓰(용산사) 구경도 끝이 났다.
▲ 중정기념당
다음 목적지는 장제스를 기념해 만들어졌다는 중정기념당. 룽산쓰(용산사)에서 버스를 한 번 타고 갔다. 이곳도 규모가 참 웅장하다. 장제스 동상이 있는 메인 건물(위 사진) 하나만 해도 매우 큰데(역시 사진 속 사람들을 보면 건물의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런 건물이 몇 개는 더있고, 부지의 넓이 또한 엄청나다. 처음엔 도대체 어디가 메인 건물인지 파악이 안 됐을 정도.
▲ 장제스 기념상
이것도 실제로 보면 매우 크고, 한 번에 담는데 애를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메인 건물 안에는 이 기념상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나마도 접근이 막혀있고.
▲ 중정기념당의 부지
공원도 아닌 것이, 이 공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시야는 메인 건물에서 정문쪽을 봐라봤을 때 시야이다. 구경 좀 하고 사진 좀 찍었더니 어느새 해가 져서 조명들이 켜졌다. 이날 혹은 조만간 정문 앞에서는 무슨 행사라도 하는 건지 무대가 설치되고 있었다(아니 해체되고 있었나?). 가운데의 파란 불빛이 그것. 양 옆의 건물은 박물관 같은데 들어가보지 않아서 사실 잘 모르겠다.
▲ 부지의 중앙에서 본 중정기념당 메인 건물
메인건물쪽으로도 야경을 담은 사진이 찍고싶어 친구에게 양해를 구해가며 삼각대까지 설치하여 찍었다. 그러나 가볍고 약한 삼각대에 비해 바람이 꽤 불어서 생각만큼 예쁜 사진은 건지지 못했다. 아무튼 중정기념당으로 가는 길도 훤히 밝혀져 있다.
▲ 사이드(side)건물
가까이서 보니 유독 밝은 빛으로 인해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찍어본 사진.. 이면서 이 건물이 렌즈에 한 번에 안 담겨서 귀퉁이만 찍어본 사진이다.
사실 중정기념당에서는 알찬 구경을 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거나, 눈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기 보다, 세 명이서 함께 추억들을 많이 남기기에 바빴다. (놀랍게도 교환학생을 하는 동생도 우리랑 같이 오기 전까지 이 중정기념당의 내부를 들어와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 우리랑 같이 구경을 한 셈.) 중요한 건 거의 다 봤고, 우리끼리 즐거웠으면 된 거지 뭐.
이날 저녁에는 다시 J언니, L언니, L언니 남자친구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해서 약속장소인 융캉제로 이동해야 했다. 중정기념당에서 융캉제까지도 걸어가고자 했기 때문에 조금 부지런히 출발했고, 중간에 그동안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주었던 동생에게 고마움과 아쉬움이 섞인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대만에서 남은 날도 잘 지내고 다음엔 한국에서 보자고. 외국에서 지인을 만나는 것도 참 흔치 않고 기분 좋은 경험이다.
어느덧 4박 5일의 여행기가 끝나간다(거의 3개월째 포스팅을 하는 거 같긴 하지만). 다음 포스팅은 딘타이펑, 선메리 펑리수 등에 관한 것이 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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