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미용실 가면서 그때마다 태생적으로 부스스한 이 머리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차분하고 단정하게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해오기를 어느덧 10년 차. 모태 곱슬머리를 잠재우고자 매직 스트레이트 펌을 한 지가 벌써 10년이나 되었다는 뜻이다.
주기적으로 매직 스트레이트 펌을 하는 사람이라면, 매번 매직 외에는 다른 머리를 할 수가 없어서 아쉽다는 점에 공감할 것이다. 이번에도 미용실 갈 때가 다가오긴 했는데, 문득 한 번도 안 해본 파격적인 머리스타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숏컷? 히피펌? 탈색? 염색? 선택지는 많지만 괜찮으려나? 더 어렸을 때 해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모태 곱슬머리
학교 다닐 때는 파마한 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아 부모님의 확인서를 받아가야 할 정도로 컬이 살아있는 머리였다. 물론 곱슬머리를 관리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컬 말고도 부스스함도 빼놓을 수 없다. 이때는 곱슬머리인 게 조금 싫어서 열심히 묶고 다니다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 친구들이랑 놀러 갈 때면 용기 내서 한 번쯤 풀어보고 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도 천연 곱슬머리로 살기는 마찬가지. 부스스하고 붕붕 뜨는 머리 덕분에 곱슬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해그리드라는 별명도 들어봤더랬지. 단발로 자르면 본의 아니게 삼각김밥이 되기 일쑤였다.
이때 아직도 기억나는 건, 아침에 머리 말릴 시간도 없어서 드라이도 대충 하고 가는 나였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어떤 선생님한테 머리 구루뿌(?)로 만 거 아니냐고 대뜸 된통 혼났던 사건. 수업도 한 번 안 들어본 선생님이어서 나를 잘 모르시는 분이었을 텐데 정말 갑자기 복도에서 된통 혼났다. 그 선생님 때문에 고등학생 때도 학교에 부모님 확인서 같은 거 써감... 천연 머리로 살면서도 그놈의 두발 규제가 뭔지 뜬금없이 혼났던 게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다. 곱슬에 대한 편견도 별로고 두발 규제도 별로야.
대학교 들어와선 듀발 규제하는 선생님은 없었지만 오지라퍼 학우들이 또 해그리드니 뭐니 시전. 막 꾸미기 시작하는 20대 초반에 그 말을 듣기 싫어서 매직 스트레이트 펌을 하기 시작해서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학우들도 참 철없고 남의 외모에 관심 많았다. 그냥 내 머리 변천사 같은 걸 가볍게 써보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왜 그라데이션 화가 나죠...?
아무튼, 위 사진은 외장하드 정리하다가 발견한 사진인데, 이런 머리도 했었나 싶어서 조금 놀랐다. 매직 대신 염색과 파마를 동시에 한 것 같은데, 지금은 머릿결 생각해서라도 엄두를 못 낼 스타일. 염색은 이 이후로 한 번도 안 했던 것 같은데, 이 사진을 보니 다시 밝은 갈색 머리가 하고 싶어졌다.
뽐뿌의 주역들(?)
염색 뽐뿌가 올 때쯤 딱 올림픽을 할 때였고, 마침 곽윤기 선수의 염색머리가 너무 예뻐 보이는 거 아니겠어..? 다만 곽윤기 선수처럼 탈색까지 하면 머리 관리할 자신이 없어서, 처음에 꽂힌 갈색 근데 이제 붉은색을 조금 곁들인 머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자니 동시에 매직은 더더욱 못 하겠더라고.
내게 10년 간 미용실 가는 날은 곧 매직하는 날이었는데, 이거 진짜 안 해도 괜찮을까 조금 걱정이 되던 차에 유튜버 박채소님의 영상을 봤다. 곱슬머리도 잘 관리하면 엄청 스타일리시한 머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분. 그야말로 신세계를 알려주시고 삶에 새로운 영감을 주신 분이었다. 이때 빅찹, 스몰찹 등의 개념을 알게 되었고, 곱슬머리에도 유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그냥 나답게 살고 싶더라고. 남한테 어떻게 보일까 전전긍긍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싶더라고.
매직을 한 지가 오래되기도 했고, 매직모를 잘라낸 지는 얼마 안 되기도 해서 사실 지금도 내 곱슬머리 유형이 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최소 십수 년 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2C 정도이지 않을까 추측해보는 중. 현재는 2B 같기도 하고. 머리가 좀 더 길어봐야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숏컷에 가까운 단발과 염색
개인적으로 단발머리를 좋아하는데, 이번엔 그보다도 조금 더 짧게 잘라보았다. 그리고 원했던 대로 약간 붉은색이 감도는 갈색으로 염색도 했다. 매직은 물론 하지 않음! 나름대로 꽤 용기 내서 처음 시도해본 머리.
머리 한 당일에는 미용사님이 드라이를 아주 열심히 해주셔서 곱슬머리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이후에도 딱히 공들여 드라이를 하지는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한 며칠은 별로 부스스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미용실에서 드라이해주시면서 염색 물이 조금 빠질 때쯤 매직을 해주는 게 좋을 거라며 추천을 계속해주셨다. 악의가 딱히 없으셨던 것도 알고 예상한 반응이기도 한데, 곱슬머리는 또 그 자체로 별로 인정을 안 해주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더라고. 그래도 난 나만의 길을 간다.
한국에도 곱슬머리로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생기면서 곱슬머리 관리법 정보도 꽤 찾아볼 수 있었는데, 사실 나는 그 관리법을 충실히 따라 하는 편은 아니다.
대충 적어봐도
- 계면활성제가 들어있지 않은 샴푸와 컨디셔너 등을 쓰기
- 곱슬머리는 기본적으로 수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머리를 감고 나서 털지 말고 수건으로 가볍게 꾹꾹 눌러서 물기 제거하기
- 자연건조를 하면 좋지만 꼭 드라이를 해야 한다면 찬바람으로 하기
- 빗질 웬만하면 자주 하지 않기 (자주 할수록 부스스해질 확률↑)
-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아르간 오일 등이 들어간 헤어 에센스 바르기 등등
방법은 참 많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아직 곱슬머리를 위한 제품들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직구를 많이들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머리에 그렇게 공들이는 타입이 아니라서 이렇게 많은 단계들 다 따라 하지도 못하고, 특히 제품들 주기적으로 직구할 자신이 제일 없었다. 그래서 샴푸나 컨디셔너 같은 건 딱히 바꾸지 않았고, 그저 머리 감고 털지 않고 찬바람으로 적당히 말리고, 원래 바르던 국산 에센스를 바르는 정도가 끝이다.
(230310 추가 : 머리가 점점 길어지면서 위 사진 속 제품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아르간 오일이 들어간 제품으로 에센스를 바꿨다. 링크 참고.)
아직 컬이랄 건 눈에 안 띄지만 머리가 좀 더 부스스해졌다. 그래도 엄청 지저분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길이도 아직은 숏컷에 가까워서 좀 깔끔한 편인 듯.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생각보다 단정한 나의 머리.
가장 최근 사진. 머리가 조금은 컬이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파마한 것처럼 엄청 균형있는 컬은 아니지만 오히려 자연스럽고 좋다. 그래서 현재까지 아주 만족하며 지내는 중.
탈매직 후 고데기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세팅을 위한 드라이도 하지 않는다. 드라이라곤 그저 찬바람으로 대충 물기만 가시도록 말리는 것뿐. 근데 손으로 몇 번 슥슥 넘겨주고 귀 뒤로 머리를 꽂아주면 자연스럽게 늘 자갈치 같은 머리가 나온다. 예전엔 일부러 이런 머리를 하고 싶어서 미용실에서 십수만 원씩 주고 매직 세팅을 하기도 했는데. 그냥 놔두면 알아서 이런 머리가 나오는 거였어. 곱슬머리 만세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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